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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석주 영화평론가 Nov 03. 2022

친일파에게 복수한 남자들의 이야기

영화 <리멤버>(2022)


이성민 씨가 뇌종양을 앓고 있는 80대 알츠하이머 환자 역할을 맡았습니다. '한필주'라는 인물인데요. 일제강점기 때 친일파들의 악행으로 가족을 잃으면서 큰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이에요. 아내가 죽자 한필주는 가족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친일파들을 응징하기 위해 오랫동안 세운 복수 계획을 실행에 옮기려고 합니다. 근데 이 엄청난 일을 혼자 다 할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같이 알바를 하면서 친해진 '인규'라는 청년에게 일주일만 운전을 도와달라고 부탁합니다. 그 역할을 남주혁 씨가 맡았고요.


이 영화는 이성민 씨와 남주혁 씨의 동행을 그린 버디무비이자 로드무비입니다. 버디(buddy)라는 영어 단어가 '친구', '단짝'을 뜻하는데요. 두 사람의 우정을 다룬 영화가 버디무비입니다. 버디무비에서 주인공들은 여러 고난을 겪지만, 함께 힘을 합쳐 그 고난을 돌파합니다. 또 그 과정에서 자신의 가치관이나 삶의 태도 같은 것들을 새롭게 확립하죠. 로드무비는 문자 그대로 길 위에서 펼쳐지는 영화를 말합니다. 로드무비 속 주인공들은 여행, 도주, 방랑 등을 통해서 전에 없던 경험을 합니다. 그런 점에서 버디무비와 로드무비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죠. 이성민 씨가 친일파들을 복수하기 위해 떠나는 여정에 남주혁 씨가 동참하게 되면서 이 영화가 일종의 버디무비와 로드무비의 장르적 특징을 보이는 거죠.


일제강점기를 소재로 한 영화들은 대개 그 시대 자체를 배경으로 해서 당시를 살았던 사람들이 어떤 고난을 겪었는지에 초점을 맞추는데요. ‘암살’이나 ‘동주’ 같은 영화들이 대표적입니다. 이와 달리 과거의 상처로 인해 현재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조명하는 영화들이 있거든요. 대표적으로 위안부 소재 영화들이 그런데 ‘아이 캔 스피크’ 같은 영화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리멤버’는 후자에 해당하는 영화라고 할 수 있고요. 후자에 해당하는 영화들은 대개 현재 시점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고, 치유하는 데 방점이 찍혀 있죠.


극 중에서 남주혁 씨의 아버지는 친일파 후손이 세운 기업에 근무하다가 산업재해를 당해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하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친일파들에게 가족을 잃은 이성민 씨와 남주혁 씨의 관계가 일종의 유사 부자 관계로 형성됩니다. 다시 말해 두 사람의 배경이 두 사람의 동행(혹은 복수)에 당위와 명분을 제공하는 거죠. 근데 이 영화가 마냥 복수극으로 치닫고 끝나는 영화는 아니에요. 영화 제목처럼 우리가 끝까지 기억해야 하는 게 무엇이고, 조금 더 정의롭고 올바른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일깨운다는 점에서 치유의 서사로 볼 수 있죠.


일제강점기 때 독립운동이나 친일을 했던 사람은 극소수라고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평범하게 살았거나 방관자적 입장을 취했을 텐데요. 영화에는 이성민 씨가 카메라를 쳐다보면서 자기가 방관자였다고, 그래서 죄가 있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근데 배우가 카메라를 쳐다본다는 것은 극장 안의 관객을 쳐다본다는 말도 되거든요. 결국 이 영화는 친일파를 비판하는 영화이기도 하지만 방관자적 태도를 취했던 무수한 익명들에게도 모종의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영화로도 볼 수 있죠.


반일 감정에 기대고 있는 측면이 있어서 영화가 조금 단조롭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런 영화에서 대개 친일파들은 극악무도한 인간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거든요. 극악무도한 인간이 왜 그렇게 밖에 될 수 없었는지를 설명해주는 것도 조금은 필요합니다. 천하의 나쁜 놈이라도 그 맥락과 역사를 설명해주는 게 제대로 된 캐릭터 형상화 방식이고, 입체적인 스토리텔링이거든요. 근데 이 영화에서는 그런 설명이 조금은 부족하게 느껴집니다. 아울러 그 설명을 막판에 대사로 다 해결하려는 느낌도 있어요.


또 후반부에 남주혁 씨가 막다른 골목에 놓인 이성민 씨에게 거의 '훈화'에 가까운 이야기를 쏟아내는데요. 여기서부터 약간은 신파로 흘러 맥이 빠지기도 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기본적으로 이 영화는 복수극의 형태를 보이지만, 치유와 회복의 서사를 놓지 않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치유와 회복이라는 단어가 영화에 적절하게 녹아들 진 않은 것 같아요. 복수 후에 남은 게 과연 무엇인지 관객 입장에서는 허탈하고 공허해지는 측면도 있습니다.


끝으로 이 영화를 포함해서 간혹 어떤 영화들이 '기억'이라는 소재를 표상할 때, 알츠하이머 환자를 캐릭터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는데요. 이게 과연 적절한 방식인지는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영화에 대한 자세한 얘기가 궁금하시면, 11월 6일(일) 오후 2시 30분, TBN(강원) 두시N영화관(FM105.9)을 들어주세요. 구글 플레이나 앱스토어에서 ‘TBN 교통방송’ 앱을 다운로드하면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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