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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석주 영화평론가 Nov 13. 2022

정(情)답게 사는 게 꼭 정(正)답은 아니다

영화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2022)


김세인 감독이 연출한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는 제72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파노라마 부문에 공식 초청된 작품입니다. 파노라마 부문은 비경쟁인데요. 칸영화제로치면 '주목할 만한 시선'과 비슷합니다. 다양성 영화를 발굴해서 영화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죠. 파노라마 부문에는 과거 이재용 감독이 연출한 '죽여주는 여자'가 초청된 적이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두 영화 제목에 다 '여자'가 들어가네요.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는 어느 모녀에 관한 영화입니다. 비유적으로 말하면, 엄마와 딸이 극단으로 부딪칠 때 일어나는 불꽃에 관한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이 영화에서 그려지는 모녀의 모습은 일반적이지 않습니다. 엄마에게는 딸에 대한 사랑 즉, 모성애가 없는 것처럼 보이고요. 딸 역시 어렸을 때부터 엄마에게 학대를 당해서 나이를 꽤 먹었지만 어딘가 불안정해 보여요.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마트 주차장에서 딸을 차로 들이받는 사고가 발생합니다. 엄마는 차량의 오작동으로 인한 급발진이라고 주장하지만, 딸은 엄마의 행동이 고의라고 생각해요. 이렇게 영화는 시작부터 엄마와 딸의 신랄한 대결 구도로 펼쳐집니다.


한국에서 엄마와 딸에 관한 영화라고 한다면 아마도 '친정엄마'를 떠올리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아요. 이 영화는 '모성신화'에 기대고 있습니다. 모성신화에 기대고 있는 영화에서 엄마 캐릭터는 거의 신과 같은 능력으로 자식(혹은 남편)을 성공으로 이끄는 데 소비되고, 희생되는데요. 말하자면 엄마는 인간이 아닌 신비스러운 존재고, 획기적인 업적을 달성하는 그런 비인간적 요소를 담지하고 있습니다. 근데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는 그와 정반대에 위치한 영화예요. 굳이 비교하자면 '케빈에 대하여'와 비슷한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케빈에 대하여'는 연쇄 살인마를 자식으로 낳은 엄마의 이야기입니다. 두 영화 모두 정상적이지 않은 부모-자식 관계를 형상화하고 있죠.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에서 모녀의 불화 원인이 직접적으로 설명되진 않습니다. 정황상 엄마가 산후우울증을 앓았던 거로 보입니다. 또 이 영화에서 남편은 등장하지 않는데요. 엄마 입장에서는 임신과 출산, 육아의 과정에서 남편의 부재로 삶이 꽤나 힘들었던 것 같아요. 제가 제대로 본 게 맞다면, 딸이 4kg가 넘는 우량아로 태어나서 엄마가 제왕절개 분만을 했던 거로 묘사됩니다. 제왕절개 분만은 흉터가 남기 때문에 여성 입장에서 자신의 여성성이 일정 부분 훼손되는 일일 수 있잖아요. 그로 인해서 당연히 산후우울증이 올 수 있는데, 엄마가 그 우울증에 대한 울분과 직업적인 스트레스를 딸에게 풀었던 것 같아요. 딸도 정상적인 돌봄으로 양육된 게 아니니까 모녀가 계속 서로에게 상처를 주면서 살았던 거죠.

          

그럼 제목이 왜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일까요. 제가 추측하기로는, 일단 속옷이라는 건 공유하는 게 아니잖아요. 굉장히 개인적인 것이고, 어렸을 때야 부모님이 속옷을 사줄 수 있다고 하지만 언젠가는 본인이 직접 구매해서 입어야 하는, 말하자면 ‘독립성’의 상징과도 같은 기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근데 이 영화에서 모녀는 같은 속옷을 입어요. 정확하게 말하면 딸이 엄마 속옷을 입는데요. 이는 엄마가 그만큼 딸의 사춘기를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다는 의미가 되는 거고, 정반대로 딸이 엄마에게 학대를 당하면서도 정서적으로 독립하지 못했다는 의미도 되거든요. 그러니까 이 제목은 나이를 먹어서도 정신적 탯줄을 끊어내지 못하는 모녀의 관계를 함축하고 있다고 할 수 있죠.          


인상적인 장면과 해석할 대목이 참 많은 영화입니다. 대개 좋은 영화들이 그렇죠. 하나만 소개하면, 영화의 마지막에 딸이 결국 집을 나가게 되는데요. 계속 엄마 속옷을 입었으니까 자기 속옷이 없잖아요. 그래서 속옷을 사러 가요. 근데 속옷을 직접 사본 적이 없어서 자기 사이즈를 모르는 거예요. 직원이 "의외로 자기 속옷 사이즈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면서 친절하게 줄자로 재줍니다. 직원이 줄자를 갖다 대니까 그 순간 딸이 긴장해서 숨을 참아요. 그때 직원이 "숨을 쉬어도 된다. 숨을 참으면 제대로 된 사이즈를 잴 수가 없다"는 식의 대사를 합니다. 의미심장한 대사죠. 직원의 대사로만 말하자면, 이 영화는 숨을 참고 살았던 두 여자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죠.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는 딸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모르는 엄마와 엄마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모르는 딸에 관한 영화예요. 근데 아마도 이 영화를 보신 분들 대다수가 엄마를 비난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쨌든 표면상으로 엄마가 역할을 제대로 못해서 딸이 저렇게 망가진 거로 보이거든요. 근데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잖아요. 엄마는 극중에서 계속 젊음에 집착하고, 빨간색을 유독 좋아합니다. 자신에게 흰머리가 있는 꼴을 견디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주지하다시피 출산 전후의 과정에서 잃어버렸던 여성성이나 산후우울증, 남편의 부재 같은 것이 한 여자의 인생에 심한 생채기를 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마지막에 두 여성은 헤어지게 됩니다.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딸이 집을 나가거든요. 딸이 집을 나갔다는 걸 확인한 엄마는 만둣국을 준비하면서 평소 마음의 안정을 위해 배우고 싶다던 리코더 연습을 합니다. 앞선 언급처럼 딸은 태어나 처음으로 자신의 속옷을 직접 사고요. 그래서 저는 이 영화가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합니다. 꼭 마주보고, 살을 비비며 사는 게 정답은 아니에요. 어떤 관계는 조금 멀리 떨어져서, 가끔 보는 게 좋을 수도 있습니다. 그게 가족의 건강과 화목을 유지하는 일이 될 수도 있거든요. 극중 정전으로 어두컴컴해진 집안에서 서로에게 스마트폰 손전등을 비췄던 것처럼, 둘은 가끔씩 필요할 때 서로를 비춰주는 빛이 될 겁니다.



영화에 대한 자세한 얘기가 궁금하시면, 11월 13일(일) 오후 2시 30분, TBN(강원) 두시N영화관(FM105.9)을 들어주세요. 구글 플레이나 앱스토어에서 ‘TBN 교통방송’ 앱을 다운로드하면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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