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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석주 영화평론가 Feb 05. 2023

사람의 기억을 영화로 어떻게 재현할 것인가?

영화 <애프터썬>(2022)


샬롯 웰스 감독이 연출한 <애프터썬>여러 국제 영화제에서 많은 상을 받은 영화입니다. 감독의 데뷔작이고, 어렸을 때 아빠와 여행을 가면서 겪었던 실제 이야기를 극화한 영화라고 해요. 올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작품이고,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이 꼽은 '2022년 최고의 영화'로 선정된 작품이에요. 또 이 영화는 <문라이트>(2017)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배리 젠킨스 감독이 제작을 맡았어요. 영화사 A24가 배급을 맡으면서 개봉 전부터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아빠와 딸이 주인공인 영화입니다. 성인이 된 딸이 20년 전에 아빠와 함께 한 튀르키예 여행에서 찍은 캠코더 속 영상을 보게 되면서 그때를 회상하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입니다. 그러니까 영화가 하나의 거대한 플래시백이라고 할 수 있어요. 정황상 아빠와 엄마는 이혼한 거로 보이고요. 딸은 엄마와 사는데, 여름 방학을 맞아서 아빠와 함께 여행을 떠나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딸 입장에서는 당시 여행을 갔을 때는 몰랐지만, 20년이 지난 시점에서 캠코더로 찍은 영상을 다시 볼 때 느껴지는 어떤 감정이나 흥취 같은 게 있을 수 있잖아요. 이 영화는 바로 그런 부분을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있죠.

   

우선 여행이 기본 골격이고요. 추억, 기억, 성장과 같은 주제로 설정해도 많은 얘기를 할 수 있는 영화입니다. 우리가 통상적으로 '여행'이라고 하는 것은 즐겁기 위해서 떠나는 거잖아요. 그러나 여행을 가면 항상 즐거운 일만 있는 건 아닙니다. 예상치 못한 어떤 일 때문에 같이 간 사람과 싸울 수도 있고, 뜻밖의 인연을 만나서 좋은 대화를 나눌 수도 있는 거고요. 근데 이 영화에서 더 중요한 것은 엄마와 이혼해서 혼자 사는, 뭔가 우울감에 빠져 있는 것 같은 아빠와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들어서 예민한 감수성을 갖고 있는 딸에 관한 영화예요. 그 관계성에 집중에서 볼 때 더 많은 것들이 보이는 영화죠.

  

아빠와 딸의 여행에서 엄청나게 극적인 일들이 벌어지는 건 아니에요. 영화에서 딸이 겪게 되는 일들은 대충 이런 건데요. 우연히 남자 두 명이 애정 행각하는 장면을 목격한다거나 오락실에서 만난 아이와 얼떨결에 키스를 하게 된다거나 많은 사람 앞에서 노래를 부르게 되는 그런 상황이 발생합니다. 아빠의 생일을 축하해 주기 위해서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축하 노래를 같이 부르자고 부탁하기도 해요. 열쇠가 없어서 방에 들어가지 못하고 호텔 로비에서 잠을 자기도 하는데요. 이런 일들이 사소하다면 사소할 수 있는데, 사춘기 소녀 입장에서는 엄청난 일일 수도 있잖아요. 그런 장면들을 이 영화가 꽤 실험적인 방식으로 포착하고 있는 거죠.



<애프터썬>은 일종의 메타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영화에 대한 영화인 거예요. 관객이 스크린을 보는 것처럼 딸은 캠코더 속 영상을 보는 거니까요. 이런 구조가 결국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또 이 영화는 과거 이야기를 카메라의 전지적인 관점으로 보여주기도 하지만, 중간중간에 딸이 캠코더로 찍은 불안하면서도 흔들리는 이미지를 삽입하거든요. 이런 연출 방식이 말하는 건 '사람의 기억을 어떻게 영화로 재현할 것인가?'라는 물음과도 연결돼 있다고 할 수 있죠.   

      

예를 들면, 우리가 과거 누군가와 여행 갔을 때의 일을 떠올린다고 한다면, 그 떠올림이 영화관에서 보는 대중영화처럼 매끄럽게 장면과 장면이 이어지는 건 아니잖아요. 우리의 기억이라는 것은 장면과 장면 사이의 고리가 굉장히 헐겁고, 단편적이고 주관적이며 파편화된 이미지들의 연쇄라고 할 수 있을 텐데요. 이 영화의 편집방식이 그렇습니다. 저는 이런 편집 방식이 '사람의 기억을 영화로 재현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관한 감독의 고민이 담겨 있다고 생각해요. <애프터썬>은 실제 캠코더로 찍은 이미지와 딸의 기억에 의한 이미지 그리고 카메라의 전지적인 관점으로서의 이미지가 막 뒤엉키면서 미학적으로 높은 성취를 이룩하고 있는 영화입니다.  


딸의 입장에서만 설명한다고 아빠 이야기를 조금 못 했는데요. 딸은 이 여행에서 아빠의 다른 모습들을 보게 됩니다. 가령 아빠가 나체로 침대에 누워있다거나 혹은 장난스럽게 춤을 춘다거나 한편으로는 자신 보다 더 치기 어린 행동을 하면서 삐친다거나 뭐 그런 것들이에요. 결국 자식의 입장에서 내가 많이 컸구나, 라는 걸 느낄 때가 있는데 그게 부모의 약한 모습을 볼 때거든요. 어렸을 때 아빠와 엄마는 강하고 절대적인 존재였지만 나이가 들면서 느끼게 되는 건 그들이 나와 같은 인간일 뿐이라는 거예요. 그런 지점들을 이 영화가 굉장히 영화적인 방식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거죠.



이 영화는 2월 5일(일) 오후 2시 30분, TBN(강원) 두시N영화관(FM105.9)에서 자세히 소개했습니다.



여담


1. 아름다우면서도 참 우울한 영화입니다. 양가적인 감정을 느끼게 하는 영화예요. 여름이 배경인데, 여름에 다시 보고 싶은 그런 영화입니다.


2. 관객들에게 친절한 영화는 아닙니다. 대중영화와는 거리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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