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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석주 영화평론가 Jan 29. 2023

인물이 아닌 플롯이 주인공인 로맨스 영화

영화 <상견니>(2022)


황천인 감독이 연출한 <상견니>는 2019년 11월부터 2020년 2월까지 대만에서 방영된 드라마를 영화로 옮긴 작품입니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오가는 타임 슬립(time slip)을 주요한 동력으로 삼은 영화예요.


리쯔웨이라는 남성과 황위쉬안이라는 여성이 우연히 밀크티 가게에서 만나게 되면서 영화는 본격적으로 시작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황위쉬안이 일 때문에 다른 지역으로 발령 나면서 둘은 잠시 떨어져 있게 되는데요. 그래도 둘은 시시콜콜한 일상을 공유하면서 인연의 끊을 놓지 않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황위쉬안은 이미 죽고 세상에 없는 리쯔웨이에게 계속 연락을 하고 있었던 거예요. 그러니까 리쯔웨이는 몇 년 전에 불의의 사고로 죽고, 황위쉬안은 그를 잊지 못하고 계속 회신이 없는 번호로 연락을 했던 겁니다.


이 과정에서 황위쉬안은 리쯔웨이가 죽기 직전으로 시간 여행을 하게 되고, 리쯔웨이의 친구이자 자신과 굉장히 닮은 천윈루의 몸으로 접속하게 됩니다. 과거로 돌아간 황위쉬안은 리쯔웨이의 죽음을 막기 위해서 고군분투하게 되지요. 근데 영화는 여기서 플롯을 한 번 더 뒤집습니다. 이건 영화의 반전과도 연관되어 있는데요. 리쯔웨이의 시간축에서는 황위쉬안이 죽은 거예요. 다시 말해 리쯔웨이의 입장에선 황위쉬안이, 황위쉬안의 입장에서는 리쯔웨이가 죽은 거고 이들이 과거로 돌아가 서로를 구하기 위해서 분투하는 플롯이 교차하는 구조가 이 영화의 뼈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플롯을 한 번 더 뒤집는데, 천윈루 역시 자신의 운명을 바꾸기 위해서 과거로 돌아가게 됩니다. 결국 이 영화는 황위쉬안의 시간축과 리쯔웨이의 시간축 그리고 천윈루의 시간축이 뒤엉키는 구조를 갖고 있는 셈이죠. 


죽은 연인을 살리기 위해 시간을 돌리는 영화는 타임 슬립의 클리셰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합니다. 길 정거 감독이 연출한 <이프 온리>(2004)가 대표적이죠. 한국에서는 김정권 감독이 연출한 <동감>(2000)이라는 영화가 범례입니다. 최근에 리메이크되기도 했었죠. 무선을 통해서 1979년을 사는 여자와 2000년을 사는 남자가 교신한다는 내용인데, 김하늘 씨와 유지태 씨를 스타덤에 올린 영홥니다. 이 밖에도 <어바웃 타임>(2013)이나 <말할 수 없는 비밀>(2008) 같은 영화가 있고요. 애니메이션으로 가장 유명한 작품은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시간을 달리는 소녀>(2007)라는 영화가 있죠.


타임 슬립 영화가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는 당연하게도 인간의 욕망과 연관돼 있습니다. 내가 과거로 돌아간다면 혹은 내가 미래로 갈 수 있다면, 이라는 상상을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해보잖아요. 미래로 가서 로또 번호를 알아서 오겠다, 와 같이 단순하지만 달콤한(?) 상상에서부터 타임 슬립 영화는 그런 인간의 욕망을 구체적인 이미지로 보여줍니다. 관객 입장에서는 영화 속 주인공으로부터 대리 만족을 여타의 장르보다 강하게 느끼게 되는 거죠.


<상견니>는 <이프 온리>처럼 단순히 시간을 거꾸로 돌리는 데 그치지 않고 플롯을 마구 뒤섞으면서 미스터리의 구조를 취하고 있다는 게 특징입니다. 또 <러브레터>처럼 닮은 사람 모티브를 차용해 인물이 다른 인물의 육체로 전환되면서 영화가 진행됩니다. 즉 교차되는 건 플롯만이 아니라 인물도 포함되는 거지요.


저는 원작 드라마를 보지는 않았습니다. 조금 취재를 해보니 드라마와 영화가 기본 설정만 같고, 전혀 다른 이야기라고 합니다. 또 드라마의 경우 호흡이 길고, 영화는 상대적으로 짧기 때문에 드라마의 여러 가지 디테일들이 영화에는 반영되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해요. 드라마를 굉장히 재밌게 보신 분들은 영화가 좀 아쉽다고 하는 반응이 많더라고요.          


작품성이 뛰어난 영화로 보이진 않습니다. 앞서 이 영화가 시간을 과거나 미래로 돌리고, 닮은 사람 모티브를 사용해서 인물을 교차시킨다고 말씀드렸는데요. 그러한 영화의 형식이 영화의 내용과 적절한 화학적 작용을 이루는가, 라고 질문했을 때 머릿속에 물음표가 그려집니다. 다시 말해 내용은 없고, 스타일만 둥둥 떠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는 거예요.


타임 슬립 장르는 아니지만 가령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메멘토>(2001)처럼 복잡한 플롯이 영화의 미학을 높이는 결과를 낳는 경우도 있어요. 플롯을 뒤섞어서 묘한 재미를 선사하는 홍상수 감독의 <자유의 언덕>(2014)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상견니>는 인물보다는 플롯이 더 중요한 영화로 보입니다. 이야기를 풍부하게 하기 위한 플롯 배치가 아니라 인물이 서로의 육체를 오가며 시간축이 교차하는 영화적 방식이 단순한 스타일처럼 보인다는 거예요. 그래서 끝에는 뭔가 공허한 느낌이 드는 영홥니다.



이 영화는 1월 29일(일) 오후 2시 30분, TBN(강원) 두시N영화관(FM105.9)에서 자세히 소개했습니다.



여담


1. 원작을 보고 싶게 하는 영화입니다.

 

2. 제가 자꾸 플롯, 플롯 거려서 '플롯이 정확하게 뭐야?'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 것 같아 아래 링크를 첨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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