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쩌면 우린 헤어졌는지 모른다>(2023)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형슬우 감독이 연출한 <어쩌면 우린 헤어졌는지 모른다>는 제목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헤어짐'에 관한 영화입니다. 일반적인 로맨스 영화는 두 사람이 만나서 어떻게 사랑의 결실을 맺는지에 포커스를 맞추잖아요. 후반부에 가서야 그 사랑의 결실이 결혼인지, 이별인지 묘사하는데요. 이 영화는 시작하자마자 두 사람이 치열하게 싸우는 모습을 보여줘요. 두 사람의 만남이 아닌, 두 사람의 이별로 시작하는 로맨스 영화라고 할 수 있죠.
이동휘 씨와 정은채 씨가 커플로 나옵니다. 이동휘 씨가 맡은 '준호'라는 캐릭터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백수입니다. 정은채 씨가 맡은 '아영'이라는 캐릭터는 원래 미술을 전공했는데, 준호의 뒷바라지를 위해 부동산에서 일하게 됩니다. 근데 준호가 계속 시험에 떨어지니까 아영은 그와의 만남을 이어가는 게 지치고 부담스러운 거예요. 그러다가 준호가 아영에게 사소한 거짓말을 하게 되고, 그 일을 계기로 쌓였던 게 폭발하면서 두 사람은 결국 헤어지게 됩니다.
아영과 준호는 헤어진 후 각자 다른 사람과 연애를 하게 되는데, 그 연애도 다 실패로 귀결됩니다. 말하자면 이 영화는 만남이 아니라 이별의 여러 형상들을 묘사하는 영화인 거예요. 이민기 씨와 김민희 씨가 주연으로 출연했던 <연애의 온도>(2013)라는 영화와 비슷합니다. 이 영화도 두 사람의 헤어짐으로 시작하는 영화인데요. 두 영화 모두 사랑을 쌓아가는 연인들의 모습은 빠른 편집으로 처리하고, 이별의 순간만을 추출해 형상화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많아요.
이 영화에는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취지의 대사가 많이 나옵니다. 이 말은 상대를 위해서 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나를 위해서 하는 말이기도 하거든요. 가령 가정이 있는 사람이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게 됐을 때, 법적으로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여전히 도의적으로는 문제가 되는 일이잖아요. 도의적으로 문제가 되는 일일지라도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명제가 신념이 된다면, 그것이 자신에게 면죄부를 주는 말이 되기도 한다는 거예요.
이 말은 직업적 상황과도 연결됩니다. 특히 아영의 경우에는 원래 미술을 하고 싶었지만, 여러 사정으로 인해 부동산 중개업에 종사하고 있거든요. 비록 아영이 잇따른 연애의 실패로 좌절하지만, 그러한 실패의 과정에서 결국 자신이 원했던 미술 일을 하게 되거든요. 그런 점에서 이별이 한 사람의 인생을 공허한 상처만을 남기진 않는다는 거예요. 준호 역시 공무원 시험에는 합격하지 못했지만, 다른 직업을 통해 나름 잘 살아가는 것으로 영화는 묘사하고 있습니다.
끝으로 배우들의 연기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이 영화에서 이동휘 씨의 연기가 많이 두드러지는데요. 이동휘라는 배우를 떠올릴 때 관객들이 기대하는 이미지가 있잖아요. 가령 <응답하라 1988>에서 이동휘 씨가 맡은 도롱뇽 역할을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셨는데요. 바로 그 고등학생이었던 도롱뇽이 30대 중반이 되면 마치 이런 연애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두 캐릭터가 비슷합니다. 이동휘 씨는 능청스러우면서도 미워할 수 없는 찌질한 연기를 이 영화에서 최대치로 보여주고 있어요. 정은채 씨는 외모에서 느껴지는 이미지 그대로 뭔가 도회적인 느낌의 연기를 이 영화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실 사랑이라는 게 이별을 전제로 하잖아요. 이별이 없는 사랑은 애초에 존재할 수가 없는 겁니다. 언젠가는 결국 헤어지게 되니까요. 한때는 너무 좋았던 사람이 시간이 지나면 정말 지긋지긋해지는 순간이 오기 마련인데, 이 영화는 바로 그런 지점을 현실적으로 잘 포착하고 있습니다. 내용적인 측면에서 이 영화가 구사하는 대사나 화법 등이 젊은 세대의 커플들에게 어필하는 지점이 분명히 있습니다.
1. 영화 스틸컷을 보는데, 이동휘 씨와 정은채 씨가 같이 찍은 컷이 없더라고요. 의도된 것인가...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