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연출한 <스즈메의 문단속>은 이미 일본에서 천만 관객을 돌파하며 대박을 터트린 영화입니다. 국내에는 지난주 수요일에 개봉했어요. 현재 기준으로 100만 명에 육박하는 관객수를 동원했다고 합니다.
영화에는 '스즈메'라는 여학생이 나옵니다. 스즈메는 학교를 가던 중 '소타'라는 의문의 남성을 만나게 되는데요. 소타는 전국을 돌면서 지진을 막는 일을 하는 청년이에요. 지진을 막는다는 걸 이해하려면 '미미즈'라는 개념을 알아야 합니다. 미미즈는 한국말로 지렁이인데요. 영화에서 미미즈는 검붉은 기둥처럼 형상화되는데, 지진을 일으키는 원흉이에요. 미미즈는 주로 사람이 살지 않는 폐허 속 문을 통해 현실 세계로 빠져나옵니다. 소타는 미미즈가 문으로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문단속하는 사람이고요. 스즈메는 소타를 만나게 되면서 이 일에 동참하게 됩니다.
<스즈메의 문단속>은 2011년에 발생했던 '동일본 대지진'을 모티브로 했습니다. 이 지진은 1900년 이후 전 세계에서 일어난 네 번째로 강력한 지진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영화에도 지진이 발생한 3월 11일이 등장하고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너의 이름은.>(2017)이라는 영화도 주인공들이 마을의 재난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거든요. 두 영화가 직간접적으로 '동일본 대지진'을 연상케 한다는 점에서 공통분모가 있습니다. 또 이질적인 두 남녀가 만나 서로 다른 삶의 가치관을 공유한다는 점에서도 궤를 같이 하고요.
스즈메는 어린 시절 엄마와 헤어진 아픈 기억 때문에 늘 악몽을 꾸는데요. 말하자면 과거의 아픈 기억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상태인 거죠. 스즈메의 이런 상태는 재난으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평생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상태와 연결됩니다. 재앙에 가까운 사고로 인해 트라우마에 갇혀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나라도 세월호 참사나 이번 이태원 참사로 큰 상처를 안고 사시는 분들이 많잖아요. 결국 이 영화는 그런 끔찍한 일들로 인해 돌아가신 분들을 애도하고, 동시에 그로부터 살아남은 자들을 위로하는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필 '문을 닫는 행위'를 통해 재앙을 막는 것일까요? 우리는 무수한 문을 열고, 닫으면서 삶을 살아갑니다. 문을 열기 위해서는 '닫힌 상태'가 전제되어야 하는데요. 어떤 시절과는 영원에 가까운 이별을 해야 현재를 살아갈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이 영화에서 문을 닫는다는 것은 과거의 기억이나 사람과의 이별이 삶의 필수 불가결한 조건임을 은유하는 행위입니다.
엄마와 헤어진 기억 때문에 늘 고통에 시달리는 스즈메는 '어린 시절의 나'와 이별해야 '지금의 나'를 온전히 살아낼 수 있습니다. 영화는 마지막에 어린 시절의 스즈메와 지금의 스즈메가 건강하게 이별할 수 있는 장을 선사해요. 이러한 이미지는 모종의 재난으로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이들을 놓아주고, 현재의 나를 돌보는 일이 어쩌면 죽은 자들의 간절한 소원일 수 있다는 영화적 발화입니다.
"다녀오겠습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안녕하세요" 등 일상을 살아가면서 자주 하는 말들이 있잖아요. 이런 말들을 주고받으며 사는 그저 그런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한 지를 이 영화는 환상적인 이미지로 구현합니다.
스즈메가 지진을 막기 위해 전국을 유랑한다는 점에서 로드무비의 장르적 특성도 있는 영화입니다. 신카이 마코토의 마법과도 같은 이미지 향연과 모험이라는 소재가 적절한 화학 작용을 일으키는 영화예요. 또 이 영화에는 군데군데 일본 애니메이션에 대한 오마주도 있습니다. 평소 일본 애니메이션을 좋아했던 분들이라면 볼 만한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3월 12일(일) 오후 2시 30분, TBN(강원) 두시N영화관(FM105.9)에서 자세히 소개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