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소울메이트>(2023)
<소울메이트>는 <혜화,동>(2011)이라는 영화로 인상적인 연출을 선보인 바 있는 민용근 감독의 두 번째 장편입니다. 이 영화에는 '미소(김다미)'와 '하은(전소니)'이라는 여학생이 등장합니다. 미소는 집안 사정 때문에 자주 이사를 다니는데요. 미소가 서울에서 제주도로 전학 가면서 하은을 만나게 됩니다. 이때부터 둘은 급속도로 가까워지기 시작해요. 하지만 미소와 하은 사이에 '진우(변우석)'라는 남학생이 끼어들면서 둘의 관계는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하은은 그림에 뛰어난 재능이 있습니다. 특히 피사체를 사실적으로 그리는 데 아주 발군입니다. 어느 날 하은은 미소에게 진우가 마음에 든다고, 그 아이를 그려보고 싶다고 말해요. 그 말을 들은 미소의 표정이 살짝 어둡게 변하는데요. 친한 친구가 마음에 드는 남자가 생겼다고 하니까 못내 서운한 거예요. 어쨌거나 하은과 진우는 사귀기 시작하고, 셋은 자주 어울리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진우는 하은이 아닌 미소에게 더욱 끌리게 되는데요. 전형적인 삼각관계죠.
근데 <소울메이트>에는 조금 이상한(queer) 지점들이 있습니다. 앞서 진우가 등장하면서 미소와 하은의 관계에 균열이 발생한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이런 사태가 오롯이 진우의 탓일까요?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사태의 본질은 미소와 하은이 서로에게 느끼는 감정을 제대로 표출하지 못한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소울메이트>는 미소와 하은이 서로에게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해서 파국으로 치닫는 영화입니다. 두 사람이 레즈비언이라는 얘기입니다.
일부 언론에서 <소울메이트>를 "찬란한 우정", "농도 짙은 우정" 등의 표현으로 소개하고 있는데요. 저는 이런 표현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 영화가 퀴어영화라고 생각합니다. 둘의 관계를 사랑이 아닌 우정으로 국한했을 때, 설명이 안 되는 부분들이 굉장히 많거든요. <소울메이트>에는 명백하게 퀴어적인 요소가 있고요. 그것이 영화에서 직접적인 대사로 발현되진 않지만, 인물의 행동이나 상황 등을 종합했을 때 충분히 퀴어영화로 규범화할 수 있는 지점들이 많습니다.
가령 둘은 서로의 이름을 뜻하는 모양의 귀걸이를 각자 귀에 끼웁니다. 영화는 그 과정을 꽤 길고 상세히 묘사하는데, 이 같은 행위가 섹스를 연상하게 합니다. 또 진우와 파혼한 뒤 서울로 온 하은이 미소와 침대에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는 강한 성적 긴장이 감돕니다. 하은의 엄마는 서울로 떠나는 하은에게 "너 마음 가는 대로, 솔직하게 살아가라"고 조언하는데요. 누구의 딸이거나, 아내가 아닌 진짜 너의 모습으로 살아가라는 맥락입니다. 진짜 하은의 모습이란 레즈비언의 정체성을 뜻하는 것일 테지요.
영화에서 발생하는 여러 상황들이 너무 뜬금없거나 경우에 따라선 지나치게 통속적입니다. 하지만 <소울메이트>는 두 여학생의 관계를 사랑의 반열에 올려놓고 진행하기 때문에 뻔한 로맨스 영화의 서사가 퀴어 소재와 맞물리면서 약간은 신선하게 다가오는 측면이 있어요. 한편으로는 누가 봐도 명백한 퀴어 서사를 사소한 오해에서 비롯한 슬픈 우정 이야기로 눙치거나 피해 가는 것 같은 느낌도 있습니다. 물론 둘의 관계를 명확하게 정의하지 않고 가는 게 감독의 전략일 수도 있고요.
학창 시절 동성친구에게 친구 이상의 감정을 느껴본 분들이 꽤 있으실 거예요. 이게 우정인지 사랑인지 아니면 그 사이 어디쯤에 있는 건지 혼란스러운 경험요. <소울메이트>는 그게 사랑일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영화입니다. 그 과정에서 진우는 다소 기능적으로 활용됩니다. 게이 영화에서 여성 캐릭터가 얼마간 도구화되는 것처럼 말이죠. 참고로 민용근 감독은 이제훈 씨와 연우진 씨가 주연으로 출연한 퀴어영화 <친구 사이?>(2009)의 각본을 맡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