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영화수첩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석주 영화평론가 Aug 09. 2023

무서움과 불쌍함의 사이에서

<목 없는 미녀>와 <월하의 공동묘지>

이용민 감독 <목 없는 미녀> 스틸컷

<목 없는 미녀>(1966)의 주인공은 '오윤근'이라는 인물이다. 배우 이예춘이 연기했다. 위 스틸컷에서 빨간 셔츠를 입은 사람이 이예춘이다. 이예춘은 이덕화의 아버지다. 오윤근은 황금을 독차지하기 위해 일본군에게 추격당하던 최상배를 죽인다.


오윤근은 악인이지만, 영화에 깔린 의문을 푸는 탐정으로서의 역할도 수행한다. 관객은 오윤근의 시점을 따라 영화 이곳저곳을 탐문한다. 동일화까지는 모르겠지만, 관객이 물리적으로 가장 많이 접속하는 캐릭터가 선인이 아니라 악인이라는 점은 흥미롭다.


최상배의 아버지 최박사는 매드 사이언티스트(Mad Scientist)로 나온다. 이는 서구적 캐릭터다. 반면에 오윤근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최상배의 아내는 한(恨)을 품은 여귀다. 미친 과학자와 여귀가 일종의 컬래버레이션(collaboration)을 선보이는 공포영화다. 이 두 캐릭터가 오윤근을 단죄한다.


권철휘 감독 <월하의 공동묘지> 스틸컷

<월하의 공동묘지>(1967)의 주인공은 명순이다. 명순은 독립운동하다가 투옥된 오빠 춘식과 애인 한수의 뒷바라지를 위해 기생이 된다. 춘식은 두 사람의 앞날을 위해 모든 죄를 뒤집어쓴다. 춘식의 희생으로 감옥에서 풀려난 한수는 명순과 결혼하고, 사업의 성공으로 큰돈을 번다.


하지만 명순은 폐병을 얻고, 이 과정에서 한수는 자신의 집에 식모로 있던 찬모와 불륜을 저지른다. 남편으로부터 버림받은 명순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찬모가 자신의 아들마저 죽이려고 온갖 술책을 부리자 명순은 무덤에서 일어나 찬모 일당을 처단한다.


명순은 한을 품은 여귀 캐릭터의 본류라고 할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명순이 무덤에서 일어난 이유는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어느 정도 가부장제에 복무한다고 할 수 있다. 달리 말하면 아들의 생존이 위협당할 때 여자는 죽어서도 다시 일어나야 한다.



60년대를 대표하는 두 공포영화에는 물질적 탐욕을 담지하고 있는 인물이 등장한다. 또 일제강점기가 시간적 배경이다. 두 영화는 왜 일제강점기를 호명해야 했을까. 그 이유는 박정희 정권에 의한 고도의 경제 성장(근대화)과 1965년 6월에 체결된 한일협정과 무관하지 않다.


일제강점기는 민족이 말살되는 참혹한 시대였지만, 누군가에겐 풍요로운 시대였다. 일제에 협력해 권력과 부를 얻은 사람들이 있었다는 점에서 그 시대을 살았던 모든 한국인이 불행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일본과 국교 정상화를 맺을 때, 반대하는 쪽도 있었지만 찬성하는 쪽도 상당했다고 한다.


일본군에 의해 추격을 당하거나(최상배),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춘식)은 부의 자리에서 탈락된다. 이에 반해 일제에 밀고를 하는(찬모) 등 부역하는 자는 부를 쟁취한다. 영화에 명확한 단서가 나오진 않지만, 한수가 사업에 성공할 수 있었던 건 일제에 협력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일제에 부역했던 찬모는 죽고, 한수가 생존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한수는 가부장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두 영화는 근대화로 인한 물질적 탐욕과 일본에 대한 양가적 감정 그리고 가부장제의 정서가 얽히고설킨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영화 스터디 참고 문헌

- 이용민 감독의 공포영화 연구 / 한상윤

- 민족과 여성 수난 서사를 헤집는 여귀의 한판 복수극 / 정민아

매거진의 이전글 근로의 끝에는 가난이 없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