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글쓰기 주제 : 장소
“나는 네가 부럽더라고. 글도 쓰러 다니고. 전시회도 다니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하고 싶은 게 많아 보여서. 나는 뭘 해야겠다. 하고 싶다. 이런 게 딱히 없어”
얼마 전, 논현역 3번 출구 근처 화덕 피자집에서 만났던 예은 언니가 내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나에게 건넨 말입니다.
예은이 언니는 나의 친척 언니다. 강 우정의 식구들. 그러니까 강똥 가족의 장남인 우리 아빠의 네 명의 동생들 중, 두 번째 동생이 낳은 자식인 셈이다. 언니와 나는 같은 해에 태어났다고는 하지만 언니는 1월생에다가 키도 크고 피부도 뽀얗고 일찍이 성숙했던 반면에 나는 12월생에 키도 작고 까맣고 왜소해서 언니 옆에 붙어 있으면 누가 봐도 나는 그냥 딱 동생이었다. 게다가 예은이 언니는 옷차림이나 행동 가짐에서 도시스러운 구석이 참 많았다. 내가 모르는 피자나 햄버거 이름을 자연스럽게 말하며, 나와 예은이 언니의 남동생인 대훈이의 요구 사항을 완벽히 반영한 음식들을 척척척 주문해 줬을 때에는, 언니가 어찌나 커 보이던지. 그때 먹었던 피자나 햄버거의 맛보다 언니를 보고 경외심을 느꼈던 어린 나의 감정이 더 생생하네요.
사진은 당연히 카메라로 찍는 거라고 생각했던 시골 촌뜨기에게 스티커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기계가 있음을 깨닫게 해 준 사람 역시 예은이 언니다. 우스꽝스러운 가발을 쓰고 기계 안 쪽으로 들어가 각자 자리를 잡는다. 장난기 넘치는 표정과 과장된 포즈로 존재감을 뽐내며 함께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나면, 스티커 사진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예쁘게 꾸미기'는 늘 예은이 언니 몫이 된다. 사진을 예쁘게 꾸밀 수 있는 시간은 늘 '한정적'이었기 때문에, 꼭 스피드 하게 움직여야만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뭐부터 꾸며야 될지 몰라 어벙벙 하고만 있으면, 예은이 언니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스티커 사진의 완성도를 높이곤 했다. 사진에 글씨도 쓰고 스티커도 붙이고 심지어 뽀샤시 기능까지ㅡ!
예은이 언니와 나, 대훈이 밑으로 열 살 터울의 사촌 동생들이 여럿 생긴 이후로는, 언니의 모습은 꼭 잔다르크 같았다. 강똥 가족의 어른들. 특히, 나에게는 셋째 작은 아빠인 예은이 언니의 아버지는 가족이 한자리에 모였을 때마다 예은이 언니에게 동생들 데리고 밖에 나가서 놀다 오라곤 하셨는데, 당신이 형제 중 셋째이기 때문에 할 수 없었던 일들을 우리들 중 첫째인 예은이 언니가 도맡아 솔선수범해 주기를 바라셨었던 것 같다. 그래서 명절 때마다 예은이 언니는 우리들을 이끌고 밖으로 나갔다. 피자집으로, 카페로, 패밀리 레스토랑으로. 함께 하는 시간이 좋은 추억이 되길 바랬던 언니는 명 MC 유재석이 되기도 하고 어쩔 땐 수다맨이 되어주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언니의 노력은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의 나이가 되어서야 간신히 보이게 된 것이다. 언니가 첫째로서 갖고 있을 책임감의 정체를 상상해 본 적도 함께 짊어지려 한 적도 없었으니까요.
내가 스무 살이 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강똥 가족 여자들끼리만 떠났던 일본 오사카 여행에서도 (그러니까, 할머니와 네 명의 며느리와 손녀딸 예은이와 수화가 함께 떠났던 가족 여행에서도) 언니의 희생과 잔다르크 형 리더십은 빛을 발했다. 열일곱 명의 강똥 가족들이 함께 한 도쿄 여행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가이드가 있긴 했지만 더 믿음스러운 사람은 예은이 언니였다. 자연스레 모두들 언니에게 의지했고. 덕분에 강똥 가족은 낯선 곳에서도 그다지 어려움을 느끼지 못한 채 잊지 못할 추억들을 가득 쌓고 돌아올 수 있었다.
다시 지금으로 돌아와서 예은이 언니를 바라보면, 내가 느끼는 언니의 의미는 옛날과 큰 차이가 없다. 내가 부지런히 먹고 쑥쑥 커진 탓에 예전만큼 큰 체급 차이는 나지 않지만, 언니는 여전히 뽀얗고 도시스럽고 또 잔다르크 같기도 해서, 감히 “야. 강예은”이라고 불러볼 생각조차 나질 않는다.
그런데 그런 언니가 나를 바라보고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니..!
오묘한 마음이 들었다.
자존감의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예은이 언니의 세련된 옷차림과 도시스러운 행동들을 동경했었다. 그리고 우리 강똥 가족 전부를 아우를 수 있을 만큼 밝은 언니의 성격과 분위기 역시 내가 갖고 있지 않은 것이었기 때문에 나는 언니의 그런 점이 참 좋았다. 그리고 나는 예은이 언니가 나보다도 훨씬 먼저, 내가 지금 하고 싶어 하는 것들을 이미 다 경험해본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었다. 그래서 언니의 그 말이 너무 묘했다.
언니와 나의 관계(장남은 우리 아빠, 손주들 중 첫째는 예은이 언니. 그런데 같은 해에 태어난 나) 속에서도, 좋아 보이고 부러운 마음이 잘못 어긋나게 되면 동그랗던 마음도 세모로 네모로 마구마구 변해버려서 관계가 틀어지기 마련이라던데 아직까지도 크나 큰 소용돌이 없이. 이렇게 휴무날 만나 마주 보며 한 끼 식사를 하 수 있다는 사실이 참 기쁘면서도 다행스러웠다.
가족이 주는 힘!!!
그러니,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 어렸을 때 얼굴을 마주 보고 살갗을 부딪히며 함께 했던 기억들이 아직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지금 바로 약속을 잡아보는 게 어떨까요?!
논현역 3번 출구 근처 화덕피자집에서 만나자고ㅡ오ㅡ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