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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wa솨 Mar 21. 2019

나의 뽀삐, 나의 예삐.

#01 글쓰기 주제 : 동물


내가 강원도 산골짜기 양지골에 살았을 때의 일 입니다. 그 당시 여덟 살 정도였던 나는 동네 친구들과 함께 밖에서 뛰어노는 것이 유일한 놀이였다. 다 함께 모여 있어도 여덟 명이 넘지 않았던 우리들은 시간의 대분을 쇠 철봉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거나, 가파른 경사를 쉼 없이 거슬러 올라갔다 내려오는 데에 썼다. 그래서인지 , 동네 친구들 다음으로 친했던 사이는 바로 흙먼지 들이였다. 그들은 나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다. 운동화며 바지 주머니며, 어떻게 알았는지 나의 빈틈이란 빈틈에는 늘 자리 잡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빠가 새끼 강아지 한 마리를 품에 않고 집에 오셨다. 크림색 털을 가진 작은 삽살개를 닮은 듯한 강아지였다. 그때 당시 내가 알고 있는 개의 종류는 진돗개가 유일했는데, 옆집 동생이 삽살개 같다고 하는 것을 내가 듣고는 아, 얘는 그럼 삽살개 친척쯤 되겠구나 혼자 판단했다. 그래서 정말 삽살개였는지. 아니면 삽살개 친척쯤 되는 개였는지는 정확히 잘 모르겠습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우리 가족은 처음에 이 강아지를 ‘뽀삐’라고 불렀다는 것.



우리 세대는 잘 알겠지만, 내가 어렸을 때 ‘보라돌이, 뚜비, 나나, 뽀’ 이런 느낌들이 유치하지 않고 참 친숙한 이름들에 속했다. 심지어 나는 텔레토비를 정말 좋아했기 때문에 비슷한 느낌을 주는 ‘뽀삐’를 강아지의 이름으로 정했고 (나중에, 뽀삐가 낳은 새끼 강아지의 이름은 보란 듯이 뚜비로 지은 건 안 비밀)  우리 가족이 뽀삐의 이름을 불러주면 뽀삐는 늘 사랑스럽게 우리 곁에 머물렀다.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며 작은 목소리로 깡깡 짓으며.



그런데 딱 한 가지. 뽀삐는 똥오줌을 잘 가리지 못한 탓에 엄마에게 종종 미움을 받곤 했는데, 그때 살던 우리 집 화장실 문턱이 너무 높아서였는지. 아니면 차가운 공기로 가득 찬 그 공간이 '뽀삐'도 싫었는지. 어린 내가 생각해도 뽀삐는 똥오줌을 지지리도(!?) 가리지 못했고. 비워둬야 할 곳에 맘 편히 비우지를 못했던 뽀삐의 행동에 대한 결과는 참담했다.



집 밖행 and 개명.



강아지 이름이 화장지(유한킴벌리 뽀삐 화장지) 이름이랑 같아서 똥오줌을 잘 못 가리는 것 같다는 엄마의 진지한 의견으로 그 날부터 뽀삐는 ‘예삐’가 되었고, 아빠의 재간이 듬뿍 담긴 콘크리트 집에서 목줄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이것이 내가 기억하는 예삐와의 추억의 전부다. 작은 생명을 데리고 온 사람의 기억도 맞이한 사람의 기억도 둘 다 희미하기 때문이다.


전자는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생계전선에 뛰어들며 정신없는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기억이 희미해졌을 것이고, 후자는 어렸을 때 잦은 전학으로 인해 환경이 바뀔 때마다 어떻게든 적응하기 위해 애써온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기억이 희미해졌을 것이다.



그렇게 어느 순간부터 예삐는 나와 우리 가족의 기억 속에서 지워졌다. 부르는 사람도 기억하는 사람도 사라지니, 예삐의 삶도 우리 가족과 멀어졌다.
 


성인이 되고 난 다음에서야 나는 뒤늦게 예삐의 안부를 물었다. 누군가는 예삐가 목줄을 끊고 도망갔다고 하고. 누군가는 예삐가 사람들에 의해 잡아 먹혔을 거라고도 했다. 어떤 경우에서든 ‘좋지 않음’ 이였다.



 이제 와서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때 당시의 나는 한 생명에 대한 이해나 책임감이 턱없이 부족한 나이였다. 예삐를 끝까지 보살펴주지도 못했다. 지속적인 관심을 줘야 될 소중한 대상이라고 인식하지 못했다. 인간의 존엄성이란 단어도 배우기 전이었으니. 동물의 존엄성이란 단어는 더더욱 알지도 듣지도 못했다. 그리고 그런 것들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만큼 내면이 성숙하지도 않았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예삐를 놓친 걸까.

뒤늦은 죄책감에 기억을 더듬어 보지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기억은 더욱더 희미해지기만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요.

아마, 지금 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또 다른 예삐를 만들어 내지 않는 것이 아닐까. [강아지가 있었으면 좋겠다.] [고양이가 있었으면 좋겠다] 종종 생각하곤 하지만 나의 섣부른 생각과 이기적인 감정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와 행동으로 실천되지 않길 바라며 오늘도 나는 감정을 추스른다.




나의 뽀삐, 나의 예삐를 생각하며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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