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의 힘
독서를 시작한 지 어느덧 17년이 되었다.
한창 책 읽는 게 너무 좋아지기 시작했을 무렵,
마음을 붙드는 문장들이 마구 쏟아졌다.
그냥 넘기기엔 아까운 구절들, 흘려보내기엔 붙잡고 싶은 말들이 자꾸 남았다.
그래서 노트를 꺼내 한 글자 한 글자 옮겨 쓰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저 좋은 문장을 남겨두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언젠가 쓸 일이 있을까 싶기도 하고......
그런데 손으로 따라 써 내려가는 동안, 어느새 내 마음도 함께 정돈되고 있었다.
흐트러졌던 생각이 또박또박 정렬되고, 어지러웠던 마음이 글씨를 따라 차분해졌다.
필사를 하고 나면 묘하게 스트레스도 가라앉았고, 한 장 가득 채워냈을 때 느껴지는 작은 성취감도 좋았다.
노트 한 권이 꽉 채워졌을 땐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책을 읽기만 할 때보다 더 오래, 더 깊게 내 안에 스며드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12년째 필사를 하고 있다.
좋은 문장을 옮겨 담는 동안, 나의 글쓰기도 조금씩 다듬어졌다.
단순히 베껴 쓰는 일이 아니라, 좋은 문장을 내 안에 쌓아두고, 내 손끝으로 다시 길어 올리는 과정이었다.
그 시간들이 쌓여서 지금 이렇게 내 글을 브런치 스토리에 발행할 수 있게 된 것도 같다.
가끔 오래된 필사 노트들을 꺼내 펼쳐보면, 그때의 내가 고스란히 보인다.
그때는 내가 이런 문장에 공감했구나, 이런 마음이었구나.
무엇을 따라 썼느냐가 그때 내 마음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좋은 문장을 남기고 싶어서 시작했지만, 돌이켜보면 그 문장들이 나의 시간을, 나의 마음을, 그리고 지금의 나를 남기고 있었다.
문장을 따라 쓰던 그 시간들이,
나를 차곡차곡 쌓아주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의 내가 그 문장들처럼 단단히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