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뜰 날
2005년부터 2008년까지, 세 식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최저생계비는 약 100만 원이었다.
아빠는 식당에서 발이 퉁퉁 붓도록 일해 월급 120만 원을 받으셨다. 그걸로 중고등학생이던 나와 동생을 키우셨다.
월세는 15만 원에서 20만 원 정도였고, 나머지 돈으로 셋이 살았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빠듯했다.
방학이면 참치캔, 멸균우유, 즉석밥이 들어 있는 식품꾸러미가 집으로 배달됐다.
우리는 차상위계층이었다.
방학식 날이면 나눠주던 멸균우유 한 상자가 나는 창피하기보다는, 그저 무거운 짐이었다.
가난은 나에게 부끄러움이 아니었다. 세상엔 가난한 사람도 있고, 부자도 있다.
그냥 ‘그 가난한 사람이 우리구나’ 싶었다.
그건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아빠는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에게 ‘결핍’을 느끼게 하지 않으셨다.
그렇지만, 사실은 참 가난했다.
아버지가 자신을 위해 쓸 수 있는 돈은 아마 담배값과 소주 몇 병 값 정도였을 것이다.
그걸로 버티셨다.
그리고 아마, 그즈음. 세 번째 자살 시도를 하셨다.
나는 대학에 ‘굳이’ 입학했다.
그나마 국립대를 선택했지만, 그 시절엔 국가장학금 같은 제도도 없었다.
겨우 무이자 등록금 대출을 받아 다녔다.
어느 날,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누나, 내 용돈 5만 원 중에 2만 원이 남았는데, 그거 누나 줄까?”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멍해졌다.
너무 미안했고, 마음이 아팠다.
“아냐, 나도 용돈 남았어~”
그렇게 말하고는, 그날 이후 방학 중 칼국수집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두 달 동안 일하면서 알게 됐다.
내가 돈을 벌기 시작하자 우리 가족에게 숨 쉴 틈이 생겼다. 그게 분명히 느껴졌다.
그리고 그 경험이 나의 선택을 바꿨다.
‘내가 강의실에 앉아 있으면 지금 셋 다 숨이 가쁘다.
그냥 돈을 벌면, 셋 다 숨통이 조금은 트인다.
이깟 공부, 뭐라고.’
그래서 자퇴했다.
가난이 싫어서가 아니라, 우리는 원래 가난했으니까.
그냥 현실에 맞는 선택을 한 것뿐이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단 하루도 일을 쉰 적이 없다.
동생도 마찬가지다.
고3 겨울방학이 끝나자마자, 사촌오빠를 따라 타지로 나가 하수구 청소 같은 고된 일을 시작했다.
힘들다는 말 한 번 없이, 주말이면 집에 왔고 월요일 새벽 네 시면 다시 나갔다.
나는 꼭 따라 일어나 밥을 차려줬고,
그걸 먹여 보내놓고는 월요일 아침마다 울었다.
군대를 다녀온 동생은, 전역한 지 일주일 만에 다시 일을 시작했다.
우리는 돈을 벌 수 있는 조건이 주어진 순간부터 그 누구도 쉬지 않았다.
늘 그런 결심을 했던 것 같다.
‘우리 셋을 살게 하자’는 결심.
아무도 시킨 적 없는데, 자연스럽게 그렇게 살아왔다.
하고 싶은 게 없었던 건 아니다.
꿈도 있었고, 해보고 싶은 일도 있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현실을 먼저 살아내야 했다.
그 선택을 했다.
그리고 지금은, 셋 다 그런 가난에서 벗어났다.
월세를 벗었고, 각자의 집이 생겼고,
사고 싶은 걸 사고, 먹고 싶은 걸 먹고,
숨도 마음껏 쉰다.
가끔은 지금 이렇게 사는 게, 꿈같다.
어떤 꿈은 멋진 직업이나 대단한 목표가 아니다.
그저 무너지지 않고 살아내는 것.
그게 우리의 꿈이었다.
우리는 그 꿈을 살아냈고, 분명히 이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