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불러 본 적 없는 그 단어

by 윤선

나는 ‘엄마’라는 단어에 어떤 감정도 없다.

나에게 엄마라는 말은, 그냥 아저씨나 아주머니처럼

아무 감정 없이 부를 수 있는 호칭일 뿐이다.


친엄마는 내가 여덟 살이 되던 해, 내 삶에서 멀어졌다.

엄마라는 존재가 내 마음에 정립되지도 못하고,

그 단어는 내게 의미 없는 이름표처럼 남았다.

그래서 나는 '엄마'라는 단어를 볼 때마다

그 단어와 내 엄마란 사람을 자연스럽게 연결 짓는 게 늘 불편했다.

그 단어가 내 삶에서 실감 나지 않기 때문이다.


가끔 친엄마의 입에서 "엄마가”라는 말이 나올 때,

나는 더 어색해진다.

나를 낳아준 사람에겐 ‘나는 엄마’라는 사실이 너무 당연하고, 스스로를 그렇게 부르는 게 진리처럼 박혀 있을 테지만 내게는 그 말이 허공에 떠 있는 실체 없는 무언가 같다.




스물한 살, 나는 새엄마를 만났다.

그분은 내게 엄마라는 존재에 대한 정립을 할 수 있게 해 준 분이다.

오랜 시간 함께하며 애정과 따뜻함이 자연스럽게 생긴 사람이다.

그런데도 나는 그분을 향해

‘엄마’라는 단어를 쓰지 못한다.


어쩌면, 내가 엄마라는 단어를 새엄마에게 편하게 옮길 수 없는 이유는

내 안에 이미 너무 오래 자리 잡은 '엄마 = 나를 낳아준 사람’이라는 인식 때문인지도 모른다.

만약 내가 태어나자마자 그 존재를 알지 못했다면,

엄마라는 단어에 다른 의미를 채울 수도 있었을까.

하지만 나는 어릴 때부터

그 단어가 누구를 가리키는지 알고 있었고,

그 사실이 너무 선명했기에

엄마라는 단어에 다른 감정을 덧붙이는 일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없었다.




아이러니하다.

그 호칭이 뭐라고, 도저히 내 입으로 내뱉을 수 없다는 게. 마음이 없는 것도 아닌데......


차라리 나는 ‘새엄마’라고 부르면 더 자연스러웠을지도 모른다.

내 안에서 ‘엄마’라는 단어는 이미 오래전에 비어버렸고, 그 비어 있는 호칭에 억지로 내 감정을 얹는 일이

나에게는 더 불편한 일이다.

오히려 ‘새엄마’라고 부르면 내가 관계를 새롭게 정립해 부를 수 있었을 텐데, 그건 또 안 되는 일이다.


나는 내 감정과 맞지 않는 단어를 억지로 입에 얹고 싶지 않다.

그래서 결국, 말 대신 행동으로,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천천히 마음을 건넨다.


그리고 솔직히,

엄마라는 이 빈 단어를 내가 언젠가 채울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어쩌면 나는 끝까지 그분을 향해 ‘엄마’라고 부르지 못할지도 모른다.

내게 엄마라는 단어는 다른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사랑의 말일지 몰라도, 내 안에서는 이미 비어진 채로 너무 선명하게 굳어버렸기에 끝끝내 비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냥 그게 내 마음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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