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대신 웃음으로 껴안은 삶
언젠가는 집에 쌀이 떨어져 조개를 캐다가 며칠을 끼니로 때운 적이 있다.
동생과 나는 학교도 중퇴하고, 1년간 대전을 떠나 셋이서 남몰래 살던 때였다.
아빠는 읍내 짜장면집에서 배달을 하셨고,
우리는 낮시간이면 이웃집에 들키지 않게 학교 간 척하며 조용히 지냈다.
티브이도 켜지 않고, 웃음소리도 내지 않고.
앞뒤로 사람 하나 겨우 지나갈 좁은 골목,
기척 하나에도 숨죽이며 살았다.
아빠가 쉬시는 날이면 근처로 드라이브를 갔다.
(나중에 그 차도 문제가 되지만.)
그리고 종종 부안으로 조개를 캐러 갔다.
돈 안 들고, 시간은 잘 가고, 나름 신나는 놀이였다.
동생과 나는 이제는 학교에 매고 갈 일 없는 백팩에 조개를 가득 담아왔다.
해감하고 삶은 조갯살은 냉동실에 쟁여두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빠가 말했다.
“오늘부터 당분간 조개로 음식을 해서 먹어야겠다.”
너무 오래 두면 상하니까 빨리 먹어치워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조개부침개, 조개무침, 그냥 삶은 조개…
식탁엔 조개뿐이었다.
밥은 없었다. 사실은 쌀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그땐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아빠가 철저히 숨기셨으니까.
우리가 쌀이 없는 걸 눈치챌까 봐,
그것마저는 차마 티 낼 수 없어 숨기셨던 마음을
그땐 헤아릴 생각조차 못 했다.
이제는 그때의 아빠 마음을 어렴풋이 헤아리게 되었는데 그 마음이 너무 아리다.
다만 동생과 나는
지금도 조개를 안 먹는다.
그냥 질릴 만큼 먹어서 그런 줄 알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 그게 다는 아니다.
그 시절 이야기를 하면 우린 여전히 웃는다.
물 때 잘못 맞춰서 열심히 캔 조개 몽땅 버리고
허겁지겁 바다에서 뛰쳐나왔던 일
누가 더 많이 캤는지 장난치던 일.
그저 즐거웠던 추억이 되었다.
힘든 줄도 몰랐고,
쌀 떨어진 집에서 조개 캐다 먹는 일이
뭐 그리 특별한지도 몰랐다.
솔직히 말하면,
아빠가 쌀 없는 가난 마저는 숨겼을지언정
나와 동생은 우리 처지가 어떤지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안에만 갇혀 있진 않았다.
그때도 우리는 그 안에서 나름대로
삶을 즐기고, 하루를 채우고,
많이 웃고 있었다.
가난했지만
그 가난이 전부라고 생각하진 않았던 것 같다.
아빠가 우리를 위해 숨기려 했던 최선 덕분에,
우린 그 안에서도 살아낼 수 있었다.
조개가 싫어진 건,
그때 식탁에 올라온 조개마다
아빠가 숨기고 삼켰던 마음들이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때의 우린 몰랐지만,
아빠는 그 마음까지 같이 씹어 삼키고 있었다.
그 시절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힘든 줄 몰랐던 어린 우리에게
굳이 더 무거운 짐을 지게 하지 않으려 했던 아빠의 마음도, 그 안에서 웃으며 버텼던 우리도.
조개는 여전히 먹지 않지만,
그때 내가 먹었던 조개들은
살아내야 했던 날들이었고,
결국 그게 지금의 나를 만든 거다.
그리고 나는,
그때처럼 지금도 내 삶을 사랑한다.
기척하나에 숨죽였던 날들도,
밥 대신 조개로 때우던 날들도,
그 안에서 웃고 견디던 우리 셋의 시간도,
모두 내 삶이고, 내가 사랑하는 인생이다.
힘들었던 시간까지 끌어안고,
그 안에서도 웃을 수 있었던 우리는
그때 이미 충분히 강했고,
나는 지금도 그 마음으로 살아간다.
살아내는 일이 버거울 때도 있지만,
결국 내가 사랑하는 건
그 모든 날들을 껴안고 살아가는 나 자신이라는 걸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