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교환학생, 핀란드 유심 구입, 핀란드에서 만난 친절함.
그 당시의 내가 일기에 썼던 말
"아는 사람도 없고 핀란드어 당연히 할 줄 모르고 영어도 잘 못하는데.... 그런데도 나 되게 용감했구나. 대체 무슨 생각이었지?"
밤늦은 시간, 드디어 헬싱키(Helsinki) 시내에 도착. 핀에어(Finnair)에서 운영하는 공항 리무진 버스에서 내리자 헬싱키 중앙역(Central Railway Station)이었다.
일단 핸드폰부터 연결해야겠다고 생각하며 R-Kioski에 갔다. 여기서는 우리식의 편의점이나 신문 가판대 등의 작은 상점을 키오스크(Kiosk)라고 부르는데, 핀란드어로는 키오스키(Kioski)였다. 키오스키에서 이전에 멘토가 추천해준 Saunalahti라는 유심(Sim Card)을 샀다. 가격은 19.9유로. 첫 달에는 19유로이고, 두 번째 달에 연장하면 24.9유로였다. 데이터 무제한에 전화와 문자 메시지까지 된다. 그래서 노트북을 쓸 때도, 핸드폰 핫스팟에 연결해 사용하곤 했다. 유심을 살 때 받은 바코드는 잘 보관했다가, 다음 달에 키오스키에서 보여주면 현재 사용 중인 유심에 충전할 수 있다.
이제 유심도 챙겼으니 어서 길을 찾아 가봐야겠다. 핀에어 버스에서 만났던 분들이 말하길, 내리는 곳에서 나의 숙소까지 걸어갈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구글맵을 열고 핸드폰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내 위치를 찾아보았다. 모든 게 처음이었기에 뭐가 뭔지 정말 모르겠더라. 방향을 알 수 없어서 이쪽으로 조금 캐리어를 끌고 가보다가, 다시 저쪽으로 조금 캐리어를 끌고 가기도 했다. 그렇게 같은 자리에서 뱅글뱅글 돌고 있다 보니, 한 핀란드인 할아버지가 근처를 지나가는 게 보였다. 그래서 다가가서 길을 물었더니 함께 길을 찾아주겠다고 했다. 할아버지의 안내로 숙소까지 가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등의 소소한 질문을 받았고, 나는 날씨가 얼마나 추운지 여기서 지낸다는 게 얼마나 설레고 기대되는 일인지 이야기했다. 그러고 나서 한 광장을 지나쳐 어떤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그 건물은 Kamppi(깜삐)였고, 깜삐 버스 터미널을 통과하면 숙소까지 더 빨리 닿을 수 있었다.
그렇게 10분쯤 걸었을까. 어느새 숙소 앞에 도착했다. 초행길이었기 때문에 나에게는 그 10분이 30분처럼 길게 느껴졌다. 그리고 숙소 앞에서 나의 멘토 Miro를 만났다. 우리는 반갑게 인사를 나눴고, 내가 안전하게 도착했다는 것을 확인한 할아버지는 작별인사를 하고 자리를 떠났다. 무척 고마운 분이었는데 고맙다는 인사를 제대로 했던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 이후에 다시 볼 수 없었으니 지금 생각해도 무척 아쉽다. 그리고 HOAS 건물 앞에서 두 명의 여학생도 마주쳤다. 나와 같은 건물에 사는 교환학생들이었다. Miro가 전화로 시큐리티(Security)를 불렀고 곧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 이야기를 옆에서 듣고 있던 두 친구는 “그거 돈을 내야 하지 않나요? 그렇다면 우리 방에서 지내는 게 어때요? 우리가 재워줄 수 있어요.”라고 했다. 우리는 분명 방금 전, 문 앞에서 처음 만났는데도 말이다! 나에겐 아주 고마운 제안이었고 거절할 이유도 없었기에 좋다고 말했다. 그 당시에 내가 일기에 적었던 대로 나는 정말 용감했던 것 같다. 어떻게 그렇게 쉽게 수락했던 거지?
그래서 그 두 친구와 핀란드에서의 첫째 날을 보내게 되었다. 그 친구들은 Pai와 Sanya라고 하는 홍콩에서 온 교환학생이었는데, 내 방 바로 위층에 살고 있었다. 내가 도착하기 일주일 전에 먼저 핀란드에 도착해서 지내고 있으며, 홍콩에서도 같은 학교, 같은 전공이어서 핀란드에 오기 전부터 서로 아는 사이였다고 한다. 밤이 깊어지는 동안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눴고, 아직 영어가 너무나 어려워서 한참을 생각하며 느릿느릿 말했다. 그들은 두 개의 싱글 침대를 붙여서 큰 침대처럼 만들어 쓰고 있었는데 나는 두 친구의 사이에 누워 있었다. 나는 문득 깜깜한 천장을 바라보며 "아직 영어가 서툴고 어렵지만 언젠가 유창하게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Sanya는 나에게 "네가 교환학생을 마칠 때쯤이 되면, 분명 그렇게 될 거야"라고 했다. 나는 '정말 그렇게 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며 걱정과 기대를 반반씩 품었던 것 같다. 그때는 전혀 확신하지 못했지만,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바랬고, 시간이 지나고 나니 정말 Sanya의 말대로 되었다.
핀란드에 가기 한 달 전쯤, 프랑스 옹플뢰르(Honfleur)에 있는 바닷가의 한 식당에서 해산물을 먹은 적이 있었다. 먹는 방법을 헤매고 있었더니, 옆 테이블에 앉은 프랑스인 부부가 친절하게 방법을 알려주면서 "내가 이렇게 하면 언젠가 내가 한국에 가거든 누군가가 나를 도와주겠지."라고 했다. 나는 그것이 대가를 바라지 않고 베푸는 친절함이라고 느꼈다. 그 부부가 자신이 베푼 만큼 누군가로부터 반드시 받아내겠다는 것은 아니었기에, 그저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있으니 세상이 더 살기 좋은 곳이 되리라는 믿음으로 보였다. 그리고 핀란드에서는 이런 친절함을 수도 없이 경험했다. 핀란드에 도착해 숙소까지 가는 동안 정말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다. 나를 위해 늦은 밤 시간에 달려와 준 멘토 Miro는 물론이고, 갈 곳 없는 나를 재워준 두 친구 Sanya와 Pai 그리고 나를 헬싱키 중앙역에서 HOAS까지 데려다준 이름 모를 할아버지, 마지막으로 핀에어 버스에서 나에게 길을 가르쳐준 두 핀란드인까지. 핀란드에 처음 도착해 어리둥절해하는 나에게 이렇게나 많은 친절을 베풀어줘서 정말 감사하고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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