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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제 Jul 21. 2019

서류가 잘못되었군요, 당장 핀란드에서 떠나세요

핀란드 교환학생의 마실 물을 구하는 법, 둘째 날의 악몽

헬싱키 시내 구경을 하다가 마주친 헬싱키 대성당. 왼쪽 측면 사진이다. 이맘때 한참 보수공사를 하고 있었다.


핀란드에 도착한 지 이틀째

오늘의 할 일

HOAS Office에 가서 내 방 열쇠 받기

투어리스트 센터에서 Helsinki 지도 가져오기

핸드폰 충전기 사기

콘텍트렌즈 세정제 사기 

마실 물 구하기




핀란드에서의 둘째 날이 밝았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같은 건물 1층에 있는 HOAS Office에 갔다. 번호표를 뽑고 조금 기다리니 곧 내 차례가 왔다. 창구에 가서 “l’d like to collect my key(제 열쇠를 받으러 왔어요).”라고 말하고는 여권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곧 열쇠를 건네받았다. HOAS의 열쇠는 일반 열쇠가 아닌 전자식 열쇠였는데, 덕분에 현관문을 열 때나 엘리베이터를 탈 때, 방 문을 열 때 모두 사용할 수 있었다.


드디어 들어가게 된 내 방의 첫인상은 일단 무척 넓다는 것이었다. 대학교 기숙사의 닭장같이 좁은 방에서 생활했던 것과 비교하면 매우 크고 쾌적한 방이었다. 북유럽에서는 삶의 질을 위해 방을 일정 크기 이상으로 만든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었던 것도 같다. 방에는 주방과 화장실 그리고 침대 둘, 정사각형 탁자 하나, 직사각형 탁자 하나, 의자 셋, 안락의자 하나가 있었다. 나는 방에 있던 가구들을 적당히 배치하고, 짐을 풀었다.


그런데 짐을 살펴보니 은근히 빠뜨리고 온 것이 많았다. 핸드폰 충전기, 렌즈 세정제 등등등. 분명 꼼꼼히 챙긴다고 챙겼는데도 말이다. 필요한 물건도 좀 사고 어떤 지역 이벤트가 열리는지도 확인하고 헬싱키 지도도 구할 겸 밖으로 나갔다.




헬싱키 투어리스트 센터, 스톡크만 백화점(Stockmann)

9월의 헬싱키는 내겐 너무 쌀쌀했다. 우리나라의 11월 정도의 날씨였는데, 몇몇 핀란드 사람들은 반팔을 입고 다니며 여름을 즐기는 모습이었다. 물론 추위를 잘 타는 나는 두꺼운 후드 집업을 입고도 추웠다. 헬싱키 시내 중심가로 걸어 나가 투어리스트 센터에 갔다. 투어리스트 센터는 에스플라나디(Esplanadi) 공원 근처의 노란색 건물에 있었는데(지금은 다른 곳으로 이사 간 것 같아 보인다.), 일단 거기 가서 오늘 뭘 할지 정할 생각이었다.


헬싱키 시내를 돌아다니며 사진도 찍고 헬싱키 대성당도 구경하며 느긋하게 걸어서 투어리스트 센터에 도착했다. 센터에 있던 한 직원에게 말을 걸어서 어디에 가면 핸드폰 충전기를 살 수 있는지 물었다. 그분은 스톡크만 백화점을 가르쳐주며 거기에 가면 살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콘텍트 렌즈 세정제를 어디에서 살 수 있는지 물어보니, 그것도 스톡크만 백화점에 가면 된다고 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직원의 이름표엔 대략 7개의 서로 다른 국기가 보였다. 과연, 7개 국어를 능수능란하게 할 수 있다는 걸까? 갑자기 궁금해진 나는 대학에서 배웠던 짧은 프랑스어로 이야기를 이어가 보았다. 그러자 직원은 폭포수처럼 빠른 프랑스어로 답변했다. 나는 겨우 절반 정도만 알아들을 수 있었는데, 그 직원의 언어 능력에 아주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시간이 지날수록 깨달은 것이지만 핀란드 사람들은 정말 언어에 특화된 것 같다! 어딜 가든 다개국어를 유창하게 하는 핀란드인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그리고 헬싱키 지도와 마침 열리고 있던 헬싱키 디자인 위크(Helsinki Design Week)의 디자인 디스트릭트(Design District) 지도를 챙겨서 나왔다. 그리고 스톡크만 백화점(Stockmann Helsingin Keskusta)으로 향했다.


일단 스톡크만 백화점 1층에 있던 약국에 들러 렌즈 세정제를 사고, 3층쯤에 있던 전자제품 코너에서 아이폰 충전기를 샀다. 그리고 지하 식료품 코너에 있던 한 슈퍼에서 간식(오렌지) 약간과 물을 사러 갔다. 전에 프랑스(France)에서 공부하던 시절, 물을 잘못 먹어서 몸이 절로 아파왔던 기억을 되새기면서, 이번에는 꼭 깨끗한 물만 마시겠단 생각이었다. 그래서 1.5리터짜리 생수를 찾는데, 아무리 찾아도 적당한 게 보이지 않았다. 전부 향이 첨가된 물이거나 탄산수뿐이었다. 결국 제일 무난해 보이고(라벨이 연회색이고) 겉에 과일이나 허브 그림이 안 그려져 있는(하지만 공기방울은 그려져 있는) 물을 샀다. 나는 ‘공기방울은 그냥 물이 신선하다는 표시겠지’라고 생각했고, 설마 이 수많은 물 중에 생수(Spring Water) 하나쯤 없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집에 돌아와서 물을 열어 보니 아니나 다를까 역시 탄산수였다. (흑흑) 나중에서야 알게 된 것이지만 핀란드에서는 그냥 수돗물을 마신다. 물컵에 수돗물을 받아서 마시는 게 아주 당연한 일이고, 아무도 물을 끓여 먹지 않고 정수기를 쓰지도 않는다. 그래서 그렇게나 향이 첨가된 물과 탄산수만 가득했던 거구나. 마실 수 있는 수돗물 처럼 가장 기본적인 곳에서 철저한 점이 북유럽 답다고 느꼈다.


저녁 식사는 맥도널드에서 사 와서 해결했다. 핀란드에서의 제대로 된 첫 끼니였다. 어디에 무슨 식당이 있는지도 모르겠고, 무슨 음식을 먹어야 하는지도 모를 땐 역시 맥도널드가 간편하고 좋지! 프랑스에서 교환학생을 했던 친구와 이야기를 하다가 집 근처에 있는 맥도널드에 걸어가서 저녁을 사 왔다고 말하니, 그러면 동네가 “매우 도시”인 거라고 했다. 서울의 큰 도로와 건물들, 북적이는 상점이나 많은 사람과 비교할 정도는 아니지만 분명 매우 도시는 맞는 것 같았다.






또 다시 찾아온 위기

서류가 잘못되었군요. 당장 핀란드를 떠나세요!

이제 핀란드에 조금 적응하고 익숙해졌을 무렵인 둘째 날, 갑자기 전화가 왔다.

“당신이 제출한 서류에 작은 문제가 있군요. 교환학생이 취소됐어요. 당장 영국으로 떠나세요! 이제 영국에서 교환학생을 해야 합니다.”

“네? 뭐라고요? 안 돼!!!!!!”


정말 말도 안 되고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며 슬퍼하다가 꿈에서 깼다. 완전 이상한 악몽이었다.


잠깐 동안이었지만 이제 막 도착해 조금씩 정이 들려한 헬싱키를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 무척 슬펐다. 아직 이 근처도 제대로 둘러보지 못했고 길도 다 못 외웠는데! 나중에 여길 다시 오거든 하나도 기억 안 나면 어쩌지! 언제 다시 헬싱키에 올 수 있을까? 여러 생각을 하며 아쉽기만 했다. 하지만 곧 납득하고 이제 막 핀란드가 좋아지려 했는데, 벌써 떠나야 한다는 아쉬움과 영국에서는 어떻게 지내게 될까 하는 기대가 반반씩 섞인 막막함이 밀려왔었다. 물론, 이 말도 안 되는 전화는 제정신이었다면 이상하다는 걸 금방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꿈이었기에 비현실적이라도 전혀 의심되지 않았다. 그래서 아주 잠깐 동안이었지만 핀란드를 떠나는 기분을 느끼고 나니, 내가 지금 핀란드에서 무사히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 고마웠다.


첫 번째로 진짜 너무 다행이었고, 두 번째로도 진짜 너무 다행이었다. 핀란드에 여전히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물론 그간의 엉망진창의 수습 과정도 있었지만 그런 건 핀란드를 떠나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사소한 일이다. 사실 교환학생을 지원할 때, 미술대학의 교환학생 프로그램으로 영국 UAL(University of the Arts London)에도 지원했었다. UAL도 분명 좋은 선택지지만 내 계획과는 맞지 않았고, 그래서 핀란드에 왔다. 핀란드가 아직 낯설다고 느꼈었는데도 막상 떠난다고 생각하니 아쉬웠던 걸 보면 그 당시의 나도 헬싱키를 꽤 마음에 들어했었나 보다.


그때쯤의 나는 “내가 핀란드에 있다니, 내가 핀란드라니!”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모든 것이 너무 신기했고 새로운 것들이 가득한 나날이었다. 그리고 그날 밤, 몇 달간 메일을 주고 받았던 내 룸메이트가 핀란드에 도착했다.






9월 초의 헬싱키. 공기도 맑고 하늘도 맑았다. 이 풍경을 기억할 수 있게 해 줘서 고마운 사진.



약국에서 사 온 렌즈 세정제와 헬싱키 지도. 그리고 저녁으로 먹은 맥도널드. 이것이 핀란드에서의 제대로 된 첫 식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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