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환학생의 자취요리, 헬싱키 아시안 마켓, 핀란드에서 장보기
핀란드 물가
엄청난 극악의 물가(e.g. 런던)는 아니라고 해도 다른 유럽지역에 비해서는 확실히 비싼 편이다. 한편 우리나라와 비교하자면 대체로 비슷하거나 조금 더 비싼 정도였는데도, 식료품만큼은 핀란드(Finland)가 더 저렴했다. 덕분에 자연스럽게 직접 요리하게 되었다. 학교 끝나고 집에 오는 길에 내 단골 마트인 K-market에 들러 식료품을 쇼핑하는 게 작은 즐거움이었다. 매일 같이 양배추나 감자 같은 식료품을 사러 갔었고 내가 좋아하는 과일(귤)도 실컷 사 먹곤 했다. 핀란드의 슈퍼마켓에서는 과일이나 야채를 포장하지 않은 채로 판매하는 게 일반적인데, 각 품목마다 100g당 가격이 쓰여있었고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양만큼 무게를 달아 구입할 수 있었다. 방법은 다음과 같다.
1. 비치되어있는 투명 비닐에 원하는 만큼 과일이나 채소를 담는다.
2. 저울에 올린 뒤, 품목을 선택한다.
3. 품목과 무게에 따라 계산된 가격이 바코드에 찍혀 나온다.
4. 바코드 스티커를 비닐에 붙이면 끝.
한 번은 계산대에서 사과에 바코드를 직접 붙여서 가져온 분을 본 적이 있다. 사과 하나였으니까 비닐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아서, 그리고 바코드 스티커를 과일에 직접 붙이는 것에 심리적 거부감이 없어서 인 듯했다. 과일이나 채소 말고도 빵 종류도 포장을 하지 않은 채로 판매했고, 비치된 종이봉투에 원하는 개수만큼의 빵을 담아서 살 수 있었다. 딱 원하는 양만큼 구입할 수 있어서 나 같은 교환학생에겐 더없이 좋은 시스템이었다.
핀란드 교환학생의 잘 먹기 프로젝트
나는 핀란드 헬싱키에서 교환학생으로 지내는 한 학기, 그러니까 4달 동안 대개 3가지 방법으로 식사를 해결했다.
1. 집에서 만들어 먹기: 가장 저렴함. 맛이 없을 때도 있음. 요리하는 데 시간이 듦. 원하는 걸 먹을 수 있음.
2. 학생식당에서 먹기: 저렴함. 학교에 가야 먹을 수 있음. 메뉴를 마음껏 고를 수 없음. 빵과 우유 또는 크랜베리주스 그리고 샐러드까지 포함된 균형 잡힌 식사.
3. 외식 하기: 가격이 비쌈. 어느 식당이 괜찮은지 잘 모르겠음.(한 번은 대실패를 한 적이 있었다. 내 입맛에 맞지 않은 데다가 비싼 식당이었는데 정말 돈이 아까웠다. 자세한 스토리를 듣고 싶은 분이 있다면 적도록 하겠다.)
+a 친구 찬스(친구가 요리해 줄 때)
이번에는 1번 집에서 요리해 먹은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교환학생 초기
이때는 모든 게 부족했던 시기다. 요리를 많이 하게 될 거라고 생각도 안 했기에 조미료가 얼마나 필요한지도 몰랐고 살 생각도 거의 안 했다. 케첩이나 마요네즈는 물론이고 소금이랑 설탕, 식용유도 없었다. 대신 나에겐 이케아(IKEA)에서 룸메이트와 함께 산 냄비와 도마, 그리고 칼이 있었다. 접시와 커트러리(cutlery)도 전부 이케아에서 샀다.
그러다가 헬싱키에 있는 아시안 마켓을 알게 되었다. 기대도 안 했던 거였다. 아시안 마켓을 찾아낸 후, 아는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게 되어서 나의 식생활이 한결 풍요로워 졌다. 주로 두부나 어묵, 라면, 만두 같은 간편하게 요리해 먹을 수 있는 것들을 구입하곤 했다. 아시안 마켓은 헬싱키 지하철 하카니에미(Hakaniemi)역 주변에 있다. 그 근방에 내가 아는 아시안 마켓만 4군데 인데, 아마 더 있을 지도 모르겠다. 하카니에미 골목을 살피며 돌아다니다 보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아시안 마켓은 대부분 아마도 중국계 이민자들이 운영하는 듯 했다(친구들이 중국어로 직원과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취급 품목은 만두나 라면 같은 간편식부터, 간장이나 고추장등의 각종 소스와 향신료, 청경채나 배추 같은 채소류, 오징어, 아이스크림, 음료수, 쌀, 과자, 밀가루, 카레가루, 튀김가루 등. 웬만한 건 다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심지어 만두를 찔 때 쓰는 대나무 찜통까지 있었다.
Helsinki의 Hakaniemi 지역
Find local businesses, view maps and get driving directions in Google Maps.
www.google.com
계속해서 비슷한 재료가 보이는 것 같다면, 당신은 눈썰미가 좋은 것이다! 그렇다. 혼자 식사를 만들어 먹다 보니 매 끼니에 비슷한 식재료를 사용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어묵과 두부는 한 번 사면 여러 번 만들어 먹었고, 양배추는 쌈처럼 먹기도 하고 떡볶이에 넣어 먹기도 했다. 떡볶이는 아시안 마켓에서 파는 떡볶이떡과 떡볶이 소스로 간편하게 만들었다.
교환학생 중반
결국 소금도 사고 설탕도 사고 식용유도 샀다. "나중에 정말로 필요해지면 사야지!"라면서 미뤄뒀던 것들도 전부 샀다. 일단 조미료와 소스가 갖춰지니 할 수 있는 요리도 많아졌다.
냉장고는 룸메이트와 나눠서 썼는데 대부분은 내 음식이었던 것 같다(사진에 표시한 것 중에선 햄을 빼고 전부). 냉동실이 없어서 아이스크림은 항상 냉각기에 옆에 바짝 붙여 놓곤 했는데, 그럼에도 잘 녹아버려서 아쉬웠다. 한 번은 같은 건물에 사는 친구들과 이야기하다가 3층에 사는 친구네 방에는 냉동실이 있다는 얘길 들었다. 분명 똑같은 방일 거라 생각했는데, 어째서!
나 "Why is that? I have no freezer!" "왜 그런 거야? 난 냉동실이 없다구!"
친구 "It's HOAS." "호아스잖아(뭘 더 바래)."
그러면서 덧 붙이길, 헬싱키 지역의 학생 아파트인 HOAS는 같은 건물에 있는, 같은 가격에 같은 크기인 방이라도 방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다고 했다.
호떡은 아시안 마켓에서 산 한국 회사의 호떡믹스로 만들었다. 한국에 있을 때부터 호떡을 매우 좋아해서 여러 번 만든 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날도 늘 그랬듯이, 무심하게 그리고 무심코 호떡을 만들다가, 친구 중 누군가가 땅콩 알레르기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래서 설탕만 넣은 호떡을 따로 만들었다. 나중에 물어보니 함께있던 친구 중 한 명이 땅콩 알레르기가 있다고 하더라. 그 친구는 내가 땅콩을 빼고 호떡을 만든 걸 보고 "정말 상냥하다"며 고마워해줘서 내심 아주 뿌듯했다. 따로 만들길 정말 잘했다!
교환학생 후반
요리실력이 늘어난 것일까? 무슨 재료로 뭘 만들면 좋을지 같은 눈썰미가 좋아졌고, 무엇보다도 재료가 다양하게 갖추고 있으니 요리하기가 한결 편했다. 한편, 직접 요리하는 건 편해졌으나 잦은 모임과 이벤트 참여로 초반보다 오히려 더욱 요리를 안 하게 되었다. 친구네 집에 놀러 가서 먹기도 하고, 핀란드 주변 나라를 여행하기도 하면서 요리해먹는 빈도가 더 줄었던 것 같다.
핀란드에서 쌀은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었다. 내가 자주 갔던 K-market에도 1kg짜리 소포장된 쌀을 판매했다.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슈퍼라면 거의 쌀을 취급하는 것 같다. 물론 20kg 이상 되는 큰 쌀 포대를 사려면 아시안 마켓에 가야 한다. 나는 원래도 쌀밥을 잘 안 먹기도 했고, 혼자 먹을 정도면 충분했으니 1kg짜리 한 팩을 샀다. 밥솥이 없어서 스테인리스 냄비에 밥을 짓곤 했는데, 냄비밥도 짓다 보니 익숙해지고 실력도 늘었다.
특히나 이 시기에는 닭볶음탕 양념을 정말 유용하게 잘 사용했다. 역설적이게도 이걸로 닭볶음탕을 만든 적은 없으나, 닭갈비, 고추장 삼겹살 등을 만드는 데 쓰곤 했다. 그중에서도 닭갈비는 친구들에게 여러 번 대접해 주곤 했다.
닭갈비(진짜 닭 갈빗살은 아니었다)는 슈퍼 닭고기 코너에서 찾은 꽤 괜찮아 보이는 닭고기로 만들었다. 처음에 대체 무슨 부위일까 궁금해서 핀란드어를 영어로 바꿔주는 사전을 사용해 검색해 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영어로도 무슨 부위인지 알 수 없었다. 반드시 닭가슴살만은 피하고 싶어서 옆에 있던 핀란드 분에게 "이게 대체 무슨 부위일까요?"라고 물어본 적도 있었다. 그분은 잠시 멈칫하더니 "이거 맛있는 부위다. 추천한다"면서 "나도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라고 덧붙였다. 아무튼 맛있겠구나 생각하고 얼른 사 와서 닭갈비를 만들었다. 나중에 한국에 돌아온 뒤에야, 그게 닭안심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쯤에서 다시 초반과 비교해볼까?
우리, 여기서 또 만나요!
인스타그램 - 그림 www.instagram.com/ssszee_
인스타그램 - 사진 https://www.instagram.com/ssszee_sze/
트위터 https://twitter.com/ssszee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