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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제 Jan 27. 2019

나는 왜 핀란드에 갔을까?

핀란드에서 교환학생으로 살기, Aalto University

내가 "핀란드(Finland)"라고 하면 다들 꼭 한 마디씩 하는 말이 있다.

너무나 많이 하는 말이라서, 굳이 또 하고 싶진 않지만, 그래도 한 번 말해보자면...

바로 자일리톨껌이다. 연신 “휘바~휘바~~”를 외치며 핀란드 사람들이 정말로 자기 전에 자일리톨껌을 씹는지 물어본다. 당연히 나 또한 핀란드 사람이 아니기에 모른다. (껌 광고 하나가 사람들에게 미친 영향력을 보시라!) 두 번째는 "근데 거기 엄청 춥지 않아?" 사실 12월의 헬싱키는 대개 최고기온은 1도 최저기온은 -3도 정도 된다. 이따금씩 헬싱키에 추위가 찾아오면 -15도까지 내려가기도 하지만 서울에도 이런 강추위는 온다. 세 번째는 핀란드와 필리핀을 바꿔 말하는 것이다. 이건 마치 슈베르트의 송어를 숭어로 헷갈리는 것이랑 비슷해 보인다. 이렇게 보니 핀란드는 정말로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나라인가 보다.



알토대학교(Aalto University)에서 만난 핀란드인 친구들도 나에게 꼭 한 번씩 묻는 것이 있었다.

“What brings you to come here?(어째서 핀란드에 왔어? 무슨 이유로 핀란드에 온 거야?)” 나는 그때마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왜 핀란드에 왔냐고? 꼭 특별한 이유가 있어야만 했나? 나에겐 너무나 당연하게도 핀란드였는데…’

나는 핀란드에 스스로 선택해 왔으면서도, 핀란드에 온 이유가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는 명확하게 대답하기 어려웠다. 중요한 한 가지 이유가 있었다기 보단, 작지만 복합적인 여러 이유 때문에 핀란드에 간 것이어서 그랬나 보다. 그래서 그 질문을 받을 때마다 한 번에 꼬집을 수 없는 이유들을 주절주절 말하거나 혹은 얼버무리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물론 영어로 말하는 게 익숙하지 않았던 나는 주로 얼버무리는 쪽을 택했다. 

“Well, I don’t know. I guess because I like snow and forest. (음 글쎄, 나도 모르겠어. 아마도 내가 눈이랑 숲을 좋아해서인가 봐.)”










수많은 나라, 수많은 학교 중에 핀란드의 알토대(Aalto Yliopisto)에 간 이유

교환학생이나 유학을 간다고 하면 으레 가는 영어권 국가나 혹은 가까운 아시아 국가도 아니고, 왜 하필 핀란드에 갔던 걸까? 어느 곳으로 교환학생을 갈 것인지는 전적으로 나의 선택에 달려있었기 때문에, 내가 맨 먼저 한 일은 판단 기준을 정하는 것이었다. 나를 위해 정한 나의 주관적인 기준은 크게 3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할 수 있는 곳인가?  

나는 특별한 기회가 없으면 쉽게 가지 못할 만한 곳에 가고 싶었다. 비슷한 문화나 기후를 가진 곳보다는 다른 대륙이나 문화권으로 가서, 다른 모습의 삶을 직접 경험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우선 가까운 아시아 국가들을 제외했다. 나는 교환학생을 가서 나의 경험을 늘리고 삶을 보다 풍부하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기에, 이왕이면 멀리 있는 나라나 다른 학생들이 잘 가지 않는 지역으로 가고 싶었다.

   



     두 번째, 현실적으로 내가 갈 수 있는 곳인가? 

사실 제일 중요한 기준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국제 교류 학교 리스트 중에서 내가 지원할 수 있는 곳이어야 했다. 몇 군데 학교는 그 나라 언어를 할 줄 알아야만 지원할 수 있었기에 제외하고(예를 들면, 중국은 HSK, 일본은 JLPT 같은 영어 이외의 외국어 성적이 필요했다), 나의 관심사와 일치하는 곳 중 비교적 낮은 영어 점수로 갈 수 있는 곳을 추려보니 4곳이 남았다. 바로 프랑스 파리, 미국 필라델피아, 캐나다 퀘벡, 그리고 핀란드였다.

이쯤 까지만 해도 나의 마음속 그래프는 이 정도.




    세 번째, 미래의 나에게 도움이 될 만한 곳인가?

난 분명 디자인 전공인데, 학교에서는 내가 하고 싶은 디자인을 할 수 없었다(이건 진짜 사실이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건축이나 인테리어, 가구 디자인을 많이 보고 느낄 수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나는 알바르 알토(Alvar Aalto)라는 핀란드의 건축가를 알고 있었으며, 알토대학교(Aalto University)가 그의 이름에서 따온 이름이란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학교 리스트에서도 유난히 핀란드의 알토대학교가 눈에 띄었고, 언젠가 교환학생을 가면 알토대 같은 곳으로 가면 좋겠다고 생각하곤 했다. 나에게 핀란드는 디자인이었다. 


알바르 알토. 핀란드의 건축가, 디자이너. (사진은 여기에서 가져왔다: http://architectuul.com)


그런데 핀란드에서 만난 한 교환학생이 말하길, 핀란드 하면 역시 교육이라고 했다. 그 친구는 교육학을 전공하는 한국인이었는데, 나도 핀란드의 교육에 대해서 익히 들어보았기에 납득이 갔다. (전공에 따라 이렇게나 관점이 다르다니 참 신기하다!) 핀란드의 교육은 여기저기서 모범 사례로 다뤄질 정도라고 하니, 핀란드의 교육이 궁금하다면 여기를 참고할 것! →  [EBS 세계의 교육 현장: https://youtu.be/YZBz8 BTIxHU ]


한편으로는, 대학에 진학하고부터 줄곧 공부했던 프랑스어를 더 해보기 위해, 불어권으로 가는 것도 괜찮아 보였다. 프랑스나 캐나다 퀘벡에서, 영어로 공부하고 프랑스어로 생활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았다. 그게 아니라면, 처음 교환학생을 꿈꿀 때부터 가고 싶었던 미국도 좋을 것 같았다. 펜실베이나주 필라델피아(Philadelphia, PA)에 위치한, 이름이 잘 기억나지 않는 그 학교는 마침 미술분야에 특화된 곳이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거의 마지막까지도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튼 이런 부분에서 난 옛날부터 욕심이 아주 많았다. 하나도 안 놓치고 싶어 했던 것 같다.)







지원서에는 3 지망까지 쓸 수 있었는데, 나는 어떤 곳을 1 지망으로 적을지 거의 마지막까지도 고민하고 있었다. 전부 너무나 좋은 곳이었고 정답은 없었기 때문에 그저 마음이 끌리는 곳에 가면 되지만, 어느 곳을 가더라도 가지 못한 다른 곳이 무척 아쉬울 것만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파리 테러와 미국 총기 사고가 일어났다. 그 사건들 이후부터 나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역시 안전이 최고야!”라는 기준이 생겼다.



그렇다. 일단 나의 안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나의 주관적인 마음의 기준에서 가장 안전한 곳은 핀란드



안전문제는 단번에 다른 기준들을 삼켜버렸고, 마지막 결정을 내리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역시나 다른 것들보단 무사히 교환학생을 마치는 것이 가장 소중하다. 그래서 지원서에 핀란드, 캐나다 퀘벡, 프랑스 파리 순으로 적어서 내게 되었다. 그리고 핀란드 알토대학교에 지원한 다른 학생이 없었기에, 자연스럽게 핀란드에 가게 되었다. 이제와 다시 생각해보면, 마지막 즈음에는 이미 마음은 핀란드로 기울고 있었는데도 남의 떡이 커 보이는 효과 때문에 다른 선택지를 포기 못했던 것 같다.



그 외에도 감성적이고 조그마한 이유들로는 나는 더위보다는 추위를 좋아하고, 하얀 눈이 펑펑 내리는 것도 곧게 뻗은 침엽수림도 좋아한다. 겨울 밤하늘의 별을 보는 것도 좋아하고, 한산한 거리도 좋아한다. 숲 공기를 마시거나 조용히 책을 읽는 것도 좋아하고, 새가 지저귀는 것이나 작은 야생동물을 구경하는 것도 좋아한다. 그리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보다 밤늦게까지 깨어있는 것을 좋아할 정도로 야행성인 데다가, 온종일 집에만 있더라도 괜찮은 집순이다. 어느 모로 보나 나는 핀란드에서 살면 딱 알맞을 것 같은 사람인 듯하다. 이렇듯 내가 핀란드에 간 이유는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사소하지만 무척이나 소중하고 중요한 이유들이 맞물려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핀란드인 친구들이 왜 핀란드에 왔냐고 물어볼 때마다 무척이나 난감했던 것이다. 게다가 영어를 잘 못했던 그 당시의 나로서는 구구절절 사연을 설명하기도 어려웠으니 말이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혈혈단신의 몸으로 훌쩍 핀란드로 떠났던 내가 참 용감해 보인다. 어째서 그렇게 용감할 수 있었는지 다시 생각해봐도 신기하다. 그런데 누군가가 사람 일은 모르는 것이라고 했던가. 처음에는 큰 이유 없이 시작된 핀란드와의 인연이었지만, 마지막에는 핀란드에 오길 정말 정말 잘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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