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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제 Jan 09. 2020

유방암을 이겨낸 사람들을 위한 비키니, 모노키니

핀란드의 대학 수업, 나약함을 드러내기, Monokini 2.0 이야기


Monokini 2.0: 누가 꼭 둘이어야 한다고 했나?



두 명의 교수님

현업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두 명의 교수님

내가 알토대학교(Aalto University)에서 들었던 수업 Method Madness은 특이하게도 두 명의 교수님이 강의했다. 두 분 모두 무척 유쾌하고 즐거운 분들이었는데, 대학에서 강의를 하면서도 현업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현대 미술과 디자인 분야에서 공연, 워크숍, 프로젝트, 사진, 비디오 작업을 하고 있었다. 듀오로서 정말 다양하고 재미있는 일을 벌이고 다니는 것 같았다. 진짜배기 아티스트를 보는 느낌이었다. 굳이 어떤 분위기냐고 묻는다면, 픽사(PIXAR)의 장편 애니메이션 인크레더블(The Incredibles)에 나오는 디자이너 에드나에 까르르 웃는 유쾌함과 재치를 더한 느낌이었다. 디자인 전공 학생으로서 롤모델로 삼고 싶을 만큼 멋진 분들이었다. 게다가, 체면을 차리기 위해 몸을 사리거나 위엄 있어 보이기 위해 학생들에게 고의로 날카로운 말을 내뱉지도 않았다. 그래서 그들이 더 좋았고, 그들의 수업 방식도 학생을 존중한다고 느껴졌다.


처음에는 교수님이 두 분이라는 점을 별다른 큰 일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교수님이 자기소개를 하면서 “교수가 두 명이기에 학교에서도 이 수업에 지불하는 돈이 많은 셈”이라고 했다. 알토대학교가 이런 아주 실험적이고 직관적인 워크숍 위주의 수업에 투자를 많이 한다는 뜻은, 그만큼 창의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심지어 이 수업을 듣는 학생이 겨우 열 명 정도였는데도 말이다.





모노키니가 뭐지?

유방암을 이겨낸 사람들을 위한 수영복, 모노키니 Monokini 2.0

수업 중에는 두 교수님이 직접 작업했던 프로젝트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는데, 유방함 환자를 위한 수영복인 모노키니(Monokini 2.0) 디자인이 그중 하나였다.


두 교수님인 카트리나(Katriina Haikala)와 빌마(Vilma Metteri)의 주도로 만들어진 Monokini 2.0 프로젝트에서는 여성의 이상적인 외모에 대한 기존의 고정관념을 재정의 하고자 새로운 수영복을 디자인했다.


출처: www.monokini2.com/




프로젝트를 간단히 설명하면, 유방암을 겪은 뒤 한쪽 가슴을 들어낸 여성들을 위한 수영복을 디자인이다. 그렇게 디자인한 수영복으로써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것'과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것'의 범위를 확장하고자 하는 것이 프로젝트의 목적이라고 한다. 한쪽 가슴이 없거나, 혹은 두 쪽 가슴 모두 없어도 여전히 아름답다는 것을 보여주고, '무엇이 적절한지'에 대한 고정관념을 파헤치는 것이다. 여성의 신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옷이 수영복이기도 하고, 수영복(특히, 비키니)은 유방 절제술을 받지 않은 여성을 기준으로 디자인되었기에 이런 프로젝트를 기획했다고 한다.







두려움이 일어났을 때

“만약 아무도 지원하지 않으면 어쩌지”

Monokini 2.0 프로젝트에서 내게 가장 와 닿았던 부분은 두 분이 프로젝트를 만들어가면서 어떤 어려움을 느꼈는지였다. 프로젝트의 주제가 무엇인지, 무엇을 목표로 했는지, 그 결과로 무엇을 얻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물론 유익했지만, 그런 이야기는 여러 곳에서 많이 접해왔다. 하지만 프로젝트를 하면서 어떤 어려움을 헤쳐 나갔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그 진솔한 용기 때문인지 아직도 기억에 뚜렷하다.



출처: monokini2.squarespace.com/catwalk-show



교수님의 이야기를 요약하면 이렇다. 모노키니 디자인을 완성한 뒤, 수영복을 선보이는 패션쇼(cat walk)를 기획하면서 유방암 환자였던 모델도 필요해졌다. 그런데 모델을 모집하기 위해 공고를 냈을 때, 큰 두려움이 생겼다고 한다.


“만약 아무도 지원하지 않으면 어쩌지.”
“사람들이 자신이 유방암 환자였다는 걸 밝히고 싶어 하지 않을지도 몰라.”
“자신의 유방을 들어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어 할까?”



그런데, 메일을 확인하면서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메일함이 폭발할 정도로 많은 메일이 도착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메일에는 한 결같이 열정이 넘치는 멋진 여성들의 이야기가 가득했다. 어떻게 유방암을 극복해냈고, 지금의 스스로를 얼마나 많이 사랑하며, 그래서 지금은 자신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 하는 전 세계의 여성들이었다. 그래서 두 교수님은 자신들이 벌인 일이 아주 뿌듯했다고 한다. 또한, 누군가가 스스로를 표현하는 데에 도움이 된 것에 기뻤다고. 그렇지만 두 분도 실제로 메일함을 열어보기 전까지는 우리 모두처럼 무관심이나 비판에 대한 두려움 속에 시간을 보냈다. 괜한 생각이 만들어낸 두려움 때문에 모노키니 프로젝트를 포기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그 뿌듯함을 느끼지 못했을 것 같다.





두 교수님을 보면서 느낀 것들

나약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에 대하여

내가 본 두 분은 교수직을 계속하기 위해서 혹은,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열정을 나누기 위해 학생들과 교류하러 온 사람들 같았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내가 들었던 수업 중에 가장 좋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왜 그렇게나 이 수업이 좋았을까?"라며 곰곰이 생각해보다가, 이전에 들었던 브레네 브라운(Brené Brown)의 취약성의 힘(the power of vulnerability)이란 TED 강연이 생각났다. 자신의 나약함을 드러내는 것은 하찮은 일이 아니라는 그 강연 말이다. 두 분은 두려움을 느꼈던 이야기를 하며, 솔직하게 자신의 나약한 면을 드러내 보여주었다. 교수님 두 분이 느꼈던 두려움, 그리고 모노키니의 모델들이 자신을 드러내기로 결정하기까지의 두려움은 "나도 살다 보면 실수도 하게 되겠지. 누구나 그럴 거야. 그런데, 그래도 괜찮겠지."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유튜브 크리에이터 퓨디파이(PewDiePie)도 자신의 실수나 엉성한 면을 부담 없이 드러낸다. 그는 완벽해 보이려 하기보단 있는 그대로의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는데, 사람들은 바로 그걸 좋아한다.


그리고 두 교수님이 소수의 편에 서서 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다고 느꼈다. 적어도 두 분의 한 프로젝트는 확실히 작은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었다. 사실, 핀란드 학교의 수업이 모두 다 이렇지는 않았기에 이 수업이 더 기억에 남는다. 핀란드에서도 역시 학생을 재촉하거나, 더 성실한 모습을 보여주길 원하는 수업도 있었다. 나는 영어마저도 서투른 외국인 학생이었기에, 수업에 열심히 참여해도 따라가기 어려울 때가 많았고 그래서 더 Mathod Madness 수업이 좋았다. 나도 나약했으니까.




Perfection is boring.



마지막으로 핀란드의 한 카페에서 만난 글귀를 전달하고 싶다.  Perfection is boring그렇다. 완벽한 건 지루하다. (이 사진과 문구가 널리 널리 퍼졌으면 좋겠다. ^0^) 여기까지가 내가 느낀 진짜 핀란드이다. 자기 전에 자일리톨껌을 씹고 무민의 나라이자, 자작나무로 만든 가구를 사용하는 나라라는 그 이미지 너머에, 낡은 고정관념과 싸우며, 인간적이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람들이 있는 나라. 그게 내가 느낀 진짜 핀란드이다.







우리는 배움의 길에 놓여 있으니까 (3): 많은 것을 느끼게 했던 핀란드 대학의 수업, Method Madness


* 이 글은 핀란드 알토대학교(Aalto University)에서 교환학생을 하면서 들었던 수업 "Method Madness: Experimentation, Breaking Boundaries, and Disruptive Art through Creative Team Work, Course"에서 배우고 느낀 점을 적은 글입니다. 핀란드 교육에 관심 있는 분이나, 핀란드식 수업이 궁금하신 분이 재밌게 읽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개인적인 느낌과 생각을 적은 글이므로 전문적인 교육 칼럼과는 거리가 있다는 점 참고 부탁드립니다.




* 사용된 사진의 출처는 Monokini 2.0 프로젝트 홈페이지(www.monokini2.com)입니다.






우리, 여기서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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