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플이 두려운 소심한 엄마의 외침!
지금 우리 집에는 TV가 없다. 예전에 내가 수업을 다녔을 때 TV가 없는 학생 집이 의외로 많았다. 그땐 정말 의외였다. 왜냐하면 우리 엄마는 하루 종일 TV를 틀어놓으신다. 주방에서 일을 하실 때도 TV는 혼자서 뭐라고 시끄럽게 떠들고 있다. 그런데도 누군가가 혼자 떠들고 있는 TV가 불쌍해서 끄려고 하면 기가 막히게 알고 TV를 못 끄게 하신다. 우리가 모두 자라 직장을 나가고 집에서 혼자 적적하신 엄마에게 TV는 유일한 친구이자 말벗이다. 온갖 참견을 다 하시고 가끔은 흥분하셔서 나무라기도 하고 함께 눈물도 흘리시곤 하신다. 그래서 난 당연히 모든 집의 거실엔 커다란 TV가 있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TV가 없길래 너무 신기한 나머지 물어봤더니 엄마가 TV를 없애셨고 별로 불편하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그때 결심했다. TV를 없애리라.
첫째. 가족 간에 대화시간이 많아진다.
저녁에 학교나 직장에서 돌아오면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이 TV 앞에 앉는다. 그리고 대화라고는 각자가 좋아하는 채널을 틀기 위한 피 튀기는 쟁탈전뿐.... 하루 종일 서로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하지 않다. 그저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가 끝나 다음 편까지 기다려야 하니 마음 아플 뿐.
둘째. 가족이 여가를 함께 할 수 있다.
일단 TV가 없으면 일단 할 일이 없다. 모두가 공감하리라. 그럼 각자가 핸드폰을 보겠지? 하지만 우리에겐 짱구가 있다. 짱구와 함께 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드는 거다. 물론 7살 짱구와 놀아주는 것이 그리 만만치 않다. 짱구가 원하는 대로 대응을 해 줘야 하고, 말도 안 되는 유치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 함께 놀아야 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몇 번 하다 보면 재미있다.
그래서 2년 전 이사를 하면서 과감하게 TV를 없앴다. 가끔은 피곤해서 놀아주는 게 귀찮을 때도 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꿋꿋하게 참으며 TV가 보고 싶은 짱구에게 TV가 없을 때 좋은 점에 대해서 설명해주곤 한다. 그런 짱구가 좋아하는 놀이 중에 종이 접기가 있다. 아직 접지 않은 색종이가 500장이 넘게 있어도 만족하지 못하고, 언제나 유치원에 있는 종이로 정체불명의 무엇인가를 접어서 하원 할 때 유치원 가방에 소중히 넣어 오곤 한다. 색종이로 무언가 접는 것도 한계가 있고 해서 몇 번을 유튜브에 영상을 도움받아 짱구와 함께 접어보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짱구가 폭탄선언을 한다.
엄마! 나도 '좋아요 구독 버튼 꾹 눌러주세요' 하고 싶어.
헐~ 유튜브를 잘 모르는 짱구가 매번 영상 마지막에 나오는 멘트를 기억하고 하고 싶다는 거였다. 1인 인터넷 방송 시대가 된 지 오래이고, 초등학생들에게 최고 인기 장래희망이 '유튜브 크리에이터'라는 요즘이다. 일단 나부터 좀 진정을 한 다음 짱구와 유튜브를 시작하려면 얼마나 어렵고 꾸준하게 해야 하며 많은 사람들이 보기 때문에 칭찬도 받지만 상처 받는 말을 들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는다.
하지만 이미 유튜브에 꽂힌 짱구에게는 자기랑은 상관없는 이야기다. 짱구 역시 요즘 아이들처럼 유명해지고 싶어 한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TV에 자기 얼굴이 나오는 게 좋다. 3년 전 부천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 개막식에 우연히 놀러 간 적이 있었다. 사람이 많아 뒤에 있던 우리는 누가 레드카펫을 밟는지도 알 수 없었고 영화배우 자체를 모르는 짱구는 더운데 왜 여기 있는지도 몰라서 찡얼거린다. 그래서 내가 짱구에게 사람들이 예쁜 옷 입고 지나가는 거 구경하라고 목마를 태워줬는데 그 모습이 아주 잠깐 원샷으로 한 TV 연예 프로그램에 나왔다. 그 후로 한동안 짱구는 지나가는 방송국 촬영차만 보면 자기도 찍는 거냐 묻곤 했었다.
짱구의 폭탄선언에 내 대처 방법은 일단 주시해 보기로 했다. 짱구가 계속 이야기를 꺼내면 그때 다시 한번 고민을 해보자. 그리고 며칠을 조용히 지나가는 듯했는데 어느 날부턴가 짱구가 장난감을 가지고 놀면서 중얼중얼 혼자 이야기를 한다. 뭐라고 하는지 궁금해서 가만히 들어보니 혼자서 '여러분도 재미있으셨나요? 재미있으셨으면 좋아요. 구독 버튼 꾹 눌러주세요' 이러고 있는 거다.
그래서 짱구와 함께 교보문고에 가서 일단을 책을 보고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려면 어떻게 하는지부터 어떤 식으로 운영을 해야 하는지를 공부해 보기로 했다. 채널 이름도 정해야 하고 어떤 콘텐츠를 가지고 꾸밀 것 인도 정해야 한다. 그리고 다시 한번 당부한다. 짱구를 모든 사람이 다 좋아할 수 없는 거라고, 혹시 나중에 학교 들어가서 친구들이 짱구의 유튜브를 보고 놀릴 수도 있다고, 더 커서 어른이 되었을 때 짱구가 유튜브 만든 걸 후회할 수도 있다고, 한번 시작하면 꾸준하게 무엇인가를 만들어야 한다고 당부에 당부를 거듭한다.
요즘은 아이들이 유튜브 크리에이터 한다면 부모님들도 찬성하신다고 하지만 난 좀 다르다. 예전에 우리 회사에 아역모델을 지면 광고에 활용한 적이 있는데 그 아이가 커서 초등학교 들어갔을 때 즈음 아이의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이의 얼굴이 나온 광고를 모두 삭제해 줄 수 없냐'는 내용이었다. 이미 시간이 오래 지나 그 광고를 사용하진 않지만 몇 장이 인터넷에서 스멀스멀 돌아다니고 있었고 마침 그 사진을 본 친구들이 놀렸다는 것이다. 솔직히 아이의 사진은 멀쩡했다. 다만 아이의 볼에 그 당시 광고 캠페인이 쓰여있었던 거 같다. 이렇듯 예상치 못한 곳에서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한 사람의 흑역사가 될 수 있고 또 아이들은 조그만 것에도 예민하지 않나! 그래서 난 그저 짱구가 그렇게 예민하게 되는 상황 자체를 만들고 싶지 않을 뿐이다.
일단은 핸드폰으로 내가 촬영을 하기로 했다. 어찌 될지 모르니 무작정 투자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일단 촬영을 시작해보니 짱구가 아직은 연기가 안된다. 짱구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놀고 싶으니 카메라 앵글에서 자꾸 벗어나고 마음대로 안될 때는 평소처럼 떼를 쓴다. 그리고 갑자기 놀이를 바꿔 버리기도 한다. 그 영상들을 어설픈 솜씨로 편집해서 최종본을 짱구와 모니터링도 하고 기존에 다른 사람들의 유튜브를 보여주며 이야기한다.
우리 아직은 준비가 덜 된 거 같으니 좀 더 연구를 해서 짱구가 초등학교 들어가면 그때 시작해 볼까?
짱구도 자신의 영상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아님 촬영이 예상외로 힘이 들어서인지
응, 엄마! 마이린 형아도 초등학교 때부터 했잖아.
마이린 형아는 짱구만의 유튜브 크리에이터 라이벌이다. 짱구도 어서 마이린 형아만큼 구독자가 늘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다짐하면서 한바탕 소동은 일단락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유튜버가 왜 되고 싶었는지가 궁금하다.
그러면 사람들이 선물도 보내주고 그러잖아. 그러니까 엄마도 마이린 형아 엄마처럼 같이 해!
짱구는 내가 짱구랑 카메라에 나오지 않는 게 못내 아쉽다. 그래서 촬영을 하면서도 자꾸 나를 불러낸다. 이건 짱구의 유튜브이니 엄마가 나오면 안 된다고 설득을 하지만 솔직히 난 카메라 알레르기(?)가 있다. 그래서 사진도 잘 안 찍는다. 그런데 어떻게 내 배속에서 사진 찍히는 걸 좋아하고 설상가상으로 혼자서 동영상도 촬영하여 내 핸드폰의 메모리를 다 잡아먹는 짱구를 낳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짱구야! 차라리 하늘에 별을 따다 달라면 그건 한번 해볼게. 엄마는 카메라 울렁증 있어서 그것만은 안된다. 사람들이 보내주는 선물? 그거 별거 아니야! 그냥 짱구가 필요한 거 엄마가 사주면 안 되겠니? 크리스마스 산타클로스도 하는데 엄마가 뭔들 못해주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