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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월애 Nov 16. 2019

축구가 재미있다!?

신기하네...

짱구는 태권도 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태권도 배우는 것보다 태권도장에 가서 수련이 끝나고 앞 뒤로 30분씩 노는 타임을 좋아한다. 처음 짱구가 6살이 되었을 때 태권도를 가르쳐야겠다 마음먹고 집 근처 태권도장 몇 군데를 돌아다녔다. 조금 규모가 큰 태권도에서는 유아부, 초등부가 분리되어 수업을 하는데 아직 어리기 때문에 몸싸움을 하면 다칠 수 있기 때문에 나이 차이를 많이 두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던 중 지금 짱구가 다니고 있는 태권도장은 시간당 1 클래스만 유치부 초등부 구분 없이 함께 50분씩 수련을 하고 수련 시간 사이 쉬는 시간 30분씩은 놀이시간이라 대부분의 아이들이 일찍 와서 놀다 수련하고, 못다 쓴 에너지를 수련 후 놀이 시간에 마저 불태울 수 있는 시스템이어서 마음에 들었다. 1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짱구는 태권도장에 가면 꼬박 2시간을 있다가 온다. 간혹 초등학교 고학년 형들이 있어 다치지 않을까 걱정도 했지만 엄격하신 관장님 덕분에 다들 잘 어울리고 즐겁게 다니고 있다.


태권도 끝나고 시간 맞춰 데리러 가는데 며칠을 형들이랑 축구를 하는데 포지션이 매번 골키퍼다. 

엄마는 공이 날아오면 무섭던데, 짱구는 공 잘 잡아?
아니 잡을 때도 있고 못 막을 때가 더 많아.
그런데 왜 맨날 골키퍼만 해?

아이가 형들보다 어리니 달리는 게 늦고 아직 공 다루는 게 어색하니 형들이 골키퍼를 시킨 모양이다. 그제야 짱구가 물어본다.

엄마! 나 축구 배우면 안 돼?
축구? 

운동신경이 없는 나는 짱구의 마음을 이해한다. 따로 배우지 않아도 공을 잘 차는 아이들이 있는 반면, 아무리 해도 헛발질만 하는 운동신경이 없는 사람도 있다. 

축구는 배워야지. 그래야 짱구가 초등학교 가면 친구들이랑 점심시간에 축구도 하고 그러지. 그 대신 짱구야! 몸싸움하는 걸 싫어하면 안 돼. 축구는 공격도 하고 수비도 해야 해기 때문에 상대방이랑 몸을 부딪혀가며 해야 하는 거야. 그럴 수 있겠어?
응. 엄마! 나 몸싸움 잘할 수 있어.


운동신경이 없다고 해서 스포츠를 좋아하지 않는 건 아니다. 배구와 농구 같은 경우는 내가 반 감독이고 심판이다. 간혹 친구들이랑 같이 TV 중계를 볼 때면 내가 어느새 감독이 되어 선수들에게 막 지시를 하고 흥분을 하니 친구들이 나랑 TV 중계 볼 때가 재일 재미있다 할 때가 있다. 스포츠는 규칙만 잘 알아도 경기를 보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다.  




내가 짱구에게 축구에 대해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이유는 따로 있다. 솔직히 나는 축구는 월드컵 때만 즐기는 편이다. 애국심에 불타올라 독립운동하는 느낌! 축구 규칙을 잘 모르니 골 넣을 때만 함성 지르고, 전. 후반 90분 동안 도대체 숨죽여 응원을 해도 득점이 안 나니 답답하기도 하다. 술을 좋아라 하지 않으니 '축구에는 치맥이지'라고도 못한다. 예전에 내가 캐나다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 월드컵을 한 적이 있다. 캐나다 사람들은 축구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월드컵이 있는지도 관심이 없고, 우리나라가 우승후보 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중계방송을 해 주지도 않아 우리나라 경기가 있을 때는 삼삼오오 한국식당을 가야 중계를 보며 응원을 할 수가 있었다. 우리가 축구를 즐기는 것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던 한 교수의 말이 기억난다.


come on, what are you doing there?

그 넓은 운동장에서 90분 동안 공만 가지고 왔다 갔다 뭐하냐는 거다. ㅋㅋ

 


나 또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축구에 그렇게 많은 전략과 전술이 있었는지 몰랐다. 도대체 왜 패스를 저렇게 할까 불평만 하고 득점은 왜 이렇게 못 내는지  답답하기만 하다.




그런데 지난 일요일 밤늦은 시간에 월드컵도 아닌데 두 손을 모아 쥐고 앉아서 '우리나라 국가대표팀'이 아닌 '조기축구팀'을 응원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깜짝 놀란적이 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하다 보니 이상하다.


축구가..... 재미있다.

 

축구가 이렇게 재미있었던 적이 있었던가 싶다. 솔직히 월드컵 응원 때도 함께 '대한민국'을 외치며 응원하는 게 더 재미있지 중계화면은 멀어서 잘 보이지도 않는다. 그런데 요즘 난 TV를 보면서 점점 축구 감독이 되어간다.


거기서 붙어줘야지... 수비 어디 갔어?... 라인 올려! 패스! 패스! 사람이 없잖아!


그렇다. 스포츠 전설들의 조기축구팀 뭉쳐야 찬다. '어쩌다 FC' 이야기다.  



맨 처음 정말 엉망진창이었을 때는 '스포츠 전설들이 모여 예능 하는구나' 정도로 여겨졌는데 한주 한주 지나면서 뭔가 그림이 만들어져 가고 공격도 하고 수비도 하는 모습을 보니 내가 만든 팀도 아닌데 뿌듯하기까지 하다. 그래서일까? 뭉쳐야 찬다 시청자들은 어쩌다 FC가 축구 경기 이외에 예능 하면 싫어하다. 분명 그분들도 예능이라는 것을 알고 계실 텐데 그럼 재미도 있어야 하고 시청률도 생각해야 하는 담당 PD의 고충을 알 텐데도 잠깐이라도 축구 안 하면 화를 낸다. 그런데 솔직히 나도 그렇다. 어쩌다 FC가 축구할 때가 재일 재미있고, 안정환 감독의 말처럼 선수들이 토할 만큼 힘들어하는 모습이 행복까진 아니지만 제일 좋다.


스로인 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알게 되었고, 골키퍼라도 언제든지 손으로 공을 잡을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한때는 최고였지만 지금은 은퇴하여 그 세월만큼 몸도 무겁고 같은 분야가 아니니 룰도 잘 모르고 쓰는 근육도 달라 힘들지만 그 누구보다 해맑은 동네 아저씨 같은 우리나라 최고의 전설들이 한주 한주 성장하는 만큼 '축알못'이었던 나도 조금씩 성장하여 함께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상대팀에서도 인정하듯이 안정환 감독의 전술도 대단하고, 특히 어쩌다 FC의 빛동현은 대체 불가한 선수가 되었다. 언젠가 김동현 선수가 골키퍼 안 하면 안 되냐며 눈물을 비쳤을 때 그가 얼마나 외롭고 힘든지를 공감하기 때문에 안타깝기까지 했다. 을왕리 커플 허재 선수의 여유도 밉지 않고, 김용만 님은 언젠가 꼭 팀에 보탬이 되길 바란다. 그리고 여느 조기축구 경기에서는 보기 힘든 김성주 님과 정형돈 님의 중계는 월드컵 중계에 버금간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특히 지난 '슛도사' 이충희 선수 편은 압권이었다. 그동안 '2군'으로 치부되며 교체 멤버로 나왔던 선수들을 모두 전반전 풀타임을 뛰게 하는 안정환 감독의 전술에 상대팀 선수들까지도 버리는 경기라고 예상했건만 0-0이라는 최고의 스코어를 기록했다. 아마 이 기록은 그라운드에서 뛴 선수도 벤치를 지키던 선수도 심지어 상대편 선수도 예상하지 못했으리라. 하지만 그동안 설움 받던 '2군'이 일을 내고야 말았다. 정말로 '감독의 말을 잘 듣는' 우리의 전설들은 흩어지지 않고 몰려다니며 공간을 주지 않았고 덕분에 상대팀은 유효슈팅 한번 제대로 때리지 못하고 전반 20분을 끝내야 했다. 경기 중간에 훈련 내용을 적극 활용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에 안정환 감독의 명강의도 귀에 쏙쏙 들어오지만, 전반전이 끝나고 금의환향하여 돌아온 선수들은 마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고 퍼레이드를 하는 모습과 흡사하다. 


안정환 감독 덕분에 그리고 '어쩌다 FC' 선수들 덕분에 축구를 즐길 수 있어 고맙고, 나도 같이 성장할 수 있어서 고맙고, 축구를 통해 인생을 배우는 것 같아 더욱 감사하다. 손흥민 선수가 에버턴과의 경기에서 백태클로 인해 고메스 선수가 큰 부상을 입었고, 미안함을 다음 경기에서 '기도 세리머니'로 표한 것처럼 축구에는, 스포츠에는 그리고 인생에는 성장도 있고, 아픔도 있고, 기쁨도 있다. 그리고 서로를 믿고 의지하는 사랑도 있다.


그래서 축구가 재미있는 거 같다.... 참 신기하다.... 축구가 재미있어지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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