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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월애 Oct 07. 2019

적어도 '꼰대'는 되지 말자!

서로가 다름을 인정하기 힘든 사회

꼰대

꼰대 또는 꼰데는 본래 아버지나 교사 등 나이 많은 남자를 가리켜 학생이나 청소년들이 쓰던 은어였으나, 근래에는 자기의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이른바 꼰대질을 하는 직장 상사나 나이 많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의미가 변형된 속어이다.

이 말은 서울에서 걸인 등 도시 하층민이 나이 많은 남자를 가리키는 은어로 쓰기 시작했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는 주로 남자 학생이나 청소년들이 또래 집단 내에서 아버지나 교사 등 남자 어른을 가리키는 은어로 썼으며, 이들의 사회 진출과 대중 매체를 통해 속어로 확산되었다.     - 위키백과 출처


'90년대생이 온다.'를 읽다 보면 처음에 꼰대에 대해서 나온다. 요즘 '꼰대 자가 테스트',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한 7가지 원칙', '꼰대를 피하는 방법'등 꼰대와 관련된 여러 가지가 회자되고 있다. 저자이신 임홍택 작가님이 브런치 작가로 활동했다는 반가움을 뒤로하고 잠깐 생각에 잠겨본다. 설마 나도 '꼰대'인가? 




헐~ 생각해보니 나도 꼰대였다. 


선생님 때는 말이야 3시간 자면 대학에 붙고 4시간 자면 떨어진다고 했어. 너희들은 요즘 수시도 있고 대학도 많고 얼마나 좋아. 아침에 보충수업 1시간 하고 정규수업받고, 수업 끝나면 또 야간 자율 학습까지 하라고 하면 할 수 있겠어? 너희는 편한 줄 알아

 내가 학생들에게 가장 많이 했던 말 중에 하나이다.  물론 '열심히 공부해서 원하는 대학가자'는 뜻이었지만 생각해보니 꼰대가 따로 없다. 학생부 종합 전형은 꼭 폐지되어야 하고, 자신의 이득만 챙기는 어른들이 만든 정책 때문에 불쌍한 아이들만 쓸데없이 고생해야 한다고 여기는 내가 그 아이들에게 꼰대 짓을 하다니... 학교 다닐 때 연세 지긋하신 몇몇 선생님들의 훈계를 얼마나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친구들과 뒷담화를 일삼았던 나였건만 다행히 내 학생들은 착해서인지 아님 내 말을 귀담아듣질 않아서인지 내 말에 뭐라 말대답하진 않았지만 아마도 그중 몇 명은 친구들과 뒷담화를 즐겼으리라 생각하니 아찔하다.


내가 수업을 했던 곳이 올림픽 공원이 있는 근처였는데 그래서 선수촌 아파트에 사는 학생들도 꽤 많았는데 그 아이들은 우리나라에서 올림픽이 열렸던 사실조차 모른다. 그래서 오히려 그럼 올림픽 공원이 왜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냐고 물었더니 그냥 공원 이름을 그렇게 지은 줄 알았다고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우왕! 내가 어렸을 때 올림픽이 열렸고 솔직히 어린 나에게 올림픽은 다른 의미로 기억 속에 남아있다. 그 당시 올림픽을 못하게 북한에서 전쟁을 일으킬 것이라는 정확히는 기억이 나질 않지만 그 비슷한 루머가 있었고, 아빠는 공무원이시기 때문에 전쟁이 나면 일을 하러 가셔야 하니  엄마랑 시골에 내려가서 아빠를 기다려야 한다는 말을 기억하고 올림픽이 빨리 끝나기만을 바랬던... 다행히 아무 일 없이 잘 끝이 났고, 지금 그 기억을 복기해보면 참 얼토당토않지만 국가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중대한 이벤트가 학생들에게는 나를 역사 속의 인물로 만들어버린다. 그럼 내가 분해서 한마디 한다.


야! 정말이라니까! 선생님 때는 그랬다고!

네. 그만하시죠. 꼰대 선생님!




나는 내가 꼰대가 아니라 생각했다.


우리 엄마가 가장 억울해하시는 게 있다.  아빠도 엄마도 칠 남매 맏이라 무슨 일을 하든 새롭게 개척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내가 태어나고 유치원을 보내시는데 시골에 계시는 할머니는 손녀인 내가 유치원에 가는 게 도무지 이해가 안 되신 모양이다. 그래서 내가 유치원을 다닐 때는 물론이고 초등학교를 다닐 때까지도 엄마는 할머니께 싫은 소리를 들으셔야 했다. 그러다 큰고모네 딸이 그러니까 내 사촌동생이 유치원에 가게 된 후에야 비로소 할머니는 싫은 소리를 그만두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못마땅해하신 할머니도 억울해하신 엄마도 모두 이해가 되는데 엄마는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수년이 지난 지금도 억울하시다. 물론 시골에서 농사만 지으시고 큰아들 공부시켜 서울 올려보네 공무원 만들어 놓으면 고생 끝인 줄 아셨을 할머니와 결혼해서 서울에 올라와 공무원 박봉에 때마다 용돈 보내야지 서울에서 공부하겠다고 올라온 동생들 공부시켜야지 고생하셨을 엄마 사이에 억울한 게 이것뿐이었으랴마는 나와 관련되어 마음껏 나에게 말씀하시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엄마는 안 그러실 줄 알았다. 엄마는 내가 하는 거 다 이해하시고 응원해 주실 줄 알았다. 그런데 할머니처럼 엄마도 내가 짱구 유치원 보낼 때부터 조금씩 못마땅한 게 생긴다. 엄마도 내가 어렸을 때 간식도 다 만들어 주셨고, 할머니의 싫은 소리 들어가면서 뒷바라지도 해 주셨으면서 내가 심하진 않지만 아토피가 있는 짱구에게 과자를 따로 안 먹이고 만들어 먹이면 한마디 하고, 책 읽는 습관 들인다고 짱구가 책 읽을 때 같이 옆에서 책 읽고 있으면 한마디 한다. 부지런하고 깔끔하기까지 한  엄마는 내가 어렸을 때 집안일을 손에서 놓으신 적이 없다. 아빠뿐만 아니라 우리 삼 남매 옷도 항상 깨끗하게 입히셨고, 집도 항상 정리되어 있고 깨끗했으며 삼촌들이나 고모, 이모들이 와 있을 때면 하루에 밥상을 4번이고 5번이고 차리셔야 했다. 그렇게 20여 년을 살아오신 엄마이기 때문에 짱구와 여유 있는 내 모습이 못마땅하셨으리라... 


하지만 듣고 있는 나도 기분이 좋지만은 않다. 그래서 난 나중에 짱구 장가가면 그러지 말아야지 다짐을 한다. 예전에도 한번 비슷한 다짐을 한 적이 있다. 짱구를 낳고 산후조리원에 있는데 시어머님께서 하루에 4-5번을 짱구를 보러 오신다. 보다 못한 조리원 관리하시는 분이 나에게 위로를 해 주신다.


에구. 산모도 좀 쉬어야 하는데. 짱구 엄마도 나중에 짱구 장가가면 시어머니 되니까 이해해.




서로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기 힘든 사회


왜 '꼰대'라는 말이 확산되었을까라는 질문에 혼자만의 답을 찾자면  우리 사회는 변하지 않았는데 사람은 빠르게 변하기 때문에 여기에서 오는 이질감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의 미풍양속을 고집하는 어른들과 워라밸(Work & Life Balance)을 중요하시는 청년들은 서로가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어른들은 그러한 청년들이 한심스럽고 본인들이 산 세월이 억울하고 한스러우며, 청년들은 그러한 어른들이 '꼰대'로만 여겨진다.


'너는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이 점이 우리가 다르구나.'라고 서로가 다름을 이해까지는 힘들어도 인정하기만 해도 좀 더 수월할 텐데 우리는 여전히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라고 서로를 비난하려고만 든다.   


요즘 초등학생들에게 장래 희망 1위가 크리에이터라는 말에 끌끌 혀를 차시는 어르신들과 아이가 크리에이터가 되고 싶어 한다면 적극 서포트해주는 부모들과 좀 더 유명해지고 돋보이고  싶어 하는 아이들과의  차이를 어떻게 좁힐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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