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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월애 Sep 17. 2019

추석 잘 보내셨나요?

전지적 며느리 시점

9월 달력을 넘기자마자 짱구의 행복한 비명에 깜짝 놀란다.


엄마! 추석이야! 신난다! 유치원 안 간다.

뭐 큰일 난 줄 알고 돌아보다 이내 고개를 돌려버린다. 에구. 추석이네...ㅠㅠ


나도 어렸을 때는 명절이 좋았다. 학교도 안 가고 무엇보다 할머니 댁이 경주라 엄마는 막냇동생을 데리고 할머니 댁에 내려가시고 집에는 여동생이랑 둘이 남는다. 아빠는 철도 공무원이시라 다른 아빠들처럼 빨간 날을 챙겨 쉬실 수 없으니 나의 어린 시절 명절은 그야말로 천국이었다.


그리고 아빠가 돌아가시고 명절에도 차례를 지내야 되기 시작하면서 현실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 엄마는 여주 이 씨로 세계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된 '양동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신 조선시대 양반의 사고방식이 뼛속까지 남아있는 분이라 명절이 되기 한 달 전부터 우리는 명절 준비를 시작했다. 집안 대청소부터 시작해서 차례상에 올릴 음식도 명절날 아침 TV에서 볼 수 있는 정도의 음식을 준비해야 했고, 당연히 장을 볼 때도 여기저기 다니시면서 좋은 것 골라 보시느라 며칠이 걸리는지 모른다.

 

그리고 하나둘씩 주위에 언니들이나 친구들이 결혼을 하면서 대한민국에서 결혼한 며느리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있어서 명절의 의미를 간접 체험하면서도 온갖 핑계를 대며 1년에 고작 두 번 있는 명절임에도 시골에 있는 시댁에 안 내려가려고 애를 쓰는 친구들에게 욕도 해주고 명절을 장기휴가쯤으로 여겨 거침없이 비행기 티켓을 구입하는 이들을 부러워하면서도 흉도 봤었다. 내가 보고 배운 게 봉건적이고 고지식함이라 그때까지도 당연히 결혼을 하면 시부모님을 내 부모처럼 섬겨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부릴 수 있었던 호기가 아니었을까?



그런데... 막상 내가 결혼이란 걸 해 보니 그동안 친구들을 그렇게 욕했던 내 입을 때려주고 싶은 심정이다. 아이들 핑계 대고 직장 핑계 대며 시댁 안 가는 친구들이 부러울 따름이다. 오죽했으면 추석에 근무해야 한다는 소리에 거침없이 '부럽다'라는 마음의 소리를 내뱉었을까.  


뉴스에서 보면 차례 절차도 줄이자 솔선수범하시는 시부모님도 많으시더구만 나랑은 상관없는 세상 이야기인 것 같고 난 여전히 고달프다. 요즘엔 사람들이 명절에 시댁과 친정을 번갈아가기로 했다는 뉴스도 읽었는데  부럽기도 하다가도 욱한다. 며느리 이기전에 누군가의 귀한 딸이기도 한데 결혼한 딸이 명절에 부모님과 보내는 게  왜 그렇게 '특별한 일'이 되어 뉴스에까지 나온단 말인가? 왜 우리는 결혼을 하면 '당연히' 시댁에 가서 차례 준비 다하고 아침에 차례까지 다 지내고도 눈치 봐가며 친정을 가야 한단 말인가? 


작년부터인가 여성가족부에서 성평등 가족 호칭을 개선하는 것을 공론화해왔다. '시댁', '처가', '도련님', '처남', '아가씨', '처제'를 "~씨"로 평등화하자는 이야기인데 글쎄 과연 우리 사회의 문제가 호칭뿐일까 싶다. 호칭에서 보듯이 우리나라는 sister-in-law, brother-in-law처럼 깔끔하지 않다. '남존여비' 사고가 뼛속 깊이 뿌리 박힌 사회에서 호칭하나 바뀐다고 '남녀평등' 사회가 될까?  그렇다면 차례 준비는 누가 어디에서 어떻게 하는 게 평등한지도 국가에서 솔선수범하여 정해줄 것인가? 



추석 전 어느 프로그램에 개그맨 오정태님과 그의 어머니가 함께 출연하여 추석날 차례만 지내고 가겠다는 아들의 하소연과  명절이니 가족이 함께 해야 한다는 어머니의 서운함이 전파를 탔다. 물론 명절날 가족이 모두 모여 하하호호 웃으며 정답게 이야기하는 모습이 왜 보기 좋지 않을까만 그 자리에 모인 가족 구성원이 모두 한마음 한뜻이 되어 행복할까? 그리고 옹기종기 모여 명절 음식도 만들고 같이 나눠먹는 보기 좋은 가족의 범위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다. 분명 조상님께 한 해가 시작되었다고 새해 인사를 드리고, 한 해 동안 농사 잘 지어 이만큼 추수하게 되어 감사 인사드리는 날이 설날이고 추석일텐데 왜 많은 이들이 '명절증후군'이라는 신종병으로 시달리게 되었을까?


외로움을 달래주는 것도 자식의 몫이라며 그래서 저녁 먹을 식당과 노래방까지 다 예약해 놓는데 오죽 외로웠으면 그렇겠냐며 부모의 입장도 생각해 달라는 전원주님의 말씀을 전혀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명절이 모두에게 공평하지 못한 것 또한 사실이다.


그래서 궁금하다. 모두들 이번 추석 잘 보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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