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만들어간다.
제1장 믿음직한 큰딸
난 삼 남매 중 첫째로 태어났다. 엄마 아빠도 칠 남매 맏이이셨기 때문에 부모님은 어렸을 때부터 나에게 적절하게(?) 특권을 누리게 해 주시면서 동시에 막중한 의무감도 안겨주셨다. 난 언제나 동생들을 잘 돌봐주고 모범이 되어야 했으며 가끔 동생들에게 어려움이 생기면 언제든지 나타나 해결해주는 슈퍼맨과 같은 역할도 해야 했었다.
난 언제나 어른스러워야 했고 두 살 동생은 언제나 애교 있고 귀엽다. 새 옷을 입는 나는 내 옷을 물려받는 동생에게 미안해해야 했고 내 옷은 주로 초록색 계열이었고 동생 옷은 노란색 계열이었다. 호시탐탐 내 물건을 노리는 동생 때문에 아무리 화가 나도 난 언니이기 때문에 언제나 양보해야 했고, 나도 7살이라 아직 어림에도 불구하고 갓 돌이 지난 동생을 업어주며 놀다 동생이 내리고 싶어 발버둥 치다 어디 부딪치기라도 하면 엄마한테 혼나야 했고 군대 가서는 여자 친구가 없는 동생을 위해 한 달에 한 번씩 과자 상자를 보내야 했다. 그리고 마냥 어리기만 한 줄 알았던 막내 동생이 내 결혼식날 모든 일정이 끝나고 신혼여행을 떠나기 전에 날 업어주며 '잘 살아라' 했을 때 내 동생의 진심이 고스란히 전해져 같이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제2장 착하고 얌전한 모범생
날 기억하는 모든 이들이 나를 이렇게 정의한다. 난 언제나 착하고 얌전해야 했다. 내가 한 번도 원한적도 없었고 심지어 난 그렇게 나를 평가하는 게 싫은데 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심지어 대학교 때까지 난 착하고 얌전한 학생이고 친구였다. 덕분에 얄밉고 재수 없는 아이는 아니었지만 난 정말 그 말이 싫었다. 다른 친구들처럼 내 의견을 피력하며 앞에 나서고 싶었지만 난 언제나 가만히 자리에 앉아 친구들의 문제를 들어주고 위로해주는 착한 친구였다. 성적이 조금만 떨어져도 담임선생님이며 학생부 선생님뿐만 아니라 선배들에게 불려 가 혼났고 우리 학교는 반 전체 수학 성적을 교실 앞에 붙였었는데 어느 날 한 친구가 날 조용히 부르더니 '실망했다'라고 이야기하는데 난 그 친구에게 오히려 미안해했다.
그래서 난 나와 다른 친구들을 부러워하면서 학창 시절을 보냈던 거 같다. 인기 많은 친구도 부럽고, 전교 1등 하는 친구도 부럽고, 잘 노는 친구도 부럽다. 그래도 운동 잘하는 친구는 안 부러웠다. 운동엔 관심이 없어 체육선생님들도 나를 포기하셔서 체육대회 때는 진행을 맡기셨으니 알만하다. 대학교 때 체육시간이 없는 게 얼마나 좋던지... 그렇게 앞에 나서지 못하고 누가 시키면 그제야 나가서 무언가를 하는 난 그런 학생이었다.
제3장 이별.... 혼자 남겨진듯한 고립감
고3 어느 봄날 아침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아빠가 전날 당직을 하시고 휴일이라 퇴근하셨어야 하는데 아빠 사무실 동료에게서 온 전화였다. 급하게 엄마는 동생을 데리고 나가셨고 나는 막내 동생을 돌보며 엄마의 전화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리고 한참만에 전화를 받았다. 아빠가 돌아가셨다고.... 아직 중1인 동생에게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하나 걱정이 앞선다. 그래서 일단 동생에게 아빠가 병원에 계신다니 가자고 했다. 평소 개구쟁이이기만 했던 막내가 아빠가 계시는 병원으로 가는 길에 핀 꽃을 꺾으며 아빠한테 가져다 드려야겠다고 그럼 아빠가 빨리 나으시겠지라고 묻는데 난 대답도 잘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그리고 우리 아빠는 돌아가셨는데 세상은 아빠가 계셨을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잘 돌아가니 너무 원망스러웠다. 그래서 스스로 벽을 쳤던 거 같다. 친구들이 날 위로해 줬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중고등학교 때 친구들 그러니까 우리 아빠가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과 연락을 끊었다. 그리고 새롭게 만나는 친구들에게는 아빠가 안 계신다는 것을 굳이 이야기하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에 입사를 할 때도 입사서류에 가족사항이 다 나와있는데도 내 입으로 설명하진 않았었고 한참이 지났을 때 직장 상사분께서 아빠가 안 계시냐는 말씀을 하셨을 때 처음으로 남이 보는데서 하염없이 울었던 거 같다. 지금도 난 아빠 이야기는 굳이 먼저 꺼내지는 않는다. 아직도 누군가 아빠와 손을 잡고 길을 걷는 모습을 볼 때면 다른 길로 돌아간다. 우리 아빠는 안 계신데 왜 이렇게 세상은 잘 돌아가는 건지 너무 야속하다.
제4장 친구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 커리어 우먼
대학을 졸업하고 친구들이 하나 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할 동안 난 일을 했고 승진도 했고 많은 이들에게 인정도 받았다. 친구 한 명이 왜 결혼 안 하냐고 소개해주겠다고 하면 정작 당사자인 난 아무 말 안 하는데 다른 친구가 뭐가 걱정이냐고 우리보다 훨씬 시집 잘 갈 텐데라며 흥분을 했다. 친구 남편이 실직을 하게 되면 나한테 전화해 내가 부럽다고 하소연하는 걸 들어주며 그래 결혼 안 하길 잘했다 생각했었다. 난 결혼에 대한 환상이 없었다. 다른 친구들은 좋은 남자 만나 결혼해야지 했지만 난 한 번도 결혼 후의 삶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거 같다. 우리 엄마 아빠 두 분이 참 행복하셨는데 그리고 나에게 참 좋은 부모님이셨는데 왜 난 결혼에 대한 계획을 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그 대신 일은 정말 열심히 했던 거 같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남자들과 경쟁해야 하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처절하게 느꼈으니까 그리고 살아남았으니까... 내가 외국에 나가야겠다고 결심한 이유도 나중에 결국 내가 밀려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던 거 같다. 그래서 밀려나기 전에 내가 당당히 나가자 사표를 던졌던 거 같다.
제6장 선생님! 그런 이야기 하지 마요.
다시 돌아와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게 되었을 때 난 친구 같은 선생님이고 싶었다. 인생 선배로서 길잡이도 해주고 같이 고민도 하면서 나의 선생님이셨던 분들처럼 무섭고 엄격한 그래서 별명도 참 이상한 것으로만 붙여졌던 선생님이 아니라 나중에 대학에 가서도 편하게 연락하고 같이 맥주 한 잔 기울일 수 있는 그런 선생님이고 싶었다. 그래서 예비고 여학생들에게 절대로 아니 제발 화장하지 말라고 그렇게 애원을 했건만 입학을 하고 첫 번째 중간고사가 끝날 때쯤이면 나보다 화장을 더 잘해서 부러워했고 난 몰랐던 남자 고등학교 이야기가 궁금해 묻고 농담도 주고받지만 등급이 떨어지면 응징에 들어가는 그런 선생님이 되었다. 그런데 수업 중 내가 학생 때는 정말 얌전하고 착했었다고 하면 다들 '선생님! 그런 이야기 하지 마요. 그걸 누가 믿어요.' 이것들이 날 뭘로 보고... 진짜라니까!!
그런데 돌이켜보면 내가 선생님이었을 때가 참 재미있었던 거 같다. 이전의 '좀 더 완벽해지려고 노력하는 내'가 아니라 조금은 허술하고, 장난도 치고, 구박도 하고, 놀기 좋아했던 나. 시험 때는 바짝 긴장하지만 수능이 끝나면 나도 같이 풀어질 수 있었던 자유로운 내가 될 수 있었던 그때가 참 좋았던 거 같다.
제7장 짱구는 나처럼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학기초에 짱구를 등원시키는데 짱구 담임 선생님께서 조용히 날 부르신다.
어머님! 짱구 때문에 어제 여자 친구들끼리 싸웠어요.
왜요?
서로 자기가 짱구를 도와줘야 한다고 싸우길래 제가 짱구에게 인기 많아서 좋겠다 했더니 짱구는 모르더라고요.
헐~ 학기초에 모둠 이름을 정하는데 짱구네 모둠에서는 '바깥놀이'로 하기로 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짱구가 그 이름이 마음에 안 들었던지 모둠 이름을 바꾸고 싶어 했고 결국엔 다른 '유치원'모둠에 친구 한 명이 자기는 '바깥놀이'가 좋다고 서로 바꾸기로 해서 일단락되었다고 들었다. 나중에 왜 '바깥놀이'가 싫었냐고 물었더니 '미세먼지가 얼마나 나쁜데 바깥놀이를 해?'라며 타당한 이유가 있었더라고 선생님께서 전해주셨었는데 그때부턴가 여자아이들 사이에서 짱구의 의견부터 묻고 놀이를 결정하는 이상한(?) 현상이 일어났다고 한다.
한참을 고민하다 짱구와 이야기를 해 보기로 했다. 이제 7살이면 힘세고 앞에 나서려는 리더십 강한 아이가 있을 법도 한데 언제까지 여자아이들의 보호를 받으며 지낼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짱구야! 먼저 너의 의견을 정확히 이야기했는데도 친구들이 싫다고 다른 것을 하자고 하면 그땐 따라야 해. 일단 해보고 나서 그게 안 좋으면 그때 다시 짱구가 말한 것으로 바꿀 수 있는 거야. 친구들이 언제까지 짱구 말만 들어줄 수는 없어.
짱구는 내 말을 듣고 조금 억울해했지만 이젠 세상이 짱구 원하는 데로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가르칠 때가 된 거 같다.
또, 친구들이 짱구의 말을 들어주는 것처럼 짱구도 친구들의 말을 들어주고 무엇이든 서로 이야기하면서 결정해야 하는 거야.
짱구는 자존감이 강한 아이이다. 그래서 조금은 걱정이 되지만 그래도 이야기하면 알아들을 수 있는 아이라 아직까진 가족뿐 아니라 선생님과 친구들에게도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그런데 며칠 전 1학기 생활기록카드를 받았는데 선생님의 첫마디가 "짱구는 성실하고 책임감이 있으며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은 친구입니다."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내 초, 중, 고등학교 생활기록부 매 칸에 적힌 말이다.... 순간 등골이 서늘해진다. 난 여태껏 짱구가 나처럼 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마음껏 자기주장도 펴고, 이유가 타당하면 맘껏 할 수 있도록 키웠던 거 같은데... 왜 어디서 많이 들어본 글귀를 내가 읽고 있는 거지??
제8장 I would be....
내가 좋아하는 말 중 하나이다. 만약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내가 유명한 사람과 대화를 할 수 있다면, 지금 비행기를 타고 어디론가 갈 수 있다면... 이 얼마나 상상만으로도 행복한가!
난....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남에게 인정받기를 갈망하기 전에 내가 먼저 남을 인정하고 내 의견을 편안하게 이야기하면서 현명하게 거절할 줄도 알고, 누군가를 부러워하고 그대로 따르는 대신에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할 줄 아는 내 인생을 즐길 줄 아는 내 삶의 주인공이 되고 싶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 위해 지금부터라도 조금씩 노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