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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월애 Jul 10. 2019

우리 아빠를 소개합니다.

재미없고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를 아시나요?

우리 엄마와 아빠는 경상도가 고향이십니다. 아빠는 경북 경주에서 엄마는 부산에서 나고 자라셨지요. 어렸을 때 우리 집 풍경을 잠시 소개할까요?


엄마가 아빠 출근하시고 우리 삼 남매 모두 학교 보내고 동네 아주머니께서 잠시 우리 집으로 마실 오시면 자주 듣는 이야기입니다.

 어제 싸웠어? 아니 두 분 다(여기서 두 분 다는 우리 엄마와 아빠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평소엔 조용하신데 어젠 좀 시끄럽더라고.

그럼 우리 엄마 빙그레 웃으며 아니라고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분명히 우리 엄마 아빠는 다투시지 않았어요. 우리 엄마 아빠가 싸우면 절대로 시끄럽지 않아요. 왜냐하면 엄마가 화난 거 같으면 아빠가 막내 동생 데리고 잠시 몸을 피하시거든요. 한참만에 들어오신 아빠의 손엔 엄마가 좋아하는 안개꽃 한 다발이 들여있습니다. 지금까지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늦은 시간이라 밖에 나가실 수 없으셨던 아빠가 우리 방에 자체 감금당하시고 괜히 우리 보고 공부하라고 어설프게 엄마 코스프레하시길래 저희가 한마디 거듭니다. '그러니까 술 조금만 마셔.' 그것도 잠깐. 엄마가 들어오셔서 애들 공부하는데 거기서 뭐하냐고 빨리 나오라고 하니까 못 이기는 척 따라 나가십니다.  좀 심심하죠. 전날 시끄러운 건 그냥 두 분이 '대화'를 하신 거예요. 두 분이 목소리가 크셔서 그냥 이야기를 해도 길가 집이다 보니 동네 사람들이 우리 집 앞을 지나가셔도 다 들을 수 있어 그랬던 것입니다. 좀 크게 오랫동안 대화를 하다 보니 그런 오해를 많이 받았지요.


중학교 때 학교가 우리 집에서 큰길 하나만 건너면 될 정도로 가까이 살았습니다. 절대로 지각할 일이 없지요. 당연히 친구들이 버스에서 내려 우리 집 앞을 지나 학교로 가기 때문에 가끔 우리 아빠를 만나게 됩니다. 아빠가 철도 공무원이셔서 가끔 여객전무로 새마을호를 타시면 낮에 집에 계실 때가 있었거든요. 분명히 우리 아빠는 친구들이 인사하면 "그래" 그 말뿐이 안 했는데


너희 아빠 무섭지 않아?

우리 아빠가 말씀이 적으시고 몸이 좀 단단하시고 좀 까무잡잡하시고 여름에는 러닝셔츠 바람으로 밖에 곧잘 나오시고 잘 안 웃으셔서 그렇지 절대로 무서운 분이 아니거든요. 저에게는 세상 누구보다 다정한 아빠입니다. 엄마의 온갖 잔소리에도 언제나 제 편을 들어주셨죠. 사춘기 때 왜 그렇게 치킨이 먹고 싶던지 엄마 몰래 아빠한테 이야기하면 금세 사 가지고 오시죠. 물론 엄마의 따가운 눈초리도 아빠의 몫이었죠. 아빠는 그렇게 내가 해달라는 건 거의 다 해주셨던 거 같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일입니다. 우리 학교는 야간 자율학습을 강제적으로 다 해야 했기 때문에 우리는 10시가 되어야 학교가 끝이 났어요. 그런데 한 번은 버스 회사가 파업을 하는 바람에 구간구간 운행을 안 하는 곳이 생겼고  제가 타는 버스도 포함이 되었습니다. 야호! 신이 났지요. 내 인생 첫 외박입니다. 그날만큼은 버스 파업에도 불구하고 야간 자율학습을 강제로 시키는 학교가 얼마나 고맙던지요. 엄마에게 전화를 드리고 친구네 집에서 자기로 했습니다. 친구가 미리 연락을 드렸는지 저희가 도착했을 때 아주머니께서 식탁에 한 상을 푸짐하게 차려주셨는데  임금님의 수라상도 부럽지 않을 만큼 많이 차려져 있어 입을 다물지 못할 지경입니다. 저희 집은 아빠가 혈압이 있으셔서 엄마가 식단을 엄청 신경 쓰십니다. 항상 혈압에 좋고 건강에 좋은 식단으로만 양은 적게 먹지요. 제가 편식이 심한데 엄마도 먹는 것을 즐기는 분이 아니라 제 편식에 대해서는 별로 말씀이 없으셔서 어른이 된 지금도 여전히 편식을 하고 있답니다. 평소 학교가 끝나고 집에 가도 이미 저녁은 학교에서 도시락을 먹었기 때문에 과일을 먹거나 아님 그냥 안 먹는데 친구네는 그런 게 아닌 모양입니다. 그런 데다가 제가 갔다고 맛있는 반찬에 밥이 난생처음 본 고봉밥이었습니다. 저는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많이 먹어도 살이 안 찌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요. 친구가 엄청 말라서 저는 밥을 조금만 먹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겁니다. 그때 느낀 배신감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지요. 그런 진수성찬을 앞에 두고 안 먹을 수도 없고 친구랑 같이 부지런히 먹는데 아주머니께서는 걱정이 되시는지 연신 반찬은 입에 맞는지 더 먹고 싶은 건 없는지 물어보십니다. 야식을 푸짐하게 먹어서인지 잠도 안 오고 다신 안 올 기회라 밤새도록 친구랑 수다 떨며 놀았던 거 같습니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 보니 아주머니께서 우리 엄마랑 통화하셨다고 걱정하지 말라 하시며 아침상에 도시락까지 준비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새벽 6시에 또 고봉밥을 먹었습니다. 아주머니께서 저보고 밥을 잘 먹어서 좋다고 또 놀러 오라고 하셨고 저는 그 후론 그 친구네 집에는 식사 때를 피해서 놀러 가곤 했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버스회사 파업은 하루 만에 끝이 났고 저는 이틀 만에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아파트 벨을 눌렀는데 아빠가 문을 열어 주십니다. 엄마는 먼저 주무신다고 하시는데 갑자기 서운함이 밀려옵니다. 내가 이틀 만에 들어오는데 보고 싶지도 않나 싶습니다. 그때 아빠가 말씀하십니다.


씻고 밥 먹어.
밥 먹었어. 아줌마가 저녁 도시락까지 싸 주셨어.


입이 짧은 저를 알기에 아빠가 다시 한번 말씀하십니다.


네가 뭘 제대로 먹었겠어? 엄마가 반찬 해 놓은 거 있으니 빨리 씻고 나와.



대충 씻고 나왔는데 아빠가 그동안 식탁에 상을 차려 놓으셨습니다. 갓 지은 밥에 미역국이랑 그동안 먹고 싶다고 투덜거려도 안 해 주셨던 엄마표 무말랭이 무침이 새롭게 놓여 있습니다. 우리 엄마 음식 솜씨가 좋아서인지 우리 가족은 외식을 잘 안 합니다. 밖에 나가 먹는 밥 보다  집에서 엄마가 해 주신 밥이 최고거든요. 그때는 나도 어른이 되면 요리도 잘하고 저절로 엄마를 닮아갈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닌가 봅니다. 먹기 싫다고 투덜거리면서도 아빠가 차려주신 거라 하는 수 없이 식탁에 앉아 숟가락을 듭니다. 어제 하루 못 먹은 우리 집밥인데 무척 반갑고 그립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제가 한 술 먹는 걸 보신 아빠가 갑자기 소파에 앉으십니다.


아빠 내일 일찍 안나가?
나가지
그럼 빨리 자. 내가 치울게.
너 먹는 거 보고. 


사춘기도 지나고 내년이면 고3이라 정신적으로 힘들고 아빠도 얼마 전에 본청으로 발령이 나시고 승진도 하셔서 바쁘시고 해서 아빠와의 관계가 소원해져 있었을 때입니다. 또 제가 보고 자란 게 엄마 아빠라 애교도 별로 없어 남의 집 딸처럼 막 그렇게 아빠 아빠 하며 예쁜 짓을 하진 못합니다. 조금은 어색하고 무거운 침묵을 먼저 깬 사람은 아빠입니다.


힘들지? 


그때부터 밥을 먹으며 아빠랑 오래간만에 많은 대화를 한 것 같습니다. 공부 이야기, 앞으로의 계획, 친구들, 동생과의 문제 등 밤이라 밝지 않은 조명만 켜 두어서 인지 내일 아빠는 새벽에 나가셔야 하는데도 아빠를 잡고 참으로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게 마지막이었습니다.


그때는 몰랐는데, 상상조차 못 했는데 다음 해 아빠가 돌아가셨습니다. 이젠 아빠랑 살았던 것만큼 아빠 없이 살아왔는데도 여전히 아빠가 그립습니다. 그날 밤 늦은 저녁이 아빠와 단둘이 할 수 있었던 마지막 밥상인 줄 알았더라면 좀 더 다정하게 아빠를 기쁘게 해 드렸을 텐데 그러지 못한 게 정말 후회스럽고 죄송합니다.


이젠 세월이 흘러 결혼도 하고 짱구도 낳고 아빠만큼 나이도 먹었는데 그래서 나도 아빠가 해주셨던 것처럼 갓 지은 밥에 아빠 드시고 싶은 반찬 만들어 드릴 수도 있는데, 아빠는 아무거나 다 잘 드셔서 맛이 없다 해도 참 잘 드셔서 나도 엄마만큼은 아니라도 인터넷에서 레시피 보며 흉내는 낼 수 있는데 아빠는 그럴 기회를 저에게 주시지 않고 먼 길을 급하게 인사도 없이 떠나셨습니다. 


아빠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소리 내어 못했던 말을 혼자 되뇌어봅니다. 


아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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