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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월애 Jan 28. 2020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새해 새다짐

 새해 아침! 정확히 말하면 설날 새벽 언제나 그랬듯이 내가 바라는 한해를 계획해본다. 지난해는 나 개인적으로도 참 힘든 한 해였던 거 같고, 그래서 새롭게 맞이하는 해에 대한 기대가 많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리고 책임져야 할 것들이 조금씩 많아지면서 많이 지치고 새롭게 도전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많아지는 것 같다. 내가 20대 때는 무슨 일이든 결정을 할 때 내가 원한다면 거침없이 해 나갔었는데 이젠 작은 일을 결정하는데도 생각해야 할 것들이 많고 실패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 등 왜 이리도 점점 작아지는지 모르겠다. 세상에 나 혼자라는 생각에, 내가 나서서 무엇인가 이루어나가야 한다는 생각에 세상에 대한 불만과 불신이 아르키메데스가 목욕을 할 때 '유레카'를 외친 것처럼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외쳐본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이 말을 되뇌어보면서 이유 모를 안도감과 만족감을 느낀다. 그래! 이젠 나도 무소의 뿔처럼 누군가에게 또는 시스템에 기대고 의지하지 말고 내가 혼자서 나아가야겠다. 바로 이거다!



아덴만 작전의 석해균 선장을 수술하고, 교통사고로 사망한 걸그룹 레이디코드의 멤버 권리세 수술에 참여했으며, 판문점 조선인민군 병사 귀순 총격 사건 당시 귀순한 병사의 수술을 집도하면서 대한민국에 권역외상센터가 설치되는데 큰 공헌을 한 이국종 교수가 얼마 전 아주대학교 의료원과의 갈등으로 인해 권역외상센터장에서 사퇴할 뜻을 밝히면서 다시 한번 이슈가 되었다.


물론 우리나라에 이국종 교수와 같은 분이 꼭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국민들이 앞다퉈 이국종 교수를 응원하지만 그렇게 앞다퉈 이국종 교수를 응원했던 국민들도 내 집에서 들리는 닥터헬기의 소음에는 불만을 표시한다. 닥터헬기가 필요한 것은 알겠지만 나한테 피해가 오는 건 싫다는 논리이고 그렇게 불만하는 사람들을 누구도 비난할 수 없다. 헬기 소음이 대단할 것이고 시도 때도 없이 들리는 소음은 내 삶을 불편하게 하기 때문이다. 외상센터에 병상을 내주지 않고, 우리의 이국종 교수에게 욕설을 한 아주대학교 의료원장을 마음 놓고 비난할 수도 없다. 병원장은 권역외상센터장이 아니라 아주대학교 의료원장이기 때문에 전체적인 병원 운영을 결정해야 하고 물론 이국종 교수가 '눈에 가시 같은 존재'였을 수도 있지만 그런 이국종 교수 덕에 두둑한 지원금과 홍보효과를 챙겨 왔기 때문에 '때려치워!'라고 했지만 설마 진짜로 이국종 교수가 사퇴의사를 밝힐 줄은 몰랐을 거다.


'이번 생은 망했다'라고 낙담한 이국종 교수의 한숨에 떳떳하게 위로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리고 한숨을 덜어낼 수 있는 시스템도 없다. 그냥.... 이국종 교수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나아가셔야 할 것 같다.




아직은 어린아이가 있다. 모든 엄마들이 그렇듯 그 아이도 그냥 인사치레처럼 똑똑하다는 이야기를 꽤 듣고 자랐다. 그러다 점점 초등학교를 들어가게 되고 주위 사람들의 성화에 한 영재 학술원에 가서 영재성 테스트를 봤는데 상위 2%라는 결과를 받았다. 너무나 기쁜 나머지 그 아이의 엄마는 덜컥 영재 학술원에 등록을 했다. 그런데  그 아이의 엄마는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다. 영재 학술원에 수업료도 그렇고, 집에서 학술원까지 거리도 만만치가 않다. 지금 당장이야 그 정도로만 불편하지만 앞으로는 더 문제다. 아이에게 영재성이 있다고는 하지만 만약 아이가 계속 잘 따라가 영재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드는 교육비용이 1억 6천만 원이라는 기사를 봤다. 더군다나 아이는 서울에 살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나마 사교육비가 조금 덜 들게 하려면 영재교육원에 들어가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서울로 이사를 가야 한다. 그런데 그 아이의 엄마에게는 교육비 1억 6천만 원도 당장 서울로 이사 갈 수 있는 여유돈도 없다. 그래서 아이 엄마는 가끔 생각한다. '괜한 짓 하고 있는 거 아닌가. 어차피 끝까지 뒷받침해줄 수 없다면 그냥 처음부터 하지 않는 게 좋지 않을까' 남들은 아이가 똑똑하니 얼마나 좋냐고 부러워하지만 이미 그 아이의 엄마에게는 들리지 않는다. 요즘 '개천에서는 지렁이도 안 나온다'라는 말을 뼛속 깊이 공감할 뿐이다. 내가 못나 아이를 잘 못 키울 수 있겠구나 한숨만 나온다.


4차 산업혁명시대에 아직도 우리 사회엔 '무전유죄 유전무죄'이다. 그 아이의 엄마는 돈이 없는 죄로 아이에게 매일 미안해하며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그 아이의 엄마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나아가야 할 것 같다.

 

 




그러다 문득 이 글귀의 뜻이 궁금하다. 그래서 핸드폰을 들고 검색을 해보니 최초의 불교의 경전인 숫타니파타에 나오는 구절로 게으름 없이 정진하라는 뜻이라고 한다.  '넓은 초원을 당당히 지키고 있는 저 무소를 보라. 수많은 상처를 입고도 쓰러지지 않는 저 무소를 보라. 시련을 딛고 더 단단해진 무소에게 삶의 지혜를 배우자.'라고 말씀하신 법정스님을 기억하며 혹시나 나처럼 모르게 계셨던 분들을 위해 내가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만 옮겨본다.

...

널리 배워 진리를 아는

고매하고 총명한 친구와 사귀라

온갖 이로운 일을 알고 의혹을 떠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세상의 유희나 오락이나 쾌락에 만족하지 말고

관심도 가지지 말라

꾸밈없이 진실을 말하면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이것은 집착이구나

이곳에는 즐거움도 상쾌한 맛도 적고 괴로움뿐이다.

'이것은 고기를 낚는 낚시이다'라고 깨닫고

현자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최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 정진하고

마음의 해이를 물리치고 행동하는 데에 게으르지 말며

힘차게 활동하여 몸의 힘과 지혜의 힘을 갖추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홀로 앉아 선정을 버리지 말고

모든 일에 늘 이치와 법도를 맞도록 행동하며

살아 가는데 있어 우환을 똑똑히 알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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