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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월애 Apr 20. 2020

지금의 내가 20년 후의 나에게

괜찮니? 괜찮아.

언제부터인가 서점에 가면 소설책이 아닌 에세이를 찾게 된다. 가슴 두근거리는 사랑이야기도 없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판타지도 아닌 시시콜콜하지만 남 이야기 같지 않아 편안한 그리고 위안을 얻을 수 있는 에세이가 좋다. 그래서 혼자 생각해봤다. 내가 나이를 먹었나 보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삶이 궁금한가 보다 하고... 다른 사람들도 나랑 별반 다를 게 없네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또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찾고, 그 안에서 나를 본다. 글을 쓰겠다고 생각한 것도 아마 같은 이유에서 일거다. 내 이야기를 하고 싶었고, 듣고 싶었다.

 

그러다 우연히 '김창옥 쇼'를 보게 되었고, 익숙지 않아 미뤄왔던  나와의 대화를 하고 싶었다.



사람 사이에는 적정한 거리가 필요하다.


20년 후의 나는 조금은 편안하게 지냈으면 한다. 지금은 하나하나 챙겨줘야 하는 짱구도 성인이 되어 어쩌면 사랑하는 누군가를 만나고 있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지금만큼 내가 짱구의 삶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언제부턴가 다짐한 게 하나 있다. 지금의 내 삶은  오롯이 내가 선택한 것이니 보상받으려 하지 말자. 내 안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고 난 후의  헛헛함을 알아주길 바라며 남의 삶에 기웃거리지  말자. 살면서 날 낳아주고 길러주신 부모님께, 내가 힘들 때 옆에서 응원해주고 도와준 이들에게 갚아야 할 은 있어도 내가 낳아 키운 짱구에게도, 날 믿고 따라와 준 인생 후배들에게도 받아야 할 은 없다.  질척거리지 말고 상대의 삶을 인정하고 나의 삶을 살자.

순간순간 내가 한 다짐을 잊은 적도 있었지만 그래도 20년 넘게 되새기며 간직한다면 그땐 지금보다 편안해질 수 있지 않을까? 나에게 그리고 내 삶에 집중할 수 있다는 건 그래서 내 주위 사람에 대한 원망도 서운함도 없이 서로를 인정하고 함께 할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적정한 거리를 두고 너무 시끄럽지 않게 서로를 응원해 왔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코로나 19로 인한 사회적 거리처럼 사람이 살아 가는데도 적정한 거리가 필요한 거 같다.   



숨을 참으려면 숨을 잘 쉬어야 한다.


20년 후의 나는 조금은 여유롭게 지냈으면 한다. 누군가와의 경쟁에서 이겨야 할 필요도 없고, 나 만을 위해 삶을 즐기면서 그렇게 살아갔으면 좋겠다. 그땐 그래도 될 것 같다.

다른 이의 마음을 얻으려면,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성취감을 얻으려면, '참 행복하다'까지는 아니더라도 후회 없는 삶을 살고자 한다면 지금의 내 조급한 호흡을 잠시 참아야 한다. 그리고 지켜봐야 한다.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나에게 무슨 말을 듣고 싶어 하는지,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내 맘대로 안되더라도 원망하지 말고 기다리고 지켜보면 언젠가 상대가 그리고 기회가 나에게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줄 것이다. 그러니 숨을 잠시만 참아보자.

그런데 여기서 숨을 참으려면 꼭 필요한 것이 있다. 상대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혹은 내가 하는 일에 기회를 얻기 위해 숨을 잘 참으려면 숨을 잘 쉬어야 한다. 숨이 쉴 때는 시간이 빨리 간다고 한다. 내가 재미있는 일과, 집중할 수 있는 일과, 좋아하는 일을 하니 시간이 빨리 갈 수밖에 없을게다. 문득 내가 숨을 쉴 때가 언제인지를 생각해봤다. 그런데 패널로 나온 홍지민 님의 말처럼 잘 모르겠다. 내가 숨을 쉴 때가 언제인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현재의 나로서는... 모르겠다. 내가 언제 숨을 쉬었더라. 분명 나도 내가 좋아하는 일, 재미있어하는 일, 집중할 수 있는 무엇이 있었는데 지금은... 모르겠다. 

그러니 20년 후의 나는 조금은 이기적이어도 괜찮을 것 같다. 이제껏 충분히 숨을 참아왔으니 그때면 마음껏 숨을 쉬어도 괜찮지 않을까?



누구에게나  '물마중'이 필요하다.


'물마중'이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해녀분들이 물질할 때  물 밖으로 나와 무거운 수확물을  옮기는 중 다치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 누군가 다가가 반갑게 손을 흔들어주고, 무거운 짐을 들어주는 것을 '물마중'이라고 한다. 그래서 물마중은 받는 사람에게도 주는 사람에게도 마음 한편이 따뜻해지고 힘이 되는 고마움이라고 한다.

나에게도 '물마중'이 필요하다. 모든 불행은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온다고 하는데, 지금 난 버겁기만 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긴 터널을  나가려고 안간힘을 써봐도 제자리걸음인 거 같은 암담함에 지쳐 쓰러졌다 용기를 내어 일어서기를 반복한다.


그래서 지금의 내가 20년 후의 나에게 물마중을 해주고 싶다.

지금 조금 힘들지만 괜찮아. 아직은 웃을 수 있잖아. 나 포기하지 않고 잘 해낼 거야. 잘했지?


그러면  20년 후의 나도 지금의 나에게 물마중을 해 줄 것이다.

잘 이겨냈어. 그러니까 지금 웃을 수 있잖아. 네가 자랑스러워. 잘했어.


내가 나에게 묻는다.

괜찮니... 괜찮아.


오늘 나와 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다행이었다. 

하지만 이유를 아는 먹먹함에 행복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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