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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월애 Sep 08. 2019

'호텔 델루나' 같은 곳이 있다면...

난 그곳에 머물고 싶진 않지만... 그곳에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돌아가신지는 얼마나 되셨나요? 그럼 안내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호텔 델루나에 특별한 손님이 찾아오면 지현중이 너무나도 귀엽고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손님을 맞이한다. 만약 내가 호텔 델루나에 가게 되었을 때 프런트에 지현중과 같은 직원이 나를 맞아준다면 마지막 길이 조금은 덜 쓸쓸하지 않을까 싶다.


솔직히 나는 겁이 많아 귀신이 나오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짱구가 가끔 '신비의 아파트'를 보면 막 화를 낼 정도이니... 도대체가 왜 그런 걸 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 물론 놀이공원에 있는 귀신의 집도 안 가고 여름이면 여측없이 나오는 공포체험 예능도 싫어한다. 그래서 처음 '호텔 텔루나'가 밤이 깊어 인적이 끊기고 도심이 잠들 때 호텔의 불이 켜져 영혼들이 머무는 '달의 호텔'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보는 걸 포기했다.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이와 비슷한 영화가 '천녀유혼'이었을 거다. 그전까지만 해도 귀신이라 하면 머리를 풀어헤치고 하얀색 소복을 입고 피를 흘리며 한을 풀어다라고 애원하는 다소 끔찍한 모습을 떠올렸건만 '천녀유혼'에 나오는 귀신은 예쁘기까지 하다.



지금은 다양한 귀신분들이 많아서인지 요즘은 TV에서 안 하는 것 같은데 내가 어렸을 때는 명절이나 여름이면 심심치 않게 TV에서 아름다운 귀신 왕조현을 만날 수 있었던 거 같다.


그리고 2019년 여름 왕조현보다 훨씬 더 매력적인 데다가 까칠하기까지 한 '호텔 델루나'의 사장 장만월이 등장한다. 호텔 델루나가 장만월도 예쁘고 구찬성도 멋있고 호텔 식구들 뿐만 아니라 스토리도 매력적이라 많은 분들의 사랑을 받았다는 건 여기서 굳이 밝히지 않아도 될 것이고 솔직히 나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이 드라마를 본 것 같다.



1300년 전 어린 만월의 숨을 거두러 온 사신에게 마고신은 짧은 일각에도 연이 있을 수 있는 법이라며 물러서게 했고 결국 구찬성이라는 연을 만들어 주었다. 그래서 구찬성은 오리온 대성운은 지구에서 1300광년이 떨어져 있다며 겨울을 함께 기다리자고 그 일각의 연을 이어간다. 


장원에 급제하였지만 그동안 썼던 소설이 유생들의 수치라며 장원급제가 취소되어 소설은 작가 미상으로 남고 고향으로 갈 수도 남을 수도 없기에 오도 가도 못하고 죽은 김선비는 어느 소설가를 만나 '학의 노래'라는 책으로 출판되어 한을 풀게 되었다.


나를 쏜 친구에게 본인의 이름으로  아픈 동생을 평생 곁에서 지키게 한 지현중은 70년을 그 둘을 바라보면서 어떤 마음이었을까? 70년을 동생을 기다렸지만 그래서 결국 동생과 함께 떠났지만 지현중에게 아픔은 자신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 친구가 아녔을까? 그래서 마지막에 친구가 찾아왔을 때 70년 동안의 원망이 헛된 것임을 알까 봐 쉽게 용서할까 봐 두려워서 만나기를 주저한 게 아닐까 싶다.  


객실장은 명주 윤 씨의 마지막 자손을 임신한 여자와 대화를 하게 되고 '아이는 태어나도 명주 윤 씨가 되지 않아요. 내 성을 따를 거예요. 내 핏줄을 이은 그냥 내 아이예요.'라는 말에 자신은 왜 딸아이를 두고 그런 생각을 못했을까 깨닫고 마음속 한이 풀리게 된다.




만약.... 정말로 '달의 객잔'이 있다면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아무런 인사도 없이 허망하게 이별한 아빠가 나를 기다리고 계셨으면 그래서 내가 자라 결혼도 하고 아빠가 타셨던 기차를 좋아하는 짱구를 보며 큰 입을 벌려 웃고 계시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래서 그곳에서 아빠를 만났을 때 '수고했다고 이제 아빠랑 같이 가자'라고 그렇게 나를 기다리고 계셨으면 좋겠다.


그래도.... 난 그곳에 오래 머물고 싶지 않다. 그곳에 머물면서 누군가를 기다릴 만큼 아픔을 마음에 담아 두고 싶지 않고 한번 떠난 이 세상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훨훨 날아가고 싶다. 물론 남겨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눈에 밟히겠지만 죽음이 두려운 건 자신이 사람들에게서 잊힐까 두려운 거라는 말이 있듯이 내가 잊힐까 두려워하며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곁을 이승에서 머물고 싶지는 않다. 내가 없는 세상은 이미 내 것이 아닌 것이기에...  다만 내가 삶을 마칠 때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인사 정도는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으면 좋겠다. 오랫동안 삶의 끈을 놓지 못해 안간힘을 쓰지 말고 내 주위 사람들이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는 하루 정도의 시간도 주고 난 먼저 갈 테니 천천히 오라고 이야기도 하며 그렇게 떠나고 싶다. 



나에게도 마고신이 잊고 회수 못했던 '잡고 있는 것보다 놓아주는 게 더 필요하다'는 가위가 필요한 걸까? 그렇다면 어떤 인연을 싹둑 잘라 잊어버리게 할까? 좋은 인연 아니면 아픈 인연? 나에게 마고신을 만날 기회가 있다면 그래서 나 또한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난 어디로 갈까? 아름다웠던 과거로 아니면 가보지 못한 미래로...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래서 나에게 마고신의 가위가 없는 게 너무 다행인 오늘이다. 


달의 객잔이 계속 이어진다 해도 그래서 장만월 대신에 김수현과 같은 멋진 사장이 새로 온다 해도 난 그곳에 머물고 싶지 않다. 



이별은 짧은 이별이든 영원한 이별이든 슬픈 일이다.

하지만 난 그러한 슬픈 이별을 잘 받아들이고 싶다.

그 이별의 끝에는 그리운 사람과의 만남이 기다리고 있을테니... 난 오늘도 슬프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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