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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월애 Aug 05. 2019

영어가 부대낄 때

세종대왕님 감사합니다.

나는 매일 아리랑 라디오를 듣는다. 일상이 영어 듣기 평가라고나 할까? 그나마 아리랑 라디오를 듣는 이유는 내게 익숙한 이야기가 나오고 K-POP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편하다. 예전에 학생들에게도 듣기 평가 공부를 일부러 시간 들여하지 말고 등, 하굣길에 아리랑 라디오 들으라고 추천을 하곤 했었다. 실제로 한 명도 들은 아이들은 없었겠지만 그래도 내가 말하면 그때만 다들 수긍을 했었던 대답만 하지 말고 좀 하라고 구박을 하면 빙긋이 웃었던 다 자라 나보다 덩치가 커 징그럽고  나보다 화장도 더 잘하는 그래도 아직은 귀여움이 남아 있었던 아이들이다. 그 아이들은 이젠 성인이 되어 내가 했던 잔소리를 기억 못 하겠지만 그중 몇 명은 스스로 깨우쳐 내 잔소리를 기억해 아리랑 라디오를 듣고 있으리라 믿고 싶다.    


내가 영어공부를 처음 시작했을 때 방법을 잠깐 이야기하자면 이렇다. 여기서 '영어공부를 처음 시작했을 때'란 1등급을 받기 위해 수능특강을 죽어라 파던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로 효과가 없었던 학교 때가 아니라 직장생활을 하면서 내가 정말 영어공부를 해야겠구나 자발적으로 결심을 하고 시작한 시점이다. 처음 결심을 하고 영어회화학원에 갔는데 '레벨 테스트'란걸 한다. 헐~ 배우러 왔는데 시작부터 테스트라니 시험 없는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단 말인가! 당장 뒤돌아 도망가고 싶었지만 그렇게 당황하는 나와 같은 모습이 익숙한 듯 영어학원의 직원은 미소를 띠며 나를 지옥으로 안내한다. 설마 했는데  초급부터 다시 시작!  들어보면 다 아는데 입 밖으로 말이 안 나온다. 그래서 내가 초급이구나 싶다. 지금도 마찬가지인 거 같지만 그때도 'The New York Times'로 영어를 공부하는 프로그램이 많았다. 그래서 나도 한번 시도를 해봤는데 영 진도가 안 나가고 재미도 없다. 그때 우연히 알게 된 것이 바로 아리랑 라디오고 많은 영어 교재 중에 그나마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거여서 반가웠다고나 할까! 그래서 지금까지도 내 핸드폰엔 '아리랑 라디오' 어플이 깔려있다.



라디오를 들으며 귀가 트인 후에 내가 한 것이 바로 영작이다. 일단 영어로 생각하는 습관을 들이기로 하면서 생각해낸 것이 다니면서 내 생각을 영어로 적어보는 것인데 꽤나 재미있다. 그리고 시작한 것이 K-pop을 영작하는 것이었다. 주옥같은 가사가 많은 '부활'이나 '성시경'의 곡을  엉터리로 영작하면서도 뿌듯해했던 거 같다. 혹시나 공감하신다면 지금이라도 시도해 보시길 적극 추천한다.


그렇게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영어공부가 재미있어서 외국까지 나가서 공부도 해보고 돌아와서 그렇게 끔찍해했던 영어를 가르치며 살아가고 있다. 내가 학생들에게 했던 말 중에 베스트가 '타임머신이 있어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난 고1 때로 돌아가서 정말 열심히 공부할 거다.'였다. 그러면 온갖 야유와 비난을 받으며 수업을 마쳐야 했지만 난 진심이었다. 물론 힘들고 불안하지만 얼마나 많은 가능성이 있는 시기인가!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김남도 교수님의 말씀 중 내가 좋아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80살까지 산다고 가정했을 때 평생을 하루 24시간에 비교해 보면 20살이 채 안된 고등학교 시기는 하루 중 아직 동이 트지 않은 6시경이 될 것이다. 아직 하루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는 새벽! 오늘을, 내 삶을 멋지게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시간이다.


그렇게 나의 하루는 영어를 들으며 시작하고 말은 하지 않지만 읽고 글로 옮기며 마감한다. 그런 나도 가끔은(sometimes) 솔직히 종종(honestly often) 영어가 부대낄 때가 있다. 그럴 땐 어떻게 하냐면 일단 일은 중단한다. 안 되는 걸 붙잡고 있는다고 좋은 결과물이 나오진 않으니 그냥 덮는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애니메이션 '쿵푸 팬더' 시리즈를 본다. 내가 처음 외국에서 공부할 때 같은 홈스테이에서 생활한 동생이  '라이온 킹'에 나오는  대사를 거의 외울 정도임에도 매일 듣고 다녔다. 그래서 왜 그것만 듣냐고 물었더니


누나! 매일 들어도 매일 달라!

그땐 이해 못하고 쓸데없는 짓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에 와서야  내가 '쿵푸 팬더'를 보면서 이해한다. 시나리오도 그림도 모두 다 외우고 있어서 내가 싫어하는 장면이 몇 분 몇 초에 나와 몇 분 몇 초에 끝난다는 것도 정확히 알고 있어 skip 할 수 있을 정도인데도 매번 다르다.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이 시나리오를 보고 배우의 연기를 보고 배경을 보고 의상까지 본다는 것과 일맥상통한 것이 아닐까 싶다. 하여 난 '쿵푸 팬더'를 본다.



하지만 아무리 내가 사랑하는 '쿵푸 팬더'를 본 후라도 습관적으로 아리랑 라디오에 로그 온했을 때 듣기 싫을 때가 있다. 뭐라 뭐라 끊임없이 말을 하는데 귀를 닫고 싶을 만큼 k-pop이 나올 때까지 기다릴 수도 없을 만큼 영어가 그야말로 '소음'으로 느껴질 땐 그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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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저 없이 끈다. 그리고 온전히 '한국어'의 환경으로 돌아간다. 영어를 듣지도 말하지도 읽지도 쓰지도 않고 한글이 얼마나 아름답고 과학적인 언어인가 감탄하며 세종대왕께 백번이고 감사의 절을 올리고 싶은 1인이 된다.


얼마 전 길을 가다 외국인이 지하철역에 어떻게 가는지를 물은 적이 있다. 간단하게 가르쳐줬고 인사를 나누는데 내 손을 잡고 있던 짱구가 자꾸 툭툭 친다. 요즘 'I am' 'You are'을 자신 있게 말하고 읽을 수 있게 된 짱구가 자기도 그 대화에 끼고 싶은 거다. 그러면서 내게 보내는 '우리 엄마는 영어로 외국인이랑 말할 수도 있고 정말 대단해'라는 듯한 눈빛을 보면서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는다. 그리고 일단 라디오를 켠다.


오늘도 내가 대한민국에 태어났음에 감사드린다.

그리고 영어를 할 줄 알아서 다행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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