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기원을 실용성에서 찾는 것은 곰브리치의 의도와 꼭 맞는 것은 아니다.
현실적 이익을 성취하기 위한 가상을 통한 기복행위. 여기서 가상은 단순한 거짓이 아니라 현실을 더 충만하게 만들기 위해 현실을 부정하는 기능을 한다. 거짓된 현실을 부정하고 더 진실된 현실(또는 근원적인 진실)을 구성 하기 위한 매개로서의 가상이다.
욕망의 실현을 위한 수단으로 주술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현실에 구현 하는 수단으로 주술을 이해해야 한다. 즉 주술이 목적을 위한 수단이라는 실용성으로 이해 되는 것이 아니라 참 된 진실(또는 근원적인 진실)에 접근 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해 된다. 만일 주술을 실용성으로 생각한다면 이는 미술을 효율성을 위한 수단으로 이해 하게 되는 것이다. 최초의 예술의 기원으로서의 주술적 행위는 단순한 효율성이 아니라 참됨을 찾는 현실을 넘어서는 행위라는 점에서 예술의 기원이다.(곰브리치가 제시한 “제대로”라는 모토를 구성하는 하나의 계기가 된다.)
또하나 예술의 기원은 그 사물성에 있다. 자족적인 존재로서의 주술적 형상은 더 이상 다른 무엇을 위한 매개로 전락하지 않는다. 도록에 제시된 그 주술적 형상들은 도구적 존재가 아니다. 주술을 위한 매개성은 그 주술적 형상과 영적 세계의 동일화로 더 이상 매개가 아닌 직접성으로 이해된다. 이렇게 이해 된 주술적 형상은 견고한 자족성을 보유한 사물로 이해 된다. 이러한 사물성은 예술 작품의 자립성, 그 제작자에게서 독립적인 존재로서의 정립을 가능하게 한다.
이 장에서 요약할 수 있는 개념은 "가상"과 "사물성"이다. 즉 주술적 형상은 그 가상이라는 계기와 사물성이라는 계기로서 예술의 기원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주술은 이데올로기와 같은 기능을 했다고 본다. 주술은 원시인들의 진리 체계였다. 그들의 세계관이자 그들의 가치 중심이었다. 주술을 우리 기준으로 기복적인 행위로 이해하는 것은 여러 가지 오해를 낳을 수 있다. 주술이 가졌던 적극적인 기능이 있었다. 그중에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통한 현실 인식이 중요한 기능이었다. 보이지 않는 가상의 세계가 오히려 보이는 현실을 더 진지한 진리로 인도했다. 그리고 이런 과정이 주술적 형상물로 표현된다. 이런 눈 앞의 현실을 넘어서는 인식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은 모든 문화의 가능 조건이고 특히 주술적 형상은 예술의 가능성을 열어주게 된다.
*******근대적 의미의 fine art는 최근에 정립된 개념이다. 따라서 원시 예술을 통한 기원Urspring에 대한 설명은 어떤 선험적인 조건에 대한 인식을 겨냥 할 수 밖에 없다. 기원은 본질 유래가 아니다. 또한 기원은 지금의 자신에 대한 목적론적 정당화도 아니다.
기원은 그리로 흐를 수 밖에 없는 최초의 물길의 조건들이다. 그 선험적인 조건들이 현실화 되느냐 마느냐는 또 다른 역사의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