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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운백년 Nov 12. 2023

마감기한이 필요해

원고를 완성한 건 8~9월쯤이었다. 애초에 출간을 8월 정도로 잡고 쓰기 시작했었으나, 이런저런 일… 이를 테면 가족여행이나 지독한 더위에 정신을 못 차렸던 여름, 밀린 드라마 정주행 그리고 대체로 게으름 피우는 생활 등으로 인해 일정이 지체되는 상황이었다. 시작은 독립출판이었지만, 투고에 대한 욕심이 생겼고 여기저기 메일을 뿌린 후 언제 올지 모르는 출판사의 답을 기다린다는 핑계로 지체된 면도 있었다.


하지만 예상했던 대로 몇몇 거절 메일을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긍정적인 답변은 오지 않았다. 반기획 출판 메일은 여럿 받긴 했으나, 이상하게 끌리지 않았다. 작가가 몇 부를 사야 하며, 마케팅은 어떻게 하고, 얼마를 더 내면 대형서점 매대에 책을 올릴 수 있고 등등.. 이런 이야기를 듣다가 질려 버렸다. 결국 출간부터 홍보까지 돈으로 사는 셈이었다. 그럴 바에야 처음부터 끝까지 내 손으로 직접 만들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결국 돌고 돌아 독립출판으로 돌아왔다.


다행히 원고는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된 상태였으니, 다음 단계는 디자인이었다. 하지만 인디자인은 다뤄본 적도 없었고, 포토샵이나 일러스트레이터 프로그램도 그리 잘 다루진 못했기에 또다시 벽에 부딪히고 말았다. 아, 이래서 투고를 했구나 싶기도 했고. 아무래도 취약한 디자인적인 부분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그렇다고 책이 얼마나 팔릴지도 모르고, 예산이 충분치도 않은 상황에 외주를 줘가면서까지 책을 만들 상황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내게 남은 길은, 부딪혀서 배우는 것뿐이었다.

처음으로 한 일은 인디자인 결제를 해버리는 것이었다. 한 달에 4만 원가량의 고정비용 제출이 생기자, 한없이 잔잔하던 마음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더 이상 미룰 수만은 없는 노릇. 사람도 기절시킬 만한 두꺼운 인다지인 책을 한 권 주문했고, 유튜브와 책을 번갈아 보며 인디자인의 기본 기능을 하나씩 익혀가기 시작했다. 평소 기계나 PC 프로그램을 능숙하게 다루는 편은 아니었지만,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를 잠깐이라도 들여다본 적 있어서 그런지 생각보다 인디자인이 어렵진 않았다. 페이지를 만드는 일부터 시작해서 글자를 넣고, 글자체나 폰트를 바꾸고, 길이가 긴 글을 넣는 방법이나 글자를 배열하는 방법 등을 차근차근 공부했다.


하지만 4만 원의 효력은 그리 길지 않았다. 또다시 특유의 게으름이 발동했고, 하루이틀 미루기 시작하더니 고작 100 페이지 남짓의 내지를 작업하는 데만 일주일이 넘게 걸려 버렸다. 이런 식으로 작업하다간 표지 작업도 못하고 올해가 가버리는 건 아닌가 싶었다.

또다시 돈을 써야만 할 때였다. 돈이 걸리면 안 하고는 못 배길 터. 때마침 적당한 시기에 열리는 독립출판 수업을 발견했다. 이전에 독립출판을 준비하면서부터 눈 여겨본 수업이었는데,. 4주 간 독립출판의 과정에서부터 디자인, 인쇄, 유통 등을 전반적으로 배울 수 있는 과정이었다. 더는 미룰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지체 없이 수업료를 결제했다. 어느 정도 아는 내용도 있겠지만, 다른 것보다 마감기한이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게으를 땐 한없이 게으를 수도 있지만, 마감기한을 두고 하는 일이라면, 그것도 다른 사람들이 내 작업과정을 함께 지켜보는 상황이라면 승부욕 아닌 승부욕이 올라올 터. 게으름도 잠시 접어두고 반드시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결론은, 올해 안으로 책이 1권 나올 예정. 이번엔 마감기한이 있는 작업이니 반드시… (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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