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만난 지인과 약속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평소처럼 버스 창가 자리에 앉아 SNS 피드를 내리던 도중, 서로 팔로우 중인 누군가가 업로드한 릴스를 발견했다. 글 계정을 만들고 초기부터 소통을 해온 팔로워였다. 댓글로 따뜻한 응원을 여러 번 전해오기도 해서 아이디를 잘 기억하는 누군가였다. 그가 올려둔 릴스를 무심코 보는데, 책상 한쪽에 가지런히 놓인 책을 발견했다. 얼마 전 공동집필로 참여해 출간한 내 책이었다.
순간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혹시 공동 집필한 작가님들 중 한 분이었는데 내가 몰랐던 건가. 하지만 피드를 여러 번 살펴봐도 그쪽은 아니었다. 다음으로 든 생각은, 다른 작가님들 중 한 분의 지인인 건가? 그렇지만 그의 팔로우 중 내가 아는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그다음은 혹시 비슷한 책인데 내가 헷갈린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상을 몇 번 돌려보며 책 표지를 자세히 들여다봤지만, 내 책이 맞았다. 그리고 정말 마지막, 최최최종으로 든 생각은, 혹시 내 피드를 보고 책을 구입하신 건가?
우습게도 누군가 내 책을 실제로 살 거란 생각은 한 적 없었다. 몇 개 되지 않는 홍보 글을 여러 번 피드에 올리긴 했으나, 응원의 ‘좋아요’와 댓글은 여럿 받았으나 그게 구매로 이어질 거란 기대는 하지 않았다. 펀딩을 시작하고 책을 출간하고… 이 모든 과정에서 책을 실제로 구매하고 읽은 사람들은 모두 작가들의 지인이었다. 적어도 내가 아는 한에선 그랬다. 작게나마 연 북토크에서도, 자리를 지킨 건 각 작가의 지인이었다. 그들의 소중한 마음에도 충분히 감사했지만, 무언가 해소되지 않는 마음이 있었다. 그동안 계속해서 느껴온, 책을 내고도 아무런 감흥이 없는 이유도 전부 이런 마음과 연결된 것일 수도 있었을 테다.
그리고 어제 처음으로, 책 출간이 행복한 일이란 사실을 알았다. 아마도 처음으로 울컥했던 것 같다. 지인이 아닌 독자는 처음이었기에. 그게 단 한 명뿐이라 할지라도 비교할 수 없이 찬란한 마음이 있었다. 드디어 누군가에게 읽혔구나! 그 사소한 일이 나를 뒤흔들었다.
요즘의 일상은 잔잔했다. 오락가락하는 날씨만큼이나 작고 사소한 불행과 기쁨이 엎치락뒤치락하는 나날이었다. 큰 불행도 큰 행복도 없었다. 그렇지만 아주 조금씩 불행을 향해 나아가는 듯했다. 막을 길이 없었다. 서서히 침몰하는 배의 한복판에서, 어찌할 도리 없이 그저 끝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사람처럼, 그런 일상이었다. 간절히 바라며 원하던 일들은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온갖 거절 메일과 탈락 소식이 연이었다.
매번 거절과 탈락을 나 자신과 분리하는 일에 실패했다. 존재 자체를 거부당한 것처럼 침울하기를 반복했다. 숱한 거절에 일일이 마음 쓰지 않으리라, 단단히 마음먹고 시작한 일이었는데. 사소한 거절에도 요동치는 마음을 붙잡을 길이 없었다.
그럼에도 어제처럼 아주 사소한 기쁨 하나가 결국 포기하지 않게 만든다. 다시 나아가야 한다고, 놓지 않으면 무엇이든 될 수 있을 거라고. 그게 단 한 명뿐이라 할지라도. 지극히 사소한 기쁨이라 할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