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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숙 Jun 12. 2023

2023. 06. 12 흐림

문제 그리고 기회

어디선가 이상한 냄새가 났다. 나와 딸아이는 냄새의 출처를 밝히기 위해 킁킁거리며 범인을 찾아 나섰다. 대부분 지독한 냄새는 남편이어서 그쪽으로 시선을 던졌지만 아니라며 펄쩍 뛰었다. 수상하긴 했지만 일단 넘어가주고, 엉금엉금 기어 다니는 막둥이를 잡아다 엉덩이에 코를 대보았다. 어? 아니다. 그 사이 냄새는 익숙해진 건지, 없어진 건지 더 이상 나지 않았다.


이런 난리에도 유튜브에 빠져 요지부동이었던 아들은 약속된 시청시간이 끝나자 그제야 몸을 일으켰다. 이것만 더 보고 싶다고, 좀만 더 보면 안 되냐며 징징대며 말이다. 그때 아까 났던 그 냄새가 코를 찔렀다. 바지를 살짝 당겨서 열어보니 범인은 아들이었다. 똥을 쌌다. 지린 정도가 아니라 아예 어른 주먹 정도의 똥이 뭉개져서 엉덩이에 달라붙어 있었다. 화장실을 데려가서 왜 그랬냐고 물었더니, 처음엔 몰랐다고 하다가 나중엔 유튜브 보는 걸 멈추는 게 싫어서 그랬다고 했다. 뒤처리를 하면서 상황이 심각함을 느꼈다. 생각해 보니, 아들은 예전부터 유튜브를 볼 때마다 똥을  지리곤 했었고 당시에 나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 이후로 이런 일이 서너 번 더 있었고 유튜브를 아예 금지시켰다. 더 이상 아들이 무자비하게 똥을 싸는 일은 없었다. 사건이 서서히 잊히고 상황의 심각성도 무뎌질 무렵, 문제는 엊그제 작은아가씨 집에서 일어났다. 우리 집의 유튜브는 금지시켰으나 남의 집의 유튜브는 내 권한이 아니기에 오랜만에 유튜브를 실컷 볼 기회를 잡은 아들. 저녁밥도 깨작거리더니 이내 방에 들어가서 유튜브에 빠졌다. 집에 갈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조금만, 잠깐만 그러다가 남편의 큰소리에 겨우 일어났다. 집에 들어왔는데 익숙하지만 절대 익숙해지지 않는 그 냄새가 났다. 아들은 또 똥을 쌌다. 도대체 언제 싼 건지 뭉개 질대로 뭉개져서 엉덩이에 말라붙어 있었다. 걱정은 둘째치고 짜증과 화가 치밀어 올랐다. 대소변실수는 아이에게 수치심을 줄 수 있기에 절대 나무라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심하게 나무랐다.


"주원아, 급하면 누구나 실수할 수 있어. 근데 8살이! 화장실이 바로 옆에 있는데도 그냥 이렇게 바지에 싸버리면 진짜 창피한 거야. 그래, 쌀 수 있다고 치자. 근데 바로 처리하거나 엄마를 불렀어야지. 이대로 얼마나 오래 있었던 거야! 똥이 얼마나 더러운지 몰라! 너 진짜 심각하다ᆢ"


풀이 죽어 아무 말도 안 하고 있다가 그대로 잠이 든 아들. 도대체 아들한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야 했다. 단순히 유튜브 중독으로 보기에는 또 다른 원인이 있을 것 같았다. 소아정신, 심리상담 등을 알아보다가 '유분증'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날 밤, 지난 6개월을 되돌아봤다.


막둥이가 태어나 100일이 지났고, 이사를 했고, 아들과 딸은 초등학교에 입학했고, 아빠는 주말도 없이 바빴다. 난 막둥이를 보느라 아들이 할 일을 다하면 게임이나 유튜브를 별 제한 없이 보게 했다. 유독 더럽고 지저분한 걸 싫어하는 아들은 대변을 볼 때마다 엄마가 닦아주면 안 되냐고 했는데, 이제 8살이니 스스로 하라고 다. 그 무렵 본격적인 이유식을 시작한 막둥이는 하루에 한두 번은 엄청난 양의 똥을 쌌는데 그 모습이 귀여워서 잘했다며 깨끗이 닦아주었다.


기억에 남는 사건도 있다. 발레학원에 있는 딸아이를 데리러 가야 하는데 아들이 혼자 있겠다고 해서 다녀온 적이 있었다. 원장님이랑 잠깐 얘기를 나누고 마트에 들러 간식을 사 오니 30분 정도가 걸렸다. 집에 오니 아들은 짐승처럼 울부짖고 있었다. 왜 금방 온다면서 이렇게 늦게 오냐고 소리쳤다. 화장실에 휴지가 없었고 그렇게 20~30분을 갇혀(?) 있었던 거다.


아들이 이 지경이 된 충분한 상황, 사건이 있었. 상담을 받아볼까 했지만 그만두었다. 상처는 내가 줬는데, 다른 사람한테 치유받는다고 크게 나아질 리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전 읽은 책, 인생학교의 '유년기를 극복하는 법'에서는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려면 그때의 감정을 이해하는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감정을 다시 마주하고 표현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괜찮다고 수용받는 경험을 해야 치유된다고 했다. 그런 점에서 아들은 스스로 대변을 처음 가리던 서너 살로 돌아간 것 같다. 그리고 나에게 관심받고 수용받고 사랑받길 바라고 있는 것 같다. 아들은 나한테 계속 말하고 있었다.


'엄마, 나도 좀  봐주세요. 내가 막내처럼 똥을 싸도 웃어주고 닦아주고 사랑해 주세요. 아직 혼자 하기 서투르고 두려워요.'


종종 신에게 좋은 엄마가 되게 도와주세요, 기도했는데 신은 나에게 다시 좋은 엄마가 될 기회를 주셨다. 그 기회를 잡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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