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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숙 Jul 11. 2023

2023. 07. 11 비

사과

아침부터 막내가 열이 나서 하루종일 나에게 붙어있는 걸 겨우 떼어낸 지난밤, 주원이 친구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바르르 떨리는 목소리로,  여보세요?

 

 "그동안 주원이가 이도를 때렸나 봐요ᆢ 남자애들 장난이라고 넘기기엔 선을 넘은 것 같아요. 이도가 선생님한테 이르려고 하면 주원이가 선생님한테 또 이를 거냐?! 하면서 협박 아닌 협박을 했다고도 하고요. 그래서 이도랑 서진이는 주원이를 '주원님'이라고 부른다고ᆢ "


"어떻게 그런 일이ᆢ 정말 죄송합니다. 일단 주원이한테 자초지종을 물어보고 내일 하교 후에 사과하러 가겠습니다. 많이 놀라셨죠? 죄송합니다."


심장이 쿵쾅대고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이성을 잃을까 봐 심호흡을 몇 번 했다. 주원이에게 물어봤더니 전후사정은 있었으나 거의 사실이었고  더 이상 다른 건 묻지 않았다. 이유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이전부터 친구들이 주원이를 빼놓고 놀아서 속상했던 적이 몇 번 있었다(이때 내가 친해지는 계기를 마련해 줬으면 나았으려나ㅜ).  친구들에게 다가가는 방법을 잘 몰랐던 주원이는  힘이라는 쉽고 강력한 방법을 쓴 것이다. 엄하게 꾸짖었고 내일 친구에게 사과하라고 했다. 주원이는 알겠다고 하며 혼자 뭘 끄적거렸다.

나쁜 나, 괴물 같은 나ᆢ 자신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아들의 시선이 가히 충격적이었고,   상상으로 그린 가해(?) 그림을 사과편지에 넣은 걸 보니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나 싶었다. 그 편지는 전해주지 않기로 했다. 너의 진심이 오해받을 수 있으니 직접 말로, 행동으로 사과하라고 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오늘, 주원이는 이도에게 사과를 했다. 이도엄마에게는 주원이를 혼내주셔도 된다고 했다. 이도엄마는 다시 한번 이런 일이 있으면 안 된다고 경고했다. 폭력은 어떤 이유에서든 안 되는 거라고. 난 같이 죄인이 되어 고개를 숙였다. 정말 죄송합니다ᆢ


집에 돌아오는 길에 주원이에게 사과 잘했다고, 더 중요한 건 다시는 같은 잘못을 하지 않는 거라고 말해주었다. 주원이는 나한테 칭찬 같은 거 하지 마, 하고 들어가 버렸다. 지 딴에도 칭찬받을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나 보다.


초등학교 1학년, 8살. 이제 세상에 첫 독립의 발걸음을 내디뎠는데, 마치 돌아기의 첫걸음마처럼 어설프고 불안하다. 그 모습이  힘들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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