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주부생활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민숙 Jul 08. 2023

2023. 07. 06 맑음

마주하기

 얼마 전부터 한계에 다다랐다는 느낌을 받았다. 가슴이 답답했고 머리가 아팠고 기분이 침체되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잠도 오지 않았고 몸도 아팠다. 치유하지 못한 나의 상처들이 곪을 대로 곪아가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그 풀어지지 않는 나쁜 기분들은 고스란히 내 아이들에게 옮겨갔다. 짜증 내고 화내고 후회하는 악순환의 고리... 때마침 친한 언니가 추천한 책 『아이가 버거운 엄마 엄마가 필요한 아이』를 가뭄에 단비처럼 만났다. 평소 같았으면 추천을 받아도 ‘나중에 읽어봐야지.’ 하고 넘기곤 했었는데 이 책은 바로 읽고 싶어져 도서관으로 달려갔다.
 각자 세 아이를 키우고 있는 우리는 이 책이 육아서인 줄만 알았다. 책장을 넘길수록 이 책이 일반 육아서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나의 아이로부터 자꾸 건드려지는 나의 상처와 결핍에 대한 이야기, 엄마의 내면아이를 끌어내는 심리치유서에 가까웠다. 이 책에서 작가는 아이에게 화가 나는 반복되는 그 상황을 면밀히 살펴보라고 말한다. 내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것은 절대 나를 자극하지 않는다면서 말이다. 한 예로 만화책을 읽는 아이가 보기 싫었던 어떤 엄마는, 무능한 아빠와 닮았다는 이유로 엄마의 미움을 받았던 어린 시절의 상처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엄마는 작가와 함께 어린 시절로 돌아가 아빠와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을 쏟아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무의식에 자리 잡은 나의 상처와 결핍을 직접 마주해야만 그것을 치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작가가 그렇게 변화와 성장을 이루었다고 한다.
 사실 난 어린 시절의 상처들, 무의식에 자리 잡은 결핍들을 대부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것들이 내 아이들에게 대물림되고 있다는 것도. 다만 어떻게 치유해야 하는지,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를 잘  몰랐다. 심리치료를 받고 싶었지만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없었다. 나에게 쓰는 돈과 시간, 에너지가 아까웠다. 차라리 그 돈으로 아이들의 심리검사와 놀이치료를 선택하는 것이 마음이 편했다.
 하지만 이제는 마주해야 했다. 막내를 재우고 딸아이 방으로 들어갔다. 엊그제 물건을 정리하지 않은 딸아이에게 서랍을 뒤집어엎고 화냈던 그 자리에 앉았다. 그때의 상황으로 돌아가 딸에게 퍼부었던 비난의 목소리를 냈다.

 “엄마가 몇 번을 말해. 제발 정리 좀 하라고! 안 하니까 물건을 매번 잃어버리잖아. 한다고 한 게 이거야? 제대로 좀 하라고, 좀. 그냥 한 곳에 막 쑤셔 넣고 다 했어요? 어디에 뭐가 있는지 다시 찾지도 못하면서 이게 정리니? 이럴 거면 다 갖다 버려! 쓰레기장에 갖다 버리라고!”

그때 어린 시절 나의 엄마의 목소리가 겹쳐 들렸다. 눈물이 쏟아졌다. 말했다.

“엄마, 나 이제 8살이야. 아무리 치워도 엄마처럼 잘하지 못해. 치우다가 내가 좋아하는 인형을 보면 또 놀고 싶어져. 그래도 꾹 참고 치우면 엄마는 칭찬 한 번을 안 해줬어. 엄마가 피곤한 게 나 때문이야? 엄마 삶이 고달픈 게 나 때문이냐고! 나중에는 학교 갔다 돌아와서 하루종일 집만 치웠어. 그러다가 그릇이라도 깨면 지랄지랄. 내가 열심히 한 건 하나도 안 보여? 어디 다친데 없냐고 물어보는 게 먼저 아니야? 그래, 다 필요 없고 그냥 웃으면서 들어오라고, 좀. 밖에서는 세상 밝은 척, 세상 착한 척하면서 집에 와서는 왜 짜증에 면박인데! 왜 나를 엄마 삶에 무거운 짐처럼 느끼게 하는 건데! 내가 얼마나 더 열심히 치워야 날 보고 웃어줄 건데! 나도 막 어지럽히면서 놀고 싶다고!


잠이 밀려왔다. 쏟아낸 눈물, 콧물, 곪은 상처를  깨끗이 닦아내고 막내 옆에 조심스레 누워 눈을 감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2023. 06. 30 흐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