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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숙 Oct 04. 2023

2023. 10. 04 흐림

연휴일정

이렇게 긴 연휴에 일정이 모두 취소되었다. 원래는 요양원에서 처음으로 외박을 나오시는 시할아버지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당진에서 2박 3일을 머물 예정이었다. 나에게는 오래된 시골집이 불편했고 더군다나 시어른들이 계셔서 더 불편할 상황이었지만 아이들이 증조할아버지를 많이 보고 싶어 했다. 하지만 나의 결심이 무색하게, 연휴 전날 학원에서 돌아온 딸아이가 불덩이였다. 열이 40도였다. 병원은 이미 문을 닫을 시간이어서 밤새 해열제를 먹이면서 딸아이 곁을 지켰다.

첫째 날, 여전히 열이 떨어지지 않은 딸아이를 데리고 남편이 병원에 갔다. 의사는 목이 많이 부었다며 후두염 같다고 항생제를 처방해 주었다. 그렇게 딸아이는 하루종일 맥을 못 추고 누워 있었다. 그 와중에 증조할아버지가 보고 싶다고 노래를 해서 열이 좀 떨어지면 내일 잠깐 다녀오자고 했다.

둘째 날, 딸아이가 열이 서서히 떨어져서 이른 새벽 당진으로 출발했다. 다행히 딸아이는 북적거리는 추석날 분위기에 컨디션을 잠시 회복했으나 목이 아픈 탓인지 밥을 제대로 먹지 못했다. 시할아버지가 집에 오셔서 하루종일 손님들이 끊이질 않았다. 밥상, 술상, 설거지가 몇 번 반복된 끝에 밤이 되었다. 딸아이가 또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서둘러 집에 돌아왔다.


셋째 날, 아들이 일어나질 못했다. 몸이 불덩이였다. 남편이 아들을 데리고 병원에 갔다. 그 의사는 목이 많이 부었다며 후두염 같다고 똑같이  항생제를 처방해 주었다. 아무래도 이상했다. 코로나인가? 독감인가? 얼마 전 수족구에 걸린 사촌과 놀긴 했는데ᆢ 아들은 열이 펄펄 끓고 있어서 일단 두고, 열이 나고 3일 째인 딸아이에게 코로나 검사를 했다. 음성이었다. 오후가 되어도 열이 떨어지지 않은 아들은 숨을 못 쉬겠다고, 토할 것 같다고 울부짖었다. 근처 응급실에 갔는데 대기시간만 3시간이 넘었다. 겨우 들어가서 한 거라곤 코로나 검사와 독감 검사뿐. 2시간 동안 결과를 기다리고 음성이 나오자, 해열제를 처방해 주고는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해열제는 집에도 있는데ᆢ

넷째 날, 아들은 열이 서서히 떨어졌지만 침도 못 삼킬 만큼 목이 따갑다고 했다. 아무것도, 심지어 물조차도 마시지 못했다. 뭐라도 먹여볼까 이것저것 사 왔지만 도통 먹지를 못했다. 배가 너무 고픈데 먹을 수 없다면서 엉엉 울었다. 세상에 이런 고문이 어디 있을까, 그걸 바라보고 있는 엄마인 나는 아들의 배에 구멍이라도 뚫어서 배를 채워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다섯째 날, 막내가 불덩이였다. 연휴 동안 갔던 이비인후과 말고, 원래 다니던 소아과가 드디어 문을 열어 아이들을 데리고 갔다. 셋 다 수족구로 인한 구내염이었다. 목구멍 근처에 염증이 많았는데 특히 아들이 3~4배 심하다고 했다. 아마 수족구에 걸린 누군가와 접촉했을 거란다. 아, 사촌ᆢ 수족구는 바이러스로 인한 염증이어서 세균을 잡는 항생제가 아닌 항바이러스제를 먹어야 나아진다고 했다. 아, 그 의사ᆢ 누굴 탓하리. 다 내 탓이오. 기진맥진해서 집에 돌아오니 이번에는 남편이 불덩이였다.

연휴 마지막 날. 딸아이는 마지막 회복을 위해 누워 있었고, 아들은 잘 먹지 못해 일어나질 못했고, 남편 역시 고열과 몸살로 몸져누웠다. 이제 돌 지난 막내는 아파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울기만 했다. 다행히 나는 멀쩡해서 이리저리, 왔다갔다, 들락날락거렸다. 종종 딸아이의 짜증 내는 소리, 아들의 앓는 소리, 막내의 우는 소리, 남편의 한숨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보름달도 못 봤네, 나도.

□ 이 글은 나와 같이 세 아이를 기르고 있는 은하 작가님의 '연휴일정' 글에 대한 답글입니다.

https://brunch.co.kr/@ses1299/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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