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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숙 Sep 20. 2023

2023. 09. 20 비

 비가 오는 아침이면 유난히 아이들이 일어나지 못한다. 이 습기란 것이 어딘가 스며들면 희한하게 사람이든 물건이든 축 처지게 만드는 재주가 다. 나 역시도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 등교 준비를 서두르지만 아이들의 속도는 날 따라오지 못한다. 화를 내지는 않았지만 이미 내 표정과 말투는 짜증이 가득하다. 그나마 소리 지르지 않은 나 자신을 토닥이며 아이들을 학교에 부랴부랴 보냈다. 막내가 배가 고프다고 우는 바람에 학교까지 데려다줄 수 없었다.

 막내에게 밥을 한 두 숟가락 떠먹이고 있는데 띡띡띡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린다. 아, 또 누가 뭘 놓고 갔나 보다. 짜증이 밀려오면서 후다닥 현관 앞으로 나가며 소리쳤다.

"누구야? 뭘 또 안 가져갔니?"


아들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주원아, 왜 다시 왔어?"

"엄마 안아주고 싶어서..."

"어?"


 그렇게 아들은 진한 포옹을 해주고 다시 현관을 나섰다. 어리둥절한 기분으로 막내에게 밥을 몇 번 더 떠먹이는데 갑자기 아이들이 보고 싶었다. 막내를 업고 학교로 향했다. 빠른 걸음으로 가면 따라잡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학교 앞 횡단보도에서 빨간불이 켜졌다. 아들은 그 길을 건넜고 난 건너지 못했다. 차마 부르지 못하고 아들의 작은 뒷모습만 계속 바라봤다.


'너는 알까? 매일 똑같고 바쁜 아침 속에서 이 순간이 영원처럼 소중해졌다는 걸. 이 소중함을 잊지 않기 위해 글을 쓰고 있다는 걸. 

오늘도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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