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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숙 Oct 20. 2023

2023. 10. 19. 흐림

아들의 이야기

탕후루를 하나씩 사들고 횡단보도의 초록불이 켜지길 기다렸다. 아들이 물었다.


"엄마, 구속이 뭐야?"

"구속은 잡아둔다는 뜻이야. 가령 죄를 지은 사람이 도망갈까 봐, 잘못한 증거를 없앨까 봐 구속해서 죄를 조사하지. 도망가지 않고, 솔직하게 말하면 구속하지 않고."

길 건너 아들이 보고 있는 플랜카드가 보였다. 어떤 정치적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 대충 알지만 관심은 없었다. 아들에게 '구속'의 사전적 의미가 잘 전달됐길 바랄 . 이게 며칠 전의 일이었다.


아들은 게임만큼 책 읽는 것도 좋아한다. 혼자도 잘 읽지만 내가 읽어준다고 하면, 그 좋아하는 게임도 제쳐두고 책을 가지고 다다닥 달려온다. 막내가 태어나고 책 읽어주는 게 쉽지 않았지만 이제는 막내 재우기를 포기했다. 어차피 막내가 잘 안 잔다.

그렇게 가져온 책은 '착한 동생과 못된 형'. 게으르고 욕심 많은 형이 부지런하고 착한 동생을 장님으로 만들고 가진 걸 다 뺏고 내쫓지만 결국 형은 도깨비들에게 벌을 받는 전형적인 권선징악의 이야기다. 흥부와 놀부 같기도 하고, 혹부리 영감 같기도 하고 뭐 그런 뻔한 내용인데 여덟 살의 아이에게는 흥미진진한가 보다. 독서가 학습이 될까 봐  독후활동이나 질문을 잘 안 하지만 오늘은 뻔한 질문을 했다.


"주원아, 이 책을 읽고 뭘 느꼈어?"

"한마디로 말해볼까?"

"어ㅎㅎ 한마디로 말해봐."

"구속은 피해도 처벌은 피할 수 없다."


이걸 이럴 때 써먹네ㅎㅎ 아들의 재치에 크게 웃고, 여덟 살의 아이에게 관심을 갖게 한 여당의 정치적   문구에 피식 웃는다. 아들은 진짜 나쁜 사람은 어떻게든 처벌은 피할 수 없다며 혼자 중얼거리더니 잠이 들었다.


너와 내가 살아갈 세상이, 그 뻔한 권선징악처럼 공평하길. 그리고 너는 그 선의 길을 걷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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