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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숙 Oct 20. 2023

2023. 10. 19 흐림

딸의 이야기

어젯밤 아이들과 나란히 누웠는데, 내 옆자리를 차지한 딸이 나에게 꼭 붙어서 물었다.


"엄마, 내가 잘하는 게 뭐야?"


그 질문에 피식 웃음이 난 건 딸의 질문 갑작스러워서도 아니었고, 진지해서도 아니었다. 내가 평생 고민해 온 질문이었기에 그랬다. 아직도  내가 잘하는 게 뭔지 모르겠는데, 같은 질문을 던지는 딸에게 묘하게 동질감 같은 게 느껴졌다. 나도 여덟 살에 저런 고민을 했었나 싶기도 했다. 딸이 그 질문을 한 이유인즉슨 내일 자신이 잘하는 것을 발표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선생님께서 자신이 잘하는 것을 종이에 써서 내라고 했는데 딸은 결국 쓰지 못했다고 다.


"선생님, 저는 잘하는 게 없어서 쓸 수가 없어요ᆢ"

"음, 선생님이 생각하기에 소원이는 친구들을 잘 도와주고, 발표를 잘하는 것 같아요."


그래도 딸이 머뭇거리자, 그럼 집에 가서 더 생각해 보고 종이는 내일 내라고 했단. 난 에게 말했다.


"너는 영어를 잘하잖아."

"영어는 나보다 잘하는 친구들이 많아. 난 최고반도 아니고ᆢ"

"정리 잘하잖아."

"그런 건 발표하기가 좀 그래ᆢ"

"글씨 잘 쓰잖아."

"엄마는 모르겠지만 선생님한테 몇 번 지적받았어."

"그럼ᆢ 아기 잘 돌보잖아."

"그것도 누구한테 보이는 게 아니잖아."

"소원아, 지금 여덟 살에는 다 처음 배우는 라서 내가 열심히 하고, 잘하고 싶은 게 있으면 그게 잘해지는 거야. 무슨 대회가 있어서 1등 하는 것도 아니여덟 살한테 이걸 누가 잘한다, 못한다 판단하니? 너 스스로 잘하고 싶은 거, 그래서 열심히 하는 거를 발표하면 될 것 같은데ᆢ"


어느새 고민 가득한 얼굴로 스르륵 잠든 딸. 마치 날 보는 것 같아서 안쓰러웠다.


그리고 오늘, 딸이 발표를 잘했는지 무척 궁금했다. 자기 전 몸을 씻겨줄 때면 가만히 서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딸이 먼저 입을 열었다.


"엄마, 나 발표는 그럭저럭 잘한 것 같아. 선생님이 이게 시험이라고 해서 엄청 떨렸거든. 그리고 목소리가 작은 친구들은 다시 발표했는데  난 다시 안 했어.

"~ 근데 뭘 잘한다고 발표했어?"

"주산."

"어? 주산? 주산 잠깐하고 그만뒀잖아."

"응ᆢ 근데 다른 거 할 때는 누구한테 잘한다고 칭찬받은 적이 없었는데 주산할 때는 몇 번 있었거든. 그만뒀지만 아직 까먹지 않았고."

"그랬구나ᆢ"

"그리고 이건 비밀인데, 내 차례가 왔을 때도 나 계속 못해서 결국 맨 마지막에 해냈어. 히히~ "


'한 게' 아니라 '해낸' 딸의 환한 미소를 보니 기특하면서도 괜히 마음이 아려왔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모습이, 딸이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에 투영된 듯 자신감 없이 자라는 딸을 보고 있자니 다 내 탓인 것 같았다. 엄마의 자신감이, 엄마의 역할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느꼈다.


'소원아,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너 잘하는 거  많아. 잘 웃고, 마음씨 착하고, 호기심 많고, 뭐든 열심히 하고ᆢ 근데 엄마가 칭찬을 안 해서 몰랐구나. 앞으로 잘하는 걸 발견해보자. 너도, 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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