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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숙 Nov 02. 2023

아무거나

막내의 제대로 된 이유식을 포기하기마음먹은 건, 막내가 태어나기 전부터였다.


어렵게 가진 쌍둥이는 작고 약하게 태어난 데다가, 내 젖을  못했고 유도 늘 토하기 일쑤였다. 이유식은 제대로 먹이고자 무조건 국산에, 유기농에, 투뿔 한우만 고집해서 직접 해 먹였지만 아이들 입에 들어가는 건 별로 없었다. 잘 먹지 않았고 먹는 것에 아예 관심조차 없었다. 쌍둥이가 8살인 지금까지도 밥 때문에 실랑이를 벌이고 있으니, 혹시나 아이를 또 낳으면 이렇게 애쓰지 않겠다고 결심했었다. 그렇게 태어난 막내는 내 굳건한 결심대로 초기 이유식의 한두 달을 제외하고는 사다 먹이고, 시켜 먹이고, 쌍둥이밥에 간을 덜 해서 주곤 했다. 어쩔 땐 간도 그대로인 채로 믹서기로 리릭 갈아서 먹였다. 그래도 막내는 아무거나 잘 먹었다.


얼마나 아무거나 먹는지 어느 날은 언니를 졸졸 따라다니며 무언가 먹고 있었는데, 그건 바로 언니가 흘린 오레오 과자 조각들이었다. 극강의 단맛에 노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밍밍한 떡뻥도 잘 먹어서 그나마 다행이지만 부작용은 있었다. 밖에서도 바닥에 굴러다니는 까만 조각들만 보면 입에 넣고 본다. 그게 돌인지 똥인지 모르겠지만, 포기하니까 그 모습을 봐도 웃어넘겨졌다. 예전에 누가 쌍둥이한테 그 시기에 먹으면 안 되는(?) 간식을 주면 이해도 안 되고 짜증까지 났더랬다. 그때는 왜 그렇게 예민했는지 모르겠다.


실랑이는 벌이지만 쌍둥이와의 식사도 훨씬 편해졌다. 먹을 반찬이 없다고 투정을 부리 빵이나 라면을 주고, 먹기 싫다고 하면 그만 먹으라고 한다. 나는 아이들과 같이 먹을 때도 있지만 대부분 나중에 먹는다. 잘라주고 발라주고 얹여주다 보면 내 밥은 늘 식어 있기 때문이다. 즐겁게, 함께 식사하는 게 중요하다고 하지만, 그러려면 내가 좋아하는 반찬도 있어야 하는데 어른들 반찬을 또 하기란 쉽지가 않다. 그게 다 내 일이니까 더욱 그렇다. 반찬을 사서 먹어도 봤는데 사 먹는 음식은 금방 질린다.


즐거운 식사, 함께하는 식사(아빠는 매일 야근으로 늦는다)를 일찌감치 포기하고, '내가 먹고 싶은 걸 먹자'로 바꾸었다. 물론 어느 날은 누구는 밥, 누구는 누룽지, 누구는 토스트를 먹는다고 해서 버거울 때도 있지만 먹기 싫은 음식을 억지로 먹으라고 애원하고 권유하고 협박하는 것보다 낫다. 쌀의 찰기 넘치는 구수함, 김치의 개운한 감칠맛, 채소의 다양한 단맛들은 어른이 되면 차차 알게 될 것이다. 나도 8살에는 콩이랑 당근, 파가 너무 싫었지만 지금은 맛있게 잘 먹으니까 말이다.


첫째 때 포기할 수 없는 것 중 가장 힘들었던 '먹는 것'을 포기하게 해 준 막내에게 그저 고맙다. 그냥 툭 내려놓으면 될 것을, 양쪽 어깨에 한가득 짊어지고 7년을 투덜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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