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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숙 Nov 07. 2023

선행학습

자기중심적인 아이들이 배려와 양보를 실천해야 하는 시기가 바로 초등학생이 되었을 때이다. 유치원생 시절에도 이런 덕목들을 배우긴 하지만, '내 거야!'를 더 외친다고 한들 크게 나무라는 이는 없다. 아직 어리니까 괜찮다. 그때에는 나는 소중한 존재이고, 내 것이 중요하고, 나의 기분과 감정을 그대로 표현해도 된다. 아니, 표현해야 한다.


초등학생이 되어서는 달라진다. 나만큼 상대방도 소중한 존재이고, 내 것을 챙기는 만큼 상대방도 자신의 것을 챙길 권리가 있음을 알고, 상황에 따라 상대방의 기분과 감정까지 배려해야 한다. 이 모든 것들이 규칙과 질서, 예의 안에서 이루어진다. 초등학생이 되었다고 해서 번에 되지는 않는다. 개인마다 발달과 성장이 다르듯 3월에 깨닫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10월에 깨닫는 아이가 있고, 아니면 계속 깨닫지 못하는 아이도 있다. 올해 초등학생이 된 우리 집 아들 역시 1학기 내내 이리 쿵 저리 쿵 해대며 고군분투했다.


쌍둥이로 태어나서, 속에서부터 경쟁자가 있었던 아들은 남들은 당연하게 받았던 엄마의 사랑을 나눠야 했고, 기다려야 했다. 더 크게 울지 않으면 더 오래 기다려야 한다는 걸 알게 된 순간부터 아들은 딸보다 더 많이 울었다. 그렇게 자기 밥그릇을 챙기는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한편으론 안쓰러웠는데, 커갈수록 이기적으로 보였다. 자기 밥그릇을 내주는 딸 때문에 더 그래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아들에게는 생존의 문제였을텐데, 쌍둥이로 태어나보지도 않았으면서 이 모든 상황의 갑의 위치에 있는 내가 판단할 일은 아니긴 하다.


어찌 됐건 아들은 막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남자 동생이 아니라는 이유로 삐져 있었고, 막내가 태어나서는 모르겠다. 7년 만에 다시 하는 육아로 쌍둥이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저 아침에 부랴부랴 유치원에 보내고 저녁에 대충 식사만 챙겨줬. 모든 중심이 쌍둥이에게서 막내로 옮겨졌다. 영화로 치면 주인공이 바뀐 것이다. 원래 주인공이었던 쌍둥이의 당황함, 서운함, 상실감을 모르진 않았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전처럼 나에게 수없이 보냈을 관심의 눈빛과 행동에 답을 못 받았을 것이다. 많이 속상했을 것이고,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쌍둥이를 위로해 준 건 다름 아닌 막내였다. 동그랗고 말랑하고 보드라운 막내는 위로의 최적의  모습을 하고 있었고 유독 쌍둥이에게 잘 웃어주고 잘 반응했다. 백일 무렵  오빠의 춤을 보고 소리를 지르고 까르르 웃는 동영상이 여러 개 있다. 기어 다니기 시작할 때부터는 언니를 졸졸 쫓아다녔는데, 그래서인지 '엄마', '아빠' , '안녕' 다음으로 한 말이 '언니'였다. 쌍둥이는 막내의 귀여운 모습을 보면서  막내의 불편함, 요구사항, 옹알이 등을 나보다 빨리 알아차렸다. 막내의 느린 행동을 기다려주었고, 막내의 알 수 없는 말을 들어주었다.


늘 경쟁적으로 살아야 했던 쌍둥이였기에 세상 어떤 것과 싸워도 질 게 뻔한 막내는 쉽게 이길 수 있는 존재였을텐데 이기려 하지 않았다. 그게 바로 학교에서 가르치고자 하는 배려와 양보였다. 차근차근 배우겠지만 집에서 선행학습을 한다면 아이들에게 배려와 양보가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첫째의 인성교육에 관심 있는 부모라면  둘째는 필수다. 대신 쌍둥이나 연년생은 피하는 게 좋고, 이미 낳았다면 둘째보다 더 귀여운 셋째가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기회는 항상  열려있다. 오늘밤, 그 가능성을 선택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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