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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숙 Nov 14. 2023

상담

어제 만난 동네 엄마가 2학기 상담은 꼭 해보라고 했다. 내 자식에 대한 막연했던 불안감이 교실 안에서 드러났는지, 그것이 얼마나 심각하게 드러났는지를 바로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선생님도 1학기 상담 때는 아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마냥 좋게만 얘기해 주셨는데, 2학기 상담 때는 객관적으로, 자세하게 알려주신다고 했다. 개그우먼이 꿈이었던 그 집 딸은 똘똘하고 성격 좋고 씩씩하기까지 해서 별 걱정이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기분이 너무 업 되면 그 감정을 자제하기 어려워 수업시간에도 말이 많아지거나 행동이 커져서 문제가 되곤 했단다. 집에서도 종종 그랬는데, 결국 학교생활에서도 드러나고야 말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 얘기를 듣고 나는, 아들 반의 선생님과 딸 반의 선생님에게 방문상담을 요청했다. 근데 바로 아들 반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선생님은 아무 말씀 없이 잠시 머뭇거리셨다. 그리고는 이내 전화 상담도 괜찮냐고 하시면서 판도라의 상자를 여셨다. 마치 내 전화를 오랫동안 기다리신 듯 30분을 넘게 쉼 없이 얘기하셨고 아들에게 뜻밖의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일단 내가 우려했던 폭력적인 부분은 문제가 없었다. 그 또래의 남자애들은 으레 몸으로 놀기를 좋아해서 문제를 일으키곤 하는데, 아들은 그렇게 거칠게 놀지는 않는다고 했다. 다만 말로 친구들에게 상처를 주거나 갈등을 일으킬 때가 많다는 것이다. 정말 별 것도 아닌 것들, 가령 오늘도 어떤 아이가 물 묻은 손으로 아들을 만졌는데 옷이 살짝 젖었고 그걸로 사과를 요구했다고 한다. 상대방의 실수나 잘못을 너그럽게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만의 논리로 무섭게 몰아치는데 다른 아이들은 거기에 당해낼 재간이 없다는 것이다.  

정신이 멍해졌다.

아들이 7살 때 유치원 방과후 수업 선생님도 그러셨다. 아들이 또래 아이들이 쓰지 않는 단어를 써서 친구들에게 상처를 준다길래, 혹시 욕을 하나 싶었다. 근데 욕은 아니라면서 정확히 무슨 단어인지 생각나면 말씀드리겠다고 했는데, 그 후 1년이 지나깜깜무소식이다. 하여튼 지금 생각해 보니까, 어떤 특정 단어보다 자신이 세워놓은 논리로 친구들을 꼼짝 못 하게 한 것 같고, 그 생각이 더욱 견고해지지 않았을까?

혀 아래 도끼가 있다는 속담처럼 말은 상대를 칼처럼 찌를 수도, 도끼처럼 찍어 낼 수도 있다. 모든 관계가 주먹으로 쳐서 깨지는 아니라, 무시하고 비난하고 조롱하고 의심하는 말 한마디로 끝나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않은. 걱정이 되었다. 과거에 무엇이 잘못된 걸까 고민하고, 지금 어떻게 도와줘야 할까 고민하는 사이 아들이 학원에서 돌아왔다.


힘들고 피곤한지 아들은 유난히 짜증을 부렸다. 오늘은 숙제도, 게임도 하지 말쉬라고 했다. 사실 어떻게 훈육해야 할지 계속 고민 중이었고 그 와중에 아들의 짜증을 받아줄 수가 없어서 내린 선택이었다. 아들은 자장면과 탕수육을 시켜 먹고, 어릴 때 가지고 놀던 뽀로로 자동차를 가지고 놀다가, 이내 좋아하는 책을 잔뜩 쌓아놓고 읽기 시작했다. 아들을 쉬게 하는 것들이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아직 8살밖에 안 됐는데 왜 그렇게 날이 서 있을까? 왜 그렇게 자기 생각 안에 갇혀 있을까?  열어놓지 않으면 어떤 경험도, 배움도 일어날 수 없고 성장마저 멈춰버린다. 육아대통령 박사님도, 아들연구소 소장님도 해결해주지 못하는 내 아들의 내 문제. 8살 아들의 엄마가 처음인 나로서는 여전히 모르는 것 투성이지만 그래도 극복해야 한다. 나에게는 아직 마주해야 할 8살 딸의 성장, 2살 딸의 성장있으니까 말이다. 한번 세게 맞아서 그런지 수요일에 있을 딸의 상담은 오히려 마음이 편해진다. 문제 자체에 매몰되지 않고 상황을, 아이를 차분하게 바라보게 만드는 것도 다둥이맘의 업그레이된 능력이라면 능력일터. 아자아자,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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