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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숙 Nov 17. 2023

성장

스물두 살, 남편을 만나 6년의 연애를 했다. 스물여덟 살, 남편과 결혼하여 6년의 신혼생활을 했다. 12년 동안 오직 우리 둘 만 있었던 그 시기가 좋았고, 예뻤고, 평화로웠던 게 사실이다. 연애 때는 각자 학생이었기에 과제, 시험, 취업준비 등 해야 할 일들이 있어서 바쁜 시간 속에서의 만남이 애틋했다. 신혼 때는 회사에 다니면서 똑같이 굴러가는 하루의 저녁시간을 함께 하는 것이 편안했다.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고, 3년이 지나도 그 편안함이 지속되자 우리는 뭔가 공허함을 느꼈다. 원래 셋이었다가 한 명이 떠난 것도 아니고, 처음부터 우리 둘 뿐이었는데 이상하게 텅 빈 느낌이 들었다. 저녁에 맛있는 안주와 맥주도, 주말에 영화와 맛집도, 휴가 때 국내외 여행도 그때뿐이었다. 취미도, 운동도 같이 해보았지만 그것도 별 재미가 없었다. 오죽했으면 남편이 좋아하는 당구를 배워보겠다고 주말마다 당구장에 갔을까.


그 무렵, 결혼을 하면 아이가 저절로 생길 줄 알았는데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도 생기지 않아서 그것도 의아했다. 사실 병원에 가는 것이 꺼려지긴 했지만 도무지 알 수 없는 생명 탄생의 비밀을 풀어야 했다. 난임 판정을 받았다. 이후 남편과 함께 금연과 운동, 한약과 식습관 개선, 호르몬제와 시술 등 갖은 노력 끝에 지금의 남매 쌍둥이를 얻었다. 내 나이, 서른 넷이었다. 임신을 준비하면서 계속된 실패로 이미 우리의 평화는 깨진 지 오래였고, 임신기간 내내 고위험산모로 병원을 들락날락거렸다. 고위험산모의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나는 다태임신을 비롯하여 출혈, 전치태반 등에 해당됐다. 남편은 직업 특성상 해외출장이 기에 그런 나를 돌봐줄 수 없었다.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되는 그 처음의 모든 것들이 두려웠지만 은근히 설레었고, 책임감 마저 들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나의 평화는 오지 않고 있다. 만약에 신이 그때의 그 평화로웠던 시절로 돌아가게 준다면, 거절하겠다. 아무 걱정 없는 시간, 어떤 불안 없는 시간이 잠시는 행복했속되면 그것도 견디는 시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방학을 하고 신나게 놀던 학창 시절에도, 회사를 그만두고 잠시 에도 시간이 지나면 개학을 기다렸고, 출퇴근하는 회사원들을 부러워했다. 문제가 없고, 목표가 없는 온전히 평화만 있는 그 시간에 나도 함께 멈춰버리기 때문일까?


지금의 일상은 아이들을 먹이고 치우고, 씻기고 치우고, 재우고 치우는 일의 반복이다. 종종 아이들의 이해할 수 없는 떼부림, 갑자기 오르는 열, 뜬금없이 던지는 부정적인 말 등이 발생하면 나는 고객센터 상담원이 되었다가, 119 구급대원이 되었다가, 오은영 박사님이 되기도 한다. 그때 그때 할 해치우다 보면 어느새 하루가 지나간다. 분명 이것도 견디는 시간인데 견딜만하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특별히 아이를 좋아하거나 모성애가 많은 사람도 아닌 내가 이걸 해내고 있다. 식물을 길러 본 적도, 동물을 길러 본 적도 없는 내가 이걸 해내고 있다. 육아는 누구나 할 수 있다.


이를 두고 누구는 '사랑'이라고 하고, 누구는 '희생'이라고 하지만 나는 '성장'이라고 말하고 싶다. 인생의 30~40년을 나의 성장을 위해 살았으니까 남은 인생의 30~40년은 남의 성장을 위해 살아봐도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것. 소란스럽지만 크고 작은 기쁨들다. 바람 잘 날 없는 일상이 버거울 때도 있지만 아이들이 있어 웃음이 난다. 혹시  시절 우리의 평화는 문제없었고, 웃음도 없었던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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