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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숙 Dec 02. 2023

12월의 첫날

아침이 다가오는 새벽녘이면 안방문을 살며시 열고 들어오는 딸. 8살이지만 몸이 자그마해서 내 품에 쏙 들어온다. 늘 안기고 싶어 하는데 막내가 깨어있을 때는 내 품을 양보하고, 막내가 자고 있을 때만 내 품에 들어오는 착한 아이다.


"소원아, 오늘이 무슨 날인줄 알아?"

"응, 12월 1일."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네. 착한 일 많이 해야겠다~ 산타할아버지한테 선물 받으려면!"


빙그레 웃더니 갑자기 무언가 떠올랐는지 눈이 동그래진다. 아무도 듣는 이가 없는데도 내 귀에 얼굴을 더 가까이 댄다. 목소리를 최대한 낮추어 속삭인다.

 

"엄마, 이건 비밀인데... 에일린은 작년에 크리스마스 선물을 못 받았대. 산타할아버지가 깜빡했다나 봐. 근데 내 생각에는... 에일린이 거짓말을 해서 안 주신 것 같아. 진짜로 안 주는 아이도 있었어! "


아직도 산타할아버지를 믿고 있다는 사실에 슬며시 미소가 흘러나왔지만 새는 걸 잘 막아냈다. 7살까지 물건을 잃어버리면 아빠가 찾아주곤 했는데(놀라운 동체시력을 가진 아빠는 길을 걷다가 심심치 않게 네잎클로버를 찾아내는 능력이 있었는데 그래서인지 모두가 절대 찾을 수 없다는 아주 작은 물건들을 잘 찾아냈다) 딸은 아빠가 작은 마법을 할 수 있다고 믿었다. 지금은 아빠가 바쁘다 보니 마법을 쓸 일이 없어서 거의 사라졌다고 하니 또 그렇게 믿는 순수한 아이다.


"어머, 그렇구나. 소원이도 올해 선물을 못 받으면 어쩌지?"

"음, 괜찮아. 12월 지나면 1살 더 먹잖아. 그게 어디야~"


쌍둥이여서 늘 경쟁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기려 하지 않았고 가지려 하지 않았다. 항상 아들에게 양보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내놓으라는 아들 때문에 종종 억울해하는 것 말고는 늘 평온했다. 욕심도 별로 없고 작은 것에도 항상 감사하는 아이다.


이보다 더 어렸을 때(아마 6살이었던 것 같다)는 길을 가다 넘어져도, 친구랑 싸워도, 한테 혼이 나도 잘 울지 않는 딸에게 넌 왜 아플 때, 슬플 때 잘 울지 않냐고 물었던 적이 있었다.


“엄마, 내가 잘 울지 않는 이유는 슬플 때 기쁨을 사용해서 그런 거야. 내가 대부분 기쁘잖아? 그 기쁨을 잘 모아뒀다가 슬플 때 사용하면 눈물을 참을 수 있거든.”


기쁨을 모아둔다는 딸의 말이 당시에 얼마나 놀랍고 기특했던지.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 역시 남편의 인정, 아이들의 웃음, 친구의 공감, 엄마의 반찬, 좋아하는 책과 음악 등 평소에 나를 잘 채워두웠던 소소한 행복과 기쁨들이 힘들 때 버팀목이 되었던 것 같다. 그게 바로 기쁨을 모아두는 일이 아닐까? 그런 거 보면 딸은 참 행복한 아이다.


2023년의 마지막을 장식할 12월의 첫날. 남은 날들을 아이처럼 착하고 순수하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행복하게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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