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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숙 Jun 07. 2024

2024. 06. 07 맑음

4월 어느 날의 이야기, 그리고 남겨진 위로

"언니, 나 결혼해요!"


이십 대 후반에 함께 입사해서 3~4년 정도 같이 일했던 동기가 마흔이 된 올해 결혼을 한다고 했다. 다른 입사동기였던 언니와 나는 이미 아이 셋을 키우며 베테랑 아줌마가 다 되었다. 얼굴도 예쁘고 능력도 좋고 성격도 말하면 입 아플 정도로 쿨한 그녀였기에 왜 세상의 모든 남자들은 그녀를 가만히 둘까 의아했을 정도였는데, 드디어 간다니! 그 행운의 남자가 궁금했다. 엊그제 청첩장을 주기 위해 우리를 불러 모은 그녀와 그동안 나누지 못했던 얘기들을 풀어내며 한참을 웃고 떠들었다.


역시 좋은 남자라 기뻤고, 그 둘이 운명처럼 맞아서 놀라웠다. 여행을 좋아하는 그녀가 신혼여행을 위해 '스위스'만은 소중히 아껴두고 가지 않았는데, 태어나서 단 한 번도 해외여행을 가본 적이 없는(심지어 여권도 없었다는) 예비신랑이 자기가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스위스'라고 말했다는 대목에서 마흔이 넘은 우리들은 환호했다. 그러고 보니 연봉도, 재산도, 예물이나 예단도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녀의 운명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했고, 그 옛날의 결혼을 앞둔 나로 돌아간 듯 설레었다.


책과 함께 시작한 우리이기에 요즘 책을 준비하는 다른 언니의 이야기로, 이미 작가이면서 편집자로서 커리어를 새로 쌓고 있는 동료의 이야기로, 그리고 내 글쓰기의 한계와 나아가지 못하는 고민 등에 대한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아이의 친구관계 때문에 속해있는 엄마 모임에서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빙그레 웃고만 있는 내 모습과는 대조적이었다. 그들은 지나치게 날카롭고, 지나치게 까다롭고, 지나치게 민감하다. 행여나 그 날카로운 시선에, 까다로운 기준에, 민감한 반응에 나와 내 아이가 거미줄처럼 얽힐까 봐 난 입을 다무는 쪽을 선택하고 있었으니까. 아이에 대한 이야기 없이 온전히 나와 너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 찬 그 시간이 좋았다.


만남의 끝무렵, 내가 푸념 섞인 말로 그랬다.


"내 글은 죄다 힘들 때 써서 우울해. 요즘 사회적으로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다길래, 출산 장려 브런치북을 기획하고 연재했다? 애들 키우면서 소소한 행복이나 기쁨, 보람 이런 걸 쓰려고 했는데, 내용은 애 키우기 힘들다는 것뿐이야. 그게 사실이지만 기획 의도와는 다르게 완전히 망했지."


다음날, 그날 같이 모였던 작가 친구가 다음과 같은 카톡 메시지를 보냈다.

그녀가 잠시 일을  때 엄마가 치매 판정을 받으셨고, 그 바람에 그녀는 제대로 된 일을 하기는커녕 엄마를 돌보고 살림까지 도맡게 되었다. 결혼도 안 했는데 이미 살림과 육아의 고단함을 잘 알고 있는 그녀는 아이가 되어버린 엄마를 돌보면서 힘들기에 제대로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자주 보지는 않았지만 볼 때마다 밝았고, 힘든 내색도 하지 않았다. 그게 벌써 5~6년 전이었던 것 같다. 아닌가, 7~8년 전이었던가. 몇 년 전에 자기는 설거지하면 그렇게 기분이 개운하다고 말하며 해맑게 웃던 기억이 난다.


작가로 세상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이 간혹 우리와  달라고개를 갸웃할 때도 있었지만 그녀 안에는 뭔가 밝고 단단한 게 꽉 차 있다. 책을 준비하는 언니 역시도 그녀의 말 한마디로 출간 용기를 냈다는 걸 보면 그녀의 말과 글에는 힘이 있다. 위로가 되고 응원이 된다. 나도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 사람이 되었으면, 그게 바로 내 옆에 있는 가족이길 바라본다. 그런 엄마이고 싶고, 아내이고 싶고, 딸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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