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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숙 May 17. 2024

2024. 05. 17 맑음

내가 무언가 끄적거리기 시작한 건, 내 복잡한 마음과 다르게 항상 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 뒤엉킨 생각과 다르게 '좋아요'라고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냥 밝고 착한 사람으로 비쳐졌기 때문에 어딘가에는 '진짜 내가 아니야!'라고 솔직하게 털어놓고 싶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속의 대나무숲 같은 끄적거림은 마음을 한결 가볍게 했고, 몰랐던 상처나 결핍을 알게 했고,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의지를 불러일으켰다. 더불어 글로 밥벌이하는 작가들이 부럽기까지 했으니, 욕심인지 발전인지 모르겠지만 계속 나아가고 싶었다.


박완서 작가처럼 소박하지만 잔잔한 울림이 있는 글을 쓰고 싶은데 쉽지 않았다. 어디 대작가의 글에 나 같은 나부랭이 글을 갖다 댈까 싶지만 그분의 발톱의 때만큼이라도 닮고 싶은 게 내 작은 바람이다. 문예창작과를 가볼까 고민도 했지만 아이들은 아직 엄마의 손길이 필요하기에 환갑쯤을 노리고 있다. 그럼 막내가 대학교에 입학할 때쯤이니 같이 학교를 다니는 것도 그 얼마나 멋진 일인가.


잊을만하면 한 번씩 글을 쓰고 싶어서 끓어오를 때가 있다. 아마도 박완서 작가가 한 말처럼 내 안에글을 쓰고 싶어서 가득 차오를 때, 그래서 웅성거릴 때가 아닌가 싶다. 나는 그게 한 두 번의 글쓰기로 끝나고 마는데, 그녀는 마흔에 시작된 그 글쓰기가 마지막 순간까지 이어졌다. 그 세월이 글을 지 않고 살아온 만큼이나 되니 그저 놀랍기만 하다. 그러고 보면 마흔은 밖의 소리가 아니라  안의 소리를 귀 기울여 들을 수 있는 나이인 듯하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기에 적당한 나이.


어제는 같이 글을 쓰면서 고민을 나누는 친한 언니가 비수 같은 질문을 던졌다.


"근데 요즘 왜 글 안 써?"

"어? 그러게ᆢ 써야 하는데. 요즘은 딱히 쓸 이유가 없네~"


20대에 이유 없이 시작한 글쓰기였는데, 이제 와서 글을 써야 할 이유를 찾고 있는 나를 보며 내가 왜 자꾸 멈추는지, 끝까지 하지 못하는지 알았다. 좋아하면 그냥 계속해도 될 일인데 자꾸 따지고 이유를 들먹인. 글쓰기를 감정쓰레기통처럼 이용만 하는 것 같아 얕은 죄책감마저 들었다.


집에 와서 아이들과 투닥거리고 앉았는데, 아들이 학교에서 다 끝났다며 국어책을 내밀었다. 아들의 자유로운 글씨와 생각이 펼쳐져 있어서 꽤 재미있게 보고 있는데 나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내 얼굴이 누렇고 예쁘다니! 이 얼마나 신박한 표현인가. 내가 잘하는 게 글쓰기라고도 썼다. 단 한 번도 내 글을 아들에게 보여준 적이 없었고 아들은 초등학교 2학년으로 아직 글을 잘 쓴다, 못 쓴다 판단할 수 있는 나이도 아니다. 가끔 '엄마는 글을 잘 쓰고 싶어!'라고 말한 적이 있긴 하지만 이건 내 바람이지, 실제로 잘하는 게 아닌데 말이다. 난 착하지 않아서, 글을 잘 못써서 고민하고 있는데, 아들은 내가 착하고, 글쓰기를 잘한다고 소개하고 있다. 그야말로 내가 보는 나와 아들이 보는 나는 '누렇고 예쁜 나'처럼 완전히 상반된다.


그러고 보면 나의 기준, 나아가 어른의 기준에서 '예쁘다'는 완벽함이다. 눈, 코, 입, 얼굴형, 피부색이 모두 완벽해야 예쁘다고 말한다. 눈이 작거나, 코가 들창코거나, 치열이 고르지 않다면 예쁘다고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의 기준에서 '예쁘다'는 눈만 예뻐도 예쁘고, 코만 예뻐도 예쁘고, 심지어 안 예뻐도 엄마여서 예쁠 수 있다. 예전에 내 친구가 집에 놀러 왔었는데, 그 친구의 덧니를 본 4살 된 딸아이가 그랬다.


"이모는 이가 2개나 있어요. 특별해요."


그 덧니 때문에 평소에도 입을 크게 벌려 웃지 않는 친구였는데, 눈물을 글썽이며 감동했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아이에게 덧니는 예쁘지 않은 이가 아니라 특별한 이다.


더불어 어른의 기준에서 '잘한다'는 나 이외의 상대에게 받는 인정이고, 그것이 결과나 성과로 보여져야 한다. 하지만 아이의 기준에서 '잘한다'는 나의 열정과 의지, 노력이면 충분하다. 즉 과정도 포함된다. 잘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면 결국 잘해질 거니까(?). 호락호락하지 않은 세상을 아직 모르는 아들의 턱없이 낮은 기준. 거기적합한 나는 '누렇고 예쁜 엄마', '글쓰기를 잘하는 엄마'가 되었다.


글을 쓸 이유는 못 찾았지만 글을 쓰고 싶은 의지는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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