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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숙 May 03. 2024

2024. 05. 02 맑음

오후 3시 30분이 되면 막내를 데리러 어린이집에 간다. 막내는 언제나 낮잠을 푹 자고 간식까지 잘 먹은 표정으로 나를 반긴다. 그 생기 넘치고 건강한 모습이 얼마나 예쁜지 모르겠다. 눈코입이 예뻐서 예쁜 게 아니라 건강하고 튼튼한 게 예쁘다고 생각한 건 나이가 좀 들어서, 정확히는 아이를 낳고서 알았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노는 것. 그 모습을 보기만 해도 그 건강한 기운이 전해져서 나를 미소 짓게 다. 그래서인지 유독 나이 드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나와 같은 눈으로 내 아이를 바라보신다. 감사할 따름이다.


나와 막내는 집으로 바로 가지 않고 놀이터에 들렀다. 젊은 엄마들 사이에서 허리를 숙이고 막내를 따라다니다 보면 '아이고~' 소리가 수십 번 나오지만 아이의 꽃봉오리 같이 고운 손을 뿌리칠 수 없다. 남매둥이가 다 자라고 나니까 이 순간들이 얼마나 짧은지, 그리고 얼마나 소중한지 알고 있다. 4시쯤 되면 여기저기 유치원에서 하원한 아이들이 몰려온다. 앞만 보고 달리는 언니오빠들 사이에서 코앞만 보고 달리는 막내를 보고 있으면 가슴을 몇 번이나 쓸어내린다.


미끄럼틀을 내려왔다 올라갔다, 주변을 빙글빙글 돌고 돌고, 다 보이는데 못 본 척 막내를 찾으면서 한참을 재미있게 놀았다. 그때 바닥에 떨어진 작은 장난감을 발견한 막내가 그걸 집으려 했고, 나는 얼른 막아섰다. 6~7살 돼 보이는 남자아이가 빠르게 낚아채갔다.


"내 건데."

"응~ 아기가 안 가져갔어."

"가지려고 했잖아요."

"그래, 아기가 몰랐어. 미안해~"

"전 안 괜찮은데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고, 그 남자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자리를 피했다. 그 뒤로 그 아이는 나와 막내를 졸졸 쫓아다녔다. 얘는 왜 말을 못 하냐, 왜 혼자 미끄럼틀을 못 타냐, 흔들다리는 못 건너가냐면서 자기는 다 할 수 있다고 말하는데 급기야 나는 짜증이 났다. 사과를 더 했어야 했나, 잘한다고 칭찬을 해줘야 나 싶다가도 내가 왜 이 아이의 마음을 알아줘야 하는지 모르겠어서 하지 않았다. 대신 그 아이에게 차가운 표정과 말을 던졌다.


"아줌마가 불편하거든. 저리 좀 가줄래?"


집에 돌아와서도 마음이 꽤 불편했다. 유아교육을 전공하고 유치원교사 자격을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6살 남자아이의 소유욕과 불안감을 제대로 달래주지 못했고, 인정받고 싶고 칭찬받고 싶은 욕구를 헤아려주지 못했다. 사실 알았지만, 해주기 싫었다. 그러면 막내는 남의 장난감을 가져가려고 했던 아기가 되는 거고, 21개월이지만 말도 못 하고 미끄럼틀도 못 타는 아기가 되어버린다고 생각했다. 유치했지만 내 아이가 있으면 이론이고 상식이고 다 필요 없이 감정부터 앞섰다.


나 같은 사람이 교사가 안되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어른으로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성숙하지 못한 것 같아 한심했다. 내 아이도 어디선가 저렇게 서툴고 부족한 모습을 보일 때가 있을 텐데 그 옆에 있는 어른이 나처럼 대한다면 어떨까? 나이가 많다고 다 어른이 아니고, 전공을 했다고 다 교사도 아니고, 아이를 키운다고 다 부모가 아니다. 어른의 잣대가 아니라 3살은 3살의 세상을, 5살은 5살의 세상을, 10살은 10살의 세상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성인이 되기까지 끊임없이 변화하고, 실수하고, 다시 성장하는 아이들을 편견 없이, 오해 없이 바라볼 수 있는 따뜻한 눈을 가졌으면 좋겠다.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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