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지금 뭐 하세요? 커피 한잔 해요!]
동네 엄마의 카톡에 대충 세수만 하고 그 집으로 갔다. 그다지 친한 사이도 아니고 자주 모이지도 않지만 이상하게 엄마들끼리는 그날 만나도 할 얘기가 산더미다. 그 대화의 80%는 아이에 대한 이야기, 교육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지만. 그래서 또래 아이가 없다면 섞이기는 쉽지 않다. 무슨 얘기를 하다가 인형 얘기로 넘어간 지는 모르겠지만 모두 초2 딸아이를 가진 우리들은 왜 인형을 사들이는지 모르겠다, 방 하나가 인형으로 가득 찰 정도다, 밤마다 서너 개씩 인형을 끌어안고 잔다, 심지어 인형의 상표택까지 귀엽다며 모은다 등 우리 딸아이와 똑같은 그들의 딸아이의 이야기에 연신 맞장구를 쳤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엄마가 딸아이에게 물었단다.
"이서야, 너는 왜 인형이 좋아?"
"음.. 인형이랑은 이별하지 않아도 되잖아. 물고기처럼 죽지 않으니까."
예전에 아이가 작은 물고기를 몇 마리 키웠는데 자꾸 죽어서 몇날며칠을 슬퍼했다고. 그 뒤로 그 엄마는 아이가 사 오는 인형을 버릴 수 없게 됐다고 했다. 아이가 인형을 좋아하는 이유가 그렇게 연결될 것이라고 생각지 못했던 우리들은 쿵 내려앉는 마음을 다잡느라 순간 조용해졌다. 그동안 몰래 버렸던 딸아이의 인형들이 스쳐 지나가면서 미안함과 더불어 나의 무심함에 후회가 밀려왔다.
서너 시간 수다를 떨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어머님한테 전화가 왔다. 큰 시누이 남편의 여동생이 방금 세상을 떠났다고 하셨다. 오늘이나 내일 장례식에 가보자고 하셨다. 한 다리 건너 아는 사이이긴 했지만 고등학교 때 같은 반이기도 했던 동창이었다. 몇 년 전에 유방암으로 투병을 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빨리 갈 줄은 몰랐다. 아니 당연히 나을 줄 알았기에 그 소식이 꽤 당황스러웠다. 이제 마흔이 갓 넘은 나이. 눈물이 나지는 않았지만 내 마음에 누군가 돌 하나를 툭 던진 것처럼 서서히 내려앉았다.
갑작스러운 죽음이 아니라 내 몸이 죽어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을 때 그 친구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그 친구가 떠나간 자리에 남은 남편과 아이들, 부모와 형제들의 마음은 또 어떠할까. 키우던 물고기의 죽음도 아홉 살 아이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는데, 그 친구의 죽음은 그들의 가족에게 얼마나 깊은 상처를 남길까. 인형처럼 그 상처를 치유할만한 작고 귀여운 무해한 존재가 있을까...
서른 후반부터 한차례 씩 찾아오는 이별의 현장을 목격하면서 언제쯤 나에게도 찾아올 죽음에 대해 종종 생각해 보게 되었다. 갑작스러운 죽음이 아니길 바라보다가 또 준비하는 죽음이 나의 마음이 더 힘들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요양병원에서 팔다리를 못 쓴 채 누워만 계시는 시할머니는 아흔이 넘은 그 연세에도 죽는 게 무섭다고 하셨다. 세상풍파를 다 겪으신 그 세월의 무게도 당신의 죽음과 가족과의 이별은 감당하기 어려운 일인가 보다.
착잡한 마음으로 남매둥이를 학원에 보내고 막내를 데리러 어린이집에 갔다. 문이 열리자 콩콩 뛰어서 품 안에 안기는 아이. 그 말랑말랑한 볼과 보드라운 손을 어루만지자 마음이 울컥했다. 조잘조잘 대는 아이의 목소리를 듣고 보고 만지면서, 이 순간이 영원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