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한 이후 2~3년 사이에 내 남동생은 물론 남편의 여동생들이 줄줄이 결혼을 했다. 다만 결혼 순서와는 상관없이 집안의 첫 아이는 내 아이가 아닌 조카가 되었다. 나보다 빠른 동생들의 임신 소식에 속상한 마음도 잠깐 들었지만 작고 꼬물거리는 조카들을 마주한 순간 그런 마음이 단번에 사라졌다. 오히려 지금은 내가 처음이 아니라 나중에 아이를 낳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육아라는 그 미지의 세계에 조카들이 나침반이 되어 주기 때문이다. 이맘때 이 정도 발달을 하는구나, 이런 놀이와 장난감을 좋아하는구나, 저런 상황에서 감정을 읽어줘야 하는구나 등 많은 도움을 얻고 있다.
특히 작은아가씨의 아들이자 시댁의 첫 손주인 J의 성장과정은 나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발달이 느리고 마음이 여려서 친구들은 물론 동생들한테도 많이 치였던 아이. 돌이 한참 지나 발걸음을 겨우 뗐고, 유치원 때까지도 발음이 어눌해서 그 아이의 말을 절반 정도는 이해하지 못했다. 우리 딸이 기저귀를 27개월에 떼었던 시기에도 5살이었던 J는 기저귀를 차고 있었으니 누군가가 18개월의 발달, 30개월의 발달 등 '정상'이라고 세워둔 기준에도 못 미치는 아이였다. 그건 뭐 초등학교 1~2학년 때까지도 마찬가지였다. 한글이나 수학도 보통 수준을 겨우 따라가고 있었다. J는 자신이 뒤떨어져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창피해하거나 이기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사실 공부에 대한 의지도 부족한 아이인가 싶었다.
어제는 초/중등의 수학학력평가인 'TESOM'이 실시되었는데 내가 시험감독관이 되어 들어갔다. 초등학생 4학년인 J도 시험을 치렀는데 그런 진지한 모습은 처음 봐서 생소하기도 했다. 'TESOM'은 수학의 기본개념과 원리를 이해하는 문제들로 구성되어 있어 쉬운 시험에 속한다. 하지만 3~4문제의 킬러문항이 있었으니, 어른들도 풀기 까다로울 정도로 난이도가 꽤 높다. 한 반에 10명이 있다면 이 문제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푸는 아이가 1~2명 있을까? 그것도 답을 맞힐지는 모르겠지만.
시험이 시작되고 30분이 지나자 엎드리는 아이, 가방을 정리하는 아이, 끝나려면 몇 분이 남았냐며 질문하는 아이 등 다들 몸을 배배 꼬기 시작했다. 앞에 쉬운 문제만 휘리릭 풀고 어려운 문제는 대충 끼적이다 말거나 답만 띡 적어놓은 걸 보니 찍은 듯 보였다. 놀랍게도 J만 그 어려운 문제들을 끝까지 풀고 있었다. 쓱 지나가면서 보니 빼곡히 적힌 풀이과정이 가득했다. 시험이 끝나고 J는 다음 주에는 고대경시에 도전한다면서 씩 웃으며 나갔다. '저 아이가 언제 저렇게 성장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되돌아보면 작은아가씨의 육아는 좀 유난스러웠다. 요즘 엄마들의 체계적이고 계획된 육아랑은 사뭇 달랐는데 엉뚱한데 돈을 많이 썼다. 그게 책도 아니었고 학원도 아니었고, 오직 아이들과 놀고먹는 데였다. 고집부리고 금방 지치는 아이들을 데리고 여기저기 많이 다녔다. 난 몇 번 끼었다가 아이들보다 내가 먼저 지치는 바람에 그만두었다. 큰 마음먹고 허락해야 하는 슬라임, 물감 등을 가지고 놀게 하거나 주방이 한바탕 난리가 나는 쿠키, 달고나, 솜사탕 등을 함께 만들거나, 수도요금이 폭탄 맞기도 하는 수영장을 만들어서 놀게 하기도 했다. 집안은 초토화되었지만 작은아가씨가 아이들에게 눈치를 주거나 잔소리를 하는 걸 본 적은 없다. 누구든지 원하면 마음껏 놀게 했다.
더불어 J의 아주 사소한 것까지 칭찬했다. 아픈 엄마를 위해 밥상을 차린 것, 할머니와 할아버지께 카네이션을 선물한 것, 2인 줄넘기 대회에 나간 것, 축구경기에서 팀이 우승한 것 등 성적과 결과보다는 행동과 과정을 가족채팅방에 올리고, 가족모임할 때도 대놓고 칭찬해 달라고 했다. 그 칭찬들이 쌓이고 쌓여서인지, 원래 그랬던 아이였는지 J는 어른을 공경하는 아이, 남을 배려하는 아이, 긍정적이고 밝은 아이가 되어 있었다. J는 도전하는 게 점점 많아졌고, 실패해도 '다음에 다시 도전하면 되죠!' 넉살 좋게 웃어넘겼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와 강점을 발견했을 테고 공부에 대한 태도도 진지하게 바뀌지 않았나 싶다.
세계적인 축구스타 손흥민의 아버지, 손웅정의 책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가 생각난다. 그 책에는 그의 삶의 철학과 가치관, 교육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아들을 축구선수로 키울 마음이 전혀 없었다고 한다. 축구선수의 삶이 얼마나 혹독한지 알기에 더욱 그랬다고. 그래서 그냥 아이가 마음껏 뛰어놀며 스스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발견할 때까지 기다렸다고 한다. 부모는 그것을 아낌없이 지원하고 응원해 줄 뿐이라고. (하지만 손흥민은 초등학생 3학년 때 축구가 좋다고, 축구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큰 부모는 작게 될 자식도 크게 키울 수 있고, 작은 부모는 크게 될 자식도 작게 키운다. 나는 내 작은 그릇이 아이들을 작게 가둘까 두려웠다.'
그의 말은 아이의 잠재된 가능성과 부모의 역할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만든다. 과연 나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스스로 발견할 때까지 잘 기다리고 있는가? 아직 찾아가고 있는 아이들을, 억지로 내 작은 그릇에 담으려고 하진 않았는가? 부모라면 한 번쯤 고민해 볼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