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주부생활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민숙 Sep 10. 2020

2020. 09. 06 흐림

산책

어느 날 남편과 소파에 나란히 앉았는데 남편이 내 허벅지에 쓰으윽 손을 댔다.


"어떻게 근육이 1도 없어?"


그러고 보니 무릎 위쪽 살들이 쪼글쪼글하다. 허벅지에 근육이 없으면 무릎이 늙고, 등과 허리에 근육이 없으면 엉덩이가 늙고, 얼굴에 근육이 없으면 목이 늙는 것 같다. 하긴 한낱 근육 덩어리가 중력의 법칙과 세월의 힘을 얼마나 견딜 수 있을까.


올해에는 운동을 꼭 해보려고 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하루가 멀다 하게 문 닫는 헬스장은 가기 어려워졌고, 움직이면 원숭이처럼 매달리는 아이들 때문에 홈트도 불가능했다. 그렇게 벌써 9월이다. 늘어지는 살들을 잡아줄 단단한 근육을 만드는 것도 급하지만, 그전에 그냥 몸을 움직이고 싶었다. 팔을 벌려 크게 숨을 들이켜고, 다리를 성큼성큼 내딛고 싶었다.


'아이들은 어쩌지? 아무래도 안 되겠다ᆢ'


누구는 아이들과 함께 걸으면 되지 않냐고 하지만 도저히 내 속도로 걸을 수가 없다. 5살 아이들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막 내달리다가도 뭘 들여다보는지 꼼짝 않고 앉아 있기 일쑤다. 불러도 대답도 없다. 잘 포장된 길로는 가지 않으려 하고 구석지고 좁은, 왠지 벌레가 많을 것 같은 길을 찾는다. 갑자기 사라졌다가  나타나기도 하고, 바닥에 버려진 나뭇가지, 쓰레기를 곧잘 줍는다. 그러다 제 풀에 지쳐  '안아줘'로 끝난다. 5살 아이들과 함께 걷는 건 노동이다.


그런데 주말 이른 아침, 가까이 사는 오랜 친구가 산책을 가자고 하는 게 아닌가! 어떻게 내 마음이 전달된 걸까? '얼씨구나' 하고 나왔다. 남편이 있으니까 아침 먹기 전에 돌아오면 됐다. 세수도 안 하고 마스크랑 모자로 덮어쓴 나는  친구를 만나 쉬지 않고 걸었다. 몸은 뜨거워졌고, 그 열기에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 마치 작은 나무가 첫 열매들을 달듯 내 몸이 만들어 낸 열매들은 형체가 없이 끈적거렸지만 그것마저도 좋았다.


그렇게 한 시간 반을 걷고 집에 돌아왔다. 발은 아픈데 가뿐하고 시원한 느낌이 좋았다. 다음에는 더 멀리, 더 오래 걸어야지.

이미지 픽사베이
매거진의 이전글 2020. 09. 02 비올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